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영
할머니가 혼자 살다가 비어있는 집이었다. 2011년 추석이 지나고 파란 하늘 아래 고추가 널릴 무렵 이 집을 보았다. 부동산 중개인이 매물로 보여준 곳이었다. 여러 집을 봤는데 이 집 느낌이 괜찮았다. 집이 퍽 낡긴 했다. 마당도 초라했고 개집이 있던 자리는 너저분했다. 처음으로 집을 사는 것이기 때문에 덜덜덜 떨렸고 신중했다.
아내와 나는 일산에서 살았다. 주말농장을 하며 텃밭 농사와 사람들 사귀는 재미가 있었다. 농장이 일산 외곽에 있다 보니 거리가 꽤 있었다. 점점 가기가 뜸해졌다. 아내는 임신을 했고 마당 있는 집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은 소망이 생겼다. 텃밭도 집 앞에 있으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에 시골로 가기로 했다.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 소로의 월든, 리틀포레스트 등 시골 관련 책을 읽던 아내가 먼저 제안했다. 나 역시 동의했다. 아내는 그림을 그리고 나는 영상 제작을 하는 프리랜서로 인터넷만 되면 어디든지 상관없는 디지털노마드였다.
블로그를 보다가 괴산이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유기농의 메카, 괴산. 처음 이름만 듣고는 기괴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괴산으로 결정하고 인터넷으로 집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에 올라온 집들은 대부분 그림 같은 전원주택들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집을 살 수도 없고 새로 지을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다. 적당한 시골집을 구해 리모델링 해서 사는 것이 우리에게는 최선이었다. 열심히 검색하던 중 "시골집, 농가주택 팝니다."라는 글을 찾을 수 있었다. 전화를 걸어 방문 날짜를 정했다. 모든 신경이 괴산으로 집중되어 있는 상태였다.
드디어 괴산 첫 답사, 괴산대학찰옥수수 현수막들이 중간중간 눈에 띄었다. 고추를 든 임꺽정 동상을 지나자 ‘이곳이 괴산이구나’하고 실감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청정자연이라는 말 그대로 수려한 자연경관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가을 햇살에 비친 사과 농장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괴산 장연면, 목적지에 도착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는데 흐린 날씨 때문인지 조금 어두컴컴한 분위기였다. 축사도 몇 있고 폐가도 있었다. 집주인과 인사를 나누고 집을 둘러봤다. 집 상태는 좋은 편이었고 텃밭도 가꿀 수 있었다. 하지만 고속도로가 가까이 있어 자동차 소음이 무척 크게 들렸다. 일산에서 살면서 자동차 소음은 실컷 들었던 터라 시골에서까지 자동차 소음에 시달리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런 집에 살려고 시골로 오는 것인가?' 서로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이렇게 첫 번째 답사를 마쳤다. 희망찬 어제와 달리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집 구하기 쉽지 않겠는걸' 인터넷으로 집을 구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역시 발품을 팔아야 한다는 게 결론이었다. 그래서 부동산을 통해 집을 구하기로 했다.
괴산에 다녀오고 이 주일 정도 시간이 흘렀다. 첫 번째 공인중개사 사무실에서 연락이 왔다. 마침 적당한 집이 나왔다는 소식이다. 시간을 내어 다시 괴산에 내려갔다. 작은 마을이었다. 집 앞에 우물이 있었다. 슬레이트 지붕이었고 집 전면은 비닐로 덮여있었다. 꽤 오랫동안 빈집이었는데 곰팡이 하나 없고 뽀송뽀송한 기운이 있었다. 집 내부 구조는 여느 시골집처럼 일반적이었다. 입식 부엌이었고 화장실은 밖에 있었다. 집 앞마당, 옆, 뒤꼍이 텃밭으로 쓰이고 있었다. 나무도 몇 그루 있었다. 볕이 잘 들고 위치가 좋았다. 집도 수리하면 괜찮을 것 같다. 가격도 좋다. 다만 앞집, 옆집에 둘러싸여 쏙 들어가 있는 게 문제다. 여기 말고 더 나은 곳이 있을지도 모른다. 공인중개사와 헤어지고 다시 그 집을 가봤다. 그리고 또 살폈다. 괜찮은 느낌이었다.
결국 그 집을 계약했다. 집주인이신 할머니는 마을회관 2층으로 이사해 살고 계셨고 딸 아파트 자금에 쓰라고 집을 파는 것이었다. 부동산에서 건축업자도 연결해 줘서 좋은 조건으로 리모델링 할 수 있었다. 그리고 3개월 후 우리의 첫아이가 우리집에서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