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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필 Jul 06. 2023

[서평] 파이어 키퍼의 딸

탐정 소설과 틴 로맨스 소설의 결합

[서평] 

파이어 키퍼의 딸, 안젤린 불리 글 

문학서재, 18,800원



 아메리카 원주민이 겪은 일과 지금도 세계 여러나라에 살고 있는 재외국민들이 겪은 일들은 놀랍게도 흡사하다.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등장한 구대륙인들이 ‘신대륙’에 있는 사람들을 억압한 역사는 유구하다. 최근에는 ‘추수 감사절’을 폐지하자는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파이어 키퍼에 등장하는 오지브웨족은 미국과 캐나다의 인디언 원주민 부족이다. 10만 명 정도가 미시간, 위스콘신, 미네소타, 몬태나 등 미국 북부에 거주하고 있고, 7만 6천 명 정도가 캐나다 온타리오에 거주한다. 오지브웨족은 백인 정착민들과의 충돌로 강제 이주당해 1730년대에 슈피리어호 호반에 자리 잡았다. 한국인들은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억압이 거세지던 시절, 스탈린의 정책으로 중앙 아시아로 이주하거나, 미국과 일본, 독일에 가 살아야만 했다. 미국의 원주민들은 각 주나 캐나다와 협약을 맺어 ‘원주민 보호 구역’에 거주한다. 원주민 보호 구역에서 자본을 축적하는 방법은 미국 주 정부가 허가한 사업을 주도하는 것이다. 카지노다. 카지노로 얻은 배당금으로 생활을 영위하거나 그렇지 않은 이들은 마약에 그대로 노출된다. 마약, 섹스를 접하지 않는 인디언 청소년은 거의 없다. 둘 중 하나를 경험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둘 다 경험한다. 다른 지역에서 교육 받을 수 있는 기회도 적으며 아주 우수한 학생이 아니고서야 다른 지역으로 가지도 않는다. 

 <파이어 키퍼의 딸> 다우니스 폰테인은 아주 우수한 학생이다. 미시간 대학교에 지원할 정도로, 그렇지만 다우니스는 ‘리바이 파이어키퍼’와 ‘그레이스 폰테인’의 딸이다. ‘리바이 파이어키퍼’는 다른 사람과 재혼했고, 다우니스는 어머니와 같이 살고 있다. 추문의 주인공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완벽한 백인’이나 ‘완벽한 오지브웨’가 될 수 없다 믿는다. 아직은 아무도 다우니스를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오지브웨라고 여기지만, 원주민 명부에 올라갈 수 없었다. 아버지 아래에 다른 자식이 있고, 그는 파이어키퍼의 성을 물려 받았다. 그렇기에 다우니스 폰테인에게는 규칙이 있었다. 아버지 ‘리바이’처럼 멋진 하키 선수와 데이트하지 않기. 성장하는 탐정 주인공에게 어울리는 규칙이다. 다우니스의 세계로 누군가가 들어오기 전까지. 


 우리는 선거인 명부에 등록된 유권자가 아니라 그저 슈가섬 오지브웨 부족의 후손일 뿐이었다. 내 출생증명서에는 아빠가 기록되지 않았고, 릴리는 선거인 명부에 등록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적절한 피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부족의 일원이라고 생각했다. 유리창에 코를 박고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 신세였지만. (p. 19)

 나는 얼음 위에서 지켜야 할 규칙들은 잘 알았다. 하지만 얼음 밖으로 나오면 그 규칙들은 언제나 바뀌었다. 내 인생은 하키 세계와 일상 세계가 분리되었을 때 더 매끄럽게 흘러갔다. 폰테인의 세계와 파이어키퍼의 세계가 겹치지 않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p. 28)

 나의 뿌리는 이토록 깊은데 나는 언제나 이곳에 속해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점이 없었다. (중략)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지만……, 그 누구도 나를 전체로서는 보지 않는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는 설명하기 힘들었다. 

 


 성장하는 주인공이 늘 그렇듯, 주인공은 이방인을 만난다. 이방인은 다우니스가 세운 규칙을 어기게끔 만든다. ‘하키 선수와 데이트하지 않기’, 아버지의 부재 때문에 생긴 남자에 대한 불신도 한몫한다. 한순간에 버려진 어머니를 위로하며 살아야 했고, 연애 상대의 사랑 고백도 믿지 않았다. 가장 친한 친구의 죽음을 목도하고 대처하는 자세 때문에 ‘너는 누구야?’라고 물을 정도였던 상대방의 정체까지 알아버렸다. 작품 초반부에서 볼 수 있던 주인공의 호감은 불규칙한 선을 그리며 후반부까지 이어진다. 삼촌의 죽음과 가장 친한 친구 릴리, 그리고 ‘잃어버린 아이들’과의 연관성을 찾는 여정이 길다고 느껴지지 않는 소설이었다. 주 정부로부터 보호 받지 않는 ‘원주민 보호 구역’의 아이들은 정작 마약의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국가로부터 ‘유리된’ 감정은 구성원을 내몰리게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은 옛 시대의 역사와 가치를 잊는다. 아이들이 성장하면 백인 교회 학교의 일원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간다. 미국의 다문화 정책 중 가장 어두운 단면이 그대로 노출된다. 인디언 교화 정책은 여러 병폐로 등장하지만, 갑자기 주인공의 말에서 벗어나는 경우는 없다. 소설을 읽으면 주인공은 점차 오지브웨 부족에 가까워진다. 이방인들의 인디언 보호 구역을 향한 시각을 비판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수사를 진행한다. 이방인과의 데이트는 그간 유지한 다우니스 스스로의 규칙을 깨는 일이었다. 주인공은 불에 불씨를 던져 넣고, 장작을 넣으며 불이 꺼지지 않게 만들었다. 후반부의 반전은 “날것 그대로의 상태에서 원치 않은 것을 알게 되면서” 도래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스스로의 이슈를 극복하고, 자신에게 정체를 속인 이방인을 용서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처럼 로맨스 소설의 주인공이 되는 게 아니라 자신만의 길을 찾는다. 주인공이 사랑을 대하는 방식은 이별을 거듭 겪고 나서야 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우니스와 이방인 간의 감정은 분명하다. “네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 좋아.” 추천? 비추천을 따지자면 당연히 추천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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