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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지 Jul 06. 2023

도망가자

여행에붙임

비겁하게 피해서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있는 그대로 보고 당당히 맞서 부딪혀 단판승부를 내려고 했는지도 몰라.

무엇이 두려운 것인가.

부당하고 억울한 시간에 갇힌 긴 터널을 묵묵히 걸어오면서 작은 불빛하나에 나를 의지하고 늘 반복되는 사과와 회유에 취해 휘청거리는 나를 방치해 왔다.

사방이 다 막힌 어떤 길도 없는 막막함이 익숙해지고 현실이 아닐 거라고 애써 나를 누르고 주저앉힌다.

생각이라고는 할 수가 없는 머리를 달고 뇌라는 건 그저 모양뿐인 내 몸의 일부일뿐.


정리가 되질 않아.

앞뒤가 맞질 않아.

이가 빠진 지퍼를 아무리 끌어올려봐도 마지막은 늘 뒤둥그러진 삐뚤어진 끝을보고 탄식하는일.


도망가자.

옳은 것을 말할 수 없지만 부당한 것을 열 배로 경험하고도 담담히  삼켜내야 하는

지독하게 잔인한 이 시간이

여기 이데로 쓰러져있지 말라고 나를 일으킨다.

누구를 책임지는 사람이란 말인가.

이렇게 여리고 형편없이 가난한 마음으로 사는 내가

어느 누구를 책임지고 감싸 안을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여전히 늘어놓은 짐을 싸지 못한 출발시간에 쫓기는 여행객일 뿐.


도망가자.

지금껏 버텨왔더라도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살아있는 것이 부담스러울 만큼   두려우면 도망치자.

내가 아닌 나로 어디엔가 있을 나를 찾으러 지금보다 편안하게  맨얼굴의  나를 말할 수 있는 그 어딘가로

오늘도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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