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진열하는 도시
세 시간 뒤
소년은,
원형극장에서 눈을 떴다
덤불로 엮은 작은 오두막에 불과했지만
꿈속에서 본 모습 그대로
소년은,
새벽에 도착했고
부엌을 뒤져
차갑게 식은 슐라흐트플라테1)를 먹었으며
아주 잠깐 눈을 붙였다
*
아침마다 나는 도살장에 간다
*
신들이 관람석에 앉아 있다 죽음을 지켜보면서도 시도 때도 없이 하품하거나 꾸벅꾸벅 졸고 있다 싸구려 공연에 불과하기 때문에
죽음은 오히려 금욕적이다
*
도살장에 갔다 아침에 눈을 뜨면 어김없이 돼지머리를 뒤집어쓴 자들이 찾아왔다 발푸르그2)처럼 생긴 두 명의 청년
그들 중 한 명은 화상을 입었고 키가 작은 사람이 먼저 말을 꺼냈다; 환영합니다, 여기는 죽음도 진열하는 도시죠
그들은 낡고 더럽고 축축한 도살장까지 소년을 안내하고는 늘 그랬듯 관람석에 앉아 무대를 바라본다
도살장에는 30여 명의 관광객과 그들을 데려온 발푸르그가 앉아 있다
관광객 중 몇 사람이 무대에 가까이 다가가서는 셔터를 누른다 돼지 피로 휘갈긴 ‘피사체 주의’ 경고문은 무시한다
철컥,
셔터가 열리는 소리
다시 철컥,
철문이 닫히는 소리
*
a. 도살장은 마구 흐트러진 레고 조각, 믿을 수 없을 만큼 수다스럽고 가벼운,
b. 네 맞아요 ‘레고 조각’만큼 적절한 단어는 없죠,
*
a와 b 사이에 철문이 내려져 있다
철문이 열리고 관광객들은 일렬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뒤를 돌아보며 트림하거나 아직 남은 숙취를 게워내면서 관람석에 앉아 있는 발푸르그를 무심코 올려다본다
분해된 형체들이
분해된 채로 고여 있는
무대가 열릴 때까지
발푸르그는 몇 번이나 머리와 어깨, 두 팔과 다리, 몸통을 분리했다가 다시 이어 붙였다
베이컨과 감자조각을 씹어먹으면서
나는,
*
실패로 오염되기 시작한다
수신자 없어도
매일 도착하는 편지처럼
*
아까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머리와 어깨, 두 팔과 다리, 몸통을 붙였다
거울을 보고 웃으니 갈라진 입술로 미세하게 어긋난 웃음이 보였다 이희문의 나리소사3)를 부르면서
세수와 면도를 하고 머리를 가지런히 빗고 상의에 양말을 맞춰 신고 죽은 돼지들의 손을 잡는다
그런데 그들은 같은 놈들일까
*
이윽고 조명이 꺼지고
회색과 암흑이 도살장의 무거운 침묵으로 떠올랐다
흠뻑 젖어버린 재의,
몽롱하고 불쾌한 냄새가 흥건해지자
나는 단번에 도살장에 끌려온 이유를 깨달았다
돼지가 말했다;
상처는 상처 낸 창만이 치유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4)
정수리가 박살났지만 신경이 끊어지지 않은 돼지 몇 마리가 자기가 흘린 선홍빛 피를 핥았다
사방에 들러붙은 광기와 냉소는 매우 선명했다 빗장이 풀리면 회색과 암흑으로 들어가야 한다
어느새 내 곁으로 다가온 발푸르그가 속삭였다
*
명백하고도 격렬하게 눈을 뜨는 아침;
그들은 어김없이 찾아왔죠 나는 베이컨과 감자를 씹으면서 도살장으로 가는 낡고 더러운 통로에 온종일 서 있었고
죽어야 하는 것들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죽음은 공평하게 진열되고 가까이 있으며 악몽보다 구체적이었죠 도살장에서 나는,
나의 육체에 그어진 모든 빗장을 움켜쥐었습니다
나는 실패로 오염된 자,
실패로 오염된
회색과
암흑에서 돼지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돼지들은 친절하게도 나의 오염된 이름들이 무엇인지, 어디에서 썩고 있는지 반복해서 재생했습니다
덤불로 만든 작은 오두막에 불과했지만
원형극장에서 나는
매일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입니다
여기는 죽음이 진열되는 도시죠,
이해하십니까?
*
육체는 계속 돌아가고
정신은 그 속도를 견디지 못했어
제어되지 않는 탐욕은
고철 덩어리에 불과해, 기관사 없이
반복해서 폭주하는
기억하니?
일어날 일은 이미 일어난 것이니
광기에 사로잡힌 돼지들과 함께 나는,
황무지를 태워버려야 해
내 심장을 파먹으면서
내 폐를 갈기갈기 찢으면서
나는,
1)독일음식. 야코프 하인은 『나의 첫 번째 티셔츠』에서 이렇게 묘사한다; “가장 고약한 음식은 슐라흐트플라테였다. 그것은 감자 죽에 돼지피가 뚝뚝 흘러내린 돼지 창자를 갈아서 넣어 만든 음식이었다.”
2) 폴스타니스와프 이그나찌 비트키에비치의 희곡, 「광인과 수녀 혹은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나쁜 일이란 없다」의 등장인물. 작가는 그를 이렇게 묘사한다; “28세. 갈색 머리에 대단히 잘생겼고 체격도 완벽하다. 턱수염과 콧수염이 아무렇게나 자랐다. 긴 머리카락. 환자복을 입었다(구속복). 광인. 시인”
3) <이희문×허송세월×놈놈>의 2020년 프로젝트 앨범 <오방신과(OBSG)> 수록곡
4) 바그너 오페라 「파르지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