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바닥 #민재에서 은우로
앞으로 이 주제의 글을 쓸 때 다뤘으면 하는 내용이나 궁금한 점들 알려주시면 다음 글 쓸 때 반영해보고 싶습니다. 혹시 있다면 댓글로 편하게 남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약물 및 범죄 관련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불편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지난 6월에 <여성조선>과 인터뷰한 것이 24년 7월호로 발간되었다.
이 주제로는 꽤 오래 할 수 있는 한 많은 얘기를 하고 싶어 꾸준히 작성하려 하지만, 왠지 글을 이어 돌아 올 용기가 더 필요하다. 하고 싶은 만큼 하기 싫은 얘기도 많아서일까.
그래서 이번에는 인터뷰 이야기로 시작해볼까 한다. 아래 사진에서 옅은 미소를 띠고 있는 내 얼굴과 “저는 마약사범입니다"라는 대문짝만 한 제목이 한 페이지에 함께 들어가 있는 걸 보자니 상당히 기묘하다.
이 상황에 비하인드가 있는데, 인터뷰를 마치고 카메라 앞에 섰을 때 나는 도저히 적절한 표정을 찾지 못했었다.
'울상 지어야 할까. 주눅 들어 있어야 할까. 씩씩하게 얘기하고 나서 억지 표정을 짓고 싶지는 않은데...‘라는 생각을 하며 우물쭈물하자 사진작가님과 기자님께서 상황이나 표정을 꾸미면 오해받을 수 있다고 하시며 사진 톤을 인터뷰 방향에 초점을 맞추면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좋은 의견이라 생각한 나는 멋쩍게 카메라를 쳐다봤는데 셔터가 터지는 그 짧은 순간에도 내 속의 자괴감은 ‘머그샷처럼 보이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을 들게 했다.
그 후 평범한 일상생활을 하며 한동안 반무의식, 반의식적으로 잊고 있다가 오랜만에 브런치를 쓰기로 결심하며 참고하려고 다시 잡지를 펼쳤다. 마음이 무방비 상태였던 건지 스스로를 마약사범이라고 소개하며 웃고 있는 내 모습을 보니 순간 소름이 돋고 역하기도 했다. ‘독자가 이 페이지를 본 첫 느낌이 이런 걸까?’ 하며 잠깐 충격에 빠졌다. 기왕 본문도 읽어주셨기를 바랐다. 기자님과 함께 꽤 오랜 시간을 들여 작성한 것이니까.
"저는 마약사범입니다"
서민재는 마약사범이다. 2022년 유명 가수와 필로폰을 투약한 사실이 확인돼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대기업 직장인, 연애 프로그램 인기 출연자, 인플루언서 등 서민재를 둘러싼 빛나는 수식어들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그렇게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그가 다시 살아내기로 다짐했다.*
이번에는 몇 가지 소주제를 정해 이야기를 해보았다.
#밑바닥
그날은 아마 인생에 있어서 가장 끔찍한 날 중 하나일 것이다. 마약을 사용한 지 일주일쯤 지난날이었는데, 흔히 부작용으로 말하는 불면증, 우울감, 공황장애가 극도로 왔고 감당할 자신이 없던 나는 어리석게도 수면제 등 정신과 약을 오남용 했다.
그다음 기억은 없다. 당시 2층에서 여자가 투신하는 것을 목격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의 바디캠에서부터의 타임라인은 다음과 같다.
SNS에 글을 올린 직후 뛰어내리면서 양측 골반뼈가 골절되어 구급차로 병원 이송-> 정형외과 입원-> 퇴원 후 재활병원에서 목발 보행 훈련 후 자가 보행 훈련. 더 크게 다쳤다면 정말 문자 그대로 ‘일어설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후에 알게 되었지만, 자기 딸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학생들을 볼 면목이 없다며 오래 잡고 계시던 교편을 내려놓으며 울었던 우리 엄마와 가족들.
이 짧은 단락 안에 마약에 한번 손댐으로써 평생 쌓아 온 모든 사랑하는 것을 잃는다는 내용이 다 들어간다.
돌이켜 보면 마약이 극도로 무섭게 느낀 순간은 오히려 이때였다.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내 인생에 있어 더 바닥칠 건 없어 보일 때. ‘이미 끝난 인생인데 마약에 기대 현실 회피하다 그냥 죽을까?’ 하는 악마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공부를 해보니 이것도 마약사용자들이 많이 겪는 고위험상황이고 합리화/정당화 이슈였다.(나중에 공부한 것들에 대해서 또 정리해보려 한다.)
#과오 #반성
인터뷰를 응한 이유이다. 정신과 상담을 다니다 보면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서는 나의 상처를 돌볼 줄 알아야 한다고 한다. 나는 '글'이라는 하나의 표현 방식으로 고통을 털어내고 내면을 단단히 다진다.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기 위해서.
이전에 데이트 폭력에 관한 글들을 올리자 비슷한 일을 겪었다며 공감하고 걱정해 주신 분들이 종종 있었는데, 같이 나누는 것이 나에게는 참 도움이 되었다. 고마운 마음이 들었는데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그분들은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얘기를 꺼내기까지 혼자 얼마나 답답했을까. 가해자의 적반하장 태도에 혹여 더 무너지지는 않았을까.
전해주신 위로와 격려가
저에게는 정말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제 응원과 진심도 꼭 전해지길 바랍니다.
앞으로 더 행복하시길 바랄게요.
#민재에서 #은우로
이름을 바꾼다고 과거가 사라지거나 잊히지 않지만 예전 이름으로 불릴 때면 자꾸만 나쁜 수식어가 따라붙는 느낌이 들어서 싫었다. 내가 들을 때나 가족들이 부를 때 아팠던 기억을 상기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이번에는 더 올바르고 정직하게 살아내야겠다.
새 이름은 ‘부르기에, 듣기에 좋은 것이 좋다’는 아빠의 의견에 따라 부드러운 소리로 고른 것인데 한자의 의미를 보니 따뜻한 집(誾宇)으로 해석이 되기도 했다.
내 가족들에게, 내 사람들에게, 또 필요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집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꼭 그러고 싶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글은 아래 첨부된 기사 리뷰 형식으로 작성한 거라 기사와 함께 읽어봐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Fig.1 <여성조선> 취재 이근하 기자, 사진 안규림 20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