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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디자이너 Dec 22. 2023

상하이를 여행하는 사람

나는 상하이에서 15년 정도를 살고 있다.(이제는 숫자를 세지 않는다. 대충 이 정도쯤 되었군 생각할 뿐이다.) 이곳에서 나는 청춘을 보냈다. 일, 사랑, 헤어짐. 달콤한 연애, 알싸한 연애, 잠 못 이룬 그런 날들로 나의 청춘은 상하이에서 여물어 갔다.

결혼과 출산, 그리고 육아를 하는 워킹맘이 되었다.

이제는 상하이가 편하고 내 집 같은 느낌이 든다. 10년 차 장기 연애를 하면 이런 기분일까?

당신에 대해서는 이제 너무 잘 아는 것만 같은, 그래서 편안하기도 하지만 더 이상의 설렘이 존재하지 않는.


이런 상하이에서 내 브랜드를 만들었다.

노트북 파우치, 영문, 한글 타이포 그래픽을 디자인해서 D.I.Y 키 링, 티셔츠를 만들었다.

한글로 내가 한국 브랜드라는 것과 한글의 그 디자인스러운 문자를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함이었다.

아직 부족한 것이 많지만 9월에는 상하이에서 제법 크게 열리는 디자인 마켓에 참여하기도 했다.

200개가 넘는 개인 브랜드들이 참여하는 Common Gathering이라는 디자인 마켓인데, 그곳에 유일한 한국 브랜드로 참여하게 되었다.

나는 이렇게 로컬스러운 것과 ’한 명‘의 한국인이라는 타이틀을 좋아한다.

현지에 완전히 녹아드는 그 무엇이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니크함. 나만이 해낼 수 있는 것.


작은 부스에서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내 브랜드를 소개하고 짧은 대화도 나누면서 마켓을 즐기고 있었는데, 어떤 여자분이 저쪽에서 웃으면서 내 부스로 걸어오고 있었다.

순간 내 친구인 줄 알고 아주 반갑게 인사를 했는데 내 친구가 아니었다.

그 순간의 친밀함은 무엇이었을까? 오랫동안 나를 알고 지낸 것만 같은 느낌.

그 여자분이 내 샤오홍슈(중국의 인스타그램)를 보고 나를 찾아왔다고 하더라.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누군가가 정말 내 글을 읽고 내가 올린 사진을 보고 있었구나.

신기했다. 나는 포스팅을 매일 하거나 팔로우 수를 늘리는데 노력하지 않는 게으른 사람인데, 누군가는 어딘가에서 나의 생각과  나의 디자인을 함께 공유하고 있었다.

그분은 나에게는 100명 같은 한 명이다.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가 나를 지지해 주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울컥했다.

내 글에 내 디자인에 더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 갑자기 글이 쓰고 싶어졌다. 지금 여기서 내게 일어난 일, 내가 느낀 것들, 내가 본 것들. 그 소소한 것들이라 해도 작은 생명을 불어넣어 주고 싶어졌다.


상하이가 나에게는 너무 익숙한 도시이지만, 여행자의 마음으로 상하이를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직도 외국인으로 보게 되는 중국만의 문화는 새롭다. 당연하게 생각하면 당연한 것이지만, 온몸의 촉수를 세우고 보면 달리 보이는 것들이 많다.

나는 이런 상하이를 여행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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