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영
보건소에서 예방접종을 했다. 간호사 분께서 “오늘 샤워는 하셔도 되요. 탕에는 들어가지 마시고요. 술은 드시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저 술 안 마시는데요.'라고 말했다. 사실 술을 안마신 지 1년이 넘었다. 이제는 끊어버린 술에 대한 나의 기억을 떠올려본다.
어렸을 때, 우리집 차단스에는 양주병들이 있었다. 아버지께서 사우디에서 오실 때 사 온 술들이었다.(물론 빈 병이었다.) 그 중에 조니워커 블랙라벨이 있었던 게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때 뱀이 들어있는 술도 본 적이 있다. 아버지는 술과 가깝게 지냈다. 아버지 친구들이 우리집에 오시는 날이면 술상은 밤 늦게까지 이어졌다. 어머니는 예쁜 접시에 사라다를 내오셨는데 나도 그 틈에 얻어먹었다.
밤에 곤히 잠들어 있을 때, 아버지는 술 냄새를 풍기고 나와 동생을 껴안아주셨다. 아버지는 술을 한 번 마시면 끝장을 보셨다. 그래서 술에 진탕 취한 아버지 기억이 많다. 그런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기분이 좋을 때는 물론이고 일이 잘 안풀릴 때도 술로 푸셨다. 지금은 세월이 흘러 나이드신 아버지는 술을 안 드신다.
내가 술을 처음으로 마셔본 곳은 성당이었다. 복사 연습할 때 수녀님께서 미사주를 살짝 주셨다. 중고등부 시절,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이면 성탄제를 마치고 전야 미사를 드렸다. 2층 성가대에 있던 청소년들은 미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나와서 한 친구네 집에 모여 술을 마셨다. 그때가 어울려서 술을 마셔본 첫 기억이다.
대학교 신입생 때는 학교 잔디밭에 빙 둘러앉아 맥주, 막걸리 등을 마셨다. 엠티 때도 자리를 옮겨가며 술 가리지 않고 잔뜩 마셨다. 그렇다고 술을 잘 마시는 편은 아니었다. 오바이트를 하고 다음 날 오후 때까지 누워있는 것은 늘 있는 일이었다. 술과 가까운 집안이다 보니 술을 특별히 멀리할 이유는 없었다. 부모님도 술 먹고 늦게 들어오는 나에 대해 별로 말씀이 없으셨다. 나 역시 술과 가까운 나날들이었다.
베를린에 머물렀을 때도 이따금 혼자 이름 모를 맥주 한 두병을 사서 베를리너돔 성당 앞에서 야경을 즐겼다. 어느 주말에는 보드카를 겁 없이 많이 마셔서 다음날 어학원 수업은 듣는 둥 마는 둥 화장실만 찾아야 했다. 선생님은 나를 보며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사회생활을 하며 불금이면 어디 술 마실 기회 없나 기웃거리며 퇴근했다. 아무 이벤트 없이 그냥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허전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술을 마시고 싶다기보다 술자리를 좋아했던 것 같다. 방송대학TV에서 일했을 때 대학로 떡삼겹집에서 회식을 했었다. 술에 빨리 취했는지 다음 날 일어나보니 어느 빌딩 앞이었다. 길거리에서 노숙을 한 것이다. 안경도 부러져서 새로 맞춰야 했다.
아내와 처음 만난 날도 맥주는 우리의 매개체였다. 광우병 촛불집회 때 편의점에서 캔맥주를 사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마셨다. 아내와 사귀는 내내 맥주는 우리의 친구였다. 신혼 때도 주말이면 아침에 일어나 어제 남은 맥주를 마셨다. 모자라면 집 앞에 있는 마트에 가서 사왔다.
바깥일, 텃밭일을 하고 하루의 뒤풀이를 하며 마시는 맥주, 샤워하고 마시는 맥주를 사랑했다. 와인, 고량주, 위스키 등 도수가 센 것도 잘 맞았지만 맥주가 마시기 편했다. 그래서 클라우드 캔맥주 2개는 나의 친구였다. 김환기 화백은 일기에 "나는 술을 마셔야 천재가 된다."라고 적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Drinking is a way of ending the day.(술은 하루를 끝내는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나도 술을 마시면 기분이 들떠서 창작욕구가 들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술을 끊기로 했다. 세월이 흐르다보니 이제는 나의 다음 날 루틴과 시간이 소중해졌다. 술로 인해 생기는 폐해와 소모를 피하고 싶었다. 맨정신으로 온전히 살아내는 삶을 산 지 1년이 넘었다. 한 번에 잘되지는 않았지만 술을 봐도 마시고 싶다는 욕구가 약해졌다. 아내는 내가 술 안 마시니 너무 행복하다고 한다.
나는 왜 술과 가깝게 지냈을까...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술에 관대할까... 요즘은 유명연예인의 음주운전 뺑소니로 시끄럽다. 거짓말도 큰 문제이지만 음주운전, 더 나아가 음주문화가 여전히 문제라고 생각한다. 선진국이라고 하지만 음주문화는 과연 그에 걸맞는지... 호주에 갔더니 술을 꼭 보틀샵에서만 살 수 있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편의점, 마트 등 술이 아주 잘 진열되어 있고 쉽게 살 수 있다. 심지어 24시간 살 수 있다. 그러다보니 술로 인한 사건사고는 늘 있다. 술을 매일 마시는 삶도 살 수는 있지만 2차, 3차도 갈 수 있지만 술을 안마시다 보니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게 되었다.
<낮술환영>이라고 적혀있는 가게를 보면 여전히 매력적이다. 햇살이 창창한 대낮에 가맥집 같은 술집에서 건강한 몸 상태로 마시는 맥주의 첫 잔은 정말 좋다. 하지만 이제는 몸의 기억으로만 남겨두고 술과 나의 관계는 이제 바이바이다. 술이 없으면 재미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너무 일찍 끊었다고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다음날 아침을 개운하게 맞이할 수 있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