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 윤보선길 38, 골목 안 그 어딘가에 꼭 남겨 놓았기를...
다시는 별다방 미스리에게서 엽서를 받기는 힘들 것이다.
안국역 6번 출구에서 5분 거리, GS25 2층에서 시간을 특정 지을 수 없는 어느 순간에 별다방 미스리가 종적을 감추었다.
내가 몹시도 사랑했던 그녀는 내가 사랑했던 그녀의 체취와,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그녀와의 미드나잇 블루색의 추억과, 그녀와 내가 잠시 멈추어 두었던 소중한 시간들을 모두 싸서 짊어지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인사동 거리를 가득 품은 격자무늬 사각의 창으로, 비단같이 부드러운 작은 햇살이 빗살무늬 모양으로 앤티크 한 조각보가 되어 그녀의 따스한 품으로 쪼개어 스며들 때, 그녀의 공간은 아름답고 재치가 넘쳤으며, 그녀만의 스타일로 낭만적이고 우아하면서도 빈티지하게, 예술적인 감각이 서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었었다.
특별하기보다는 변함없이 따스했던 그녀의 품속은 결코 서두를 필요가 없었고, 앤티크 한 유머와 엉뚱한 빈티지함이 반짝이던 그녀의 품속을 나는 한없이 사랑했다.
타임머신 속의 시간을 잃어버렸는지, 아님 착각을 일으켰는지 터무니없이 작아져버려 엉덩이 한쪽에 걸려 삐걱대던 의자들이며, 빈티지한 색채들로 영롱하게 반짝이는 타일이 깔린 작은 탁자들, 잃어버린 시간들이 야속하고 애절해서 우아하면서도 상냥하게 빛나던 조각들은, 이제는 더 이상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고소하고 매콤하게 볶은 김치와 연한 분홍빛으로 동글동글 사랑스러운 소시지 부침, 알갱이가 알알이 빛나는 하얀 밥을 감싸 덮고 당당히 누워있는 달걀 프라이를 담은 사각 뚜껑을 덮고, 마구잡이로 잡아 흔들어 그들의 존재감을 없애버린 후, 설레는 기쁨을 미역국과 함께 선사하던 빈티지한 스텐 도시락의 성찬, 찌그러져 뒤뚱거리는 노란 양은 냄비에 담긴 떡볶이와 달콤한 단팥이 듬뿍 올려져 행복했던 팥빙수를 깔깔대며 즐기던 그녀와의 유머가 넘치던 만찬도 이제는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을 것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 엄마 없는 하늘아래 양껏 뽑아 먹던 불량식품들도 모두 사라져 버렸고, 그녀의 분위기에 취해 수많은 이들이 남기고 간 이야기들로 가득했던 메시지 나무도 이제는 더 이상 가지치기를 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운 마음을 꾹 눌러 참고 100일만 기다리면 설렘 가득 기쁨을 전해주던 그녀의 연서도 더 이상 내게 오지 않을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위층의 빈티지한 작은 탁자에 앉아, 몰려드는 방문객들로 정신줄 놓기 일보직전인 주인장 등뒤에서 누구에게도 드러낼 수 없는 또 다른 수줍은 그와 또 다른 수줍은 그녀의, 시선은 엇갈리고 말은 삼켜지지만, 손끝은 간절하게 살짝살짝 맞닿아 애절한, 훔쳐보는 주황빛 사랑도 안녕이다.
창틈사이로 스며들던 석양의 붉은 노을 너머로 찬란히 빛나던 별다방 미스리는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시공간으로 사라져 버렸다.
타임머신을 타고 더 빈티지한 그녀의 세상으로 돌아갔는지, 우주선을 얻어 타고 테크놀로지 한 미래로 날아갔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기다림, 추억 어쩌면 잃어버린 무언가를 가득 담은 그녀의 엽서만은 종로구 윤보선길 38 골목 안, 그 어딘가에 꼭 남겨 놓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