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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5. 월

by 고주


연하디 연한 초록

잔망스러운 내 손녀가 막 기어 다니기를 떼고

일어나서는 의기양양 둘러보던 눈빛

그 눈빛으로 세상은 온통 일렁이고 있다

아침부터 학교로 가는 산책길이 몽롱해진다


복도며 교실 안까지 대청소가 있고, 반들반들 니스칠까지 끝났다.

바닥에 있었던 짐들이 탁자 위로 올라와 있다.

실을 정리하고 정문으로 나서는데 비가 온다.

제법 방울이 굵다.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학생 맞이를 하지 않는다고, 4월 당번 명령에 적혀있다.

비 오는 날이 안전에 더 취약한데.

내가 너무 설레발 떠는 것은 아닌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교문까지 두어 번 왔다 갔다.

에라 모르겠다, 나 하고 싶은 대로 할래.

좁은 쪽문 쪽으로 들어가려는 아이들을 정문으로 보낸다.

들어오는 차를 서행시킨다.

정신 들어보니 뒤쪽에서 우산을 받쳐 쓰고 있는 교장선생님이 보인다.


단원평가 문제 풀이가 끝난 7반.

2시간 9분짜리 이집트의 신화를 보고, 구글을 열심히 검색해서 신화를 정리한 내용으로 후루스의 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몇 날을 끙끙 앓고 준비했는데, 녀석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다.

왜 눈의 절반이 후각이냐며?

왜 누이와 부부가 될 수 있냐며?

가장 완벽한 동물로 매를 생각했기 때문에.

천지를 창조할 때는 대상이 많지 않아 그랬을 것이라고.

둘러 붙이지만, 분위기는 왁자해져 버렸다.

골드바흐의 추측은 좀 났다.

1시간 29분짜리 ‘파스칼의 밀실’ 이야기는 들어주는 척을 하는 것인지.

2보다 큰 짝수는 소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 추측은 골드바흐가 오일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알려진 이후로 250년 동안 증명되지 않고 있다는 말에 술렁인다.

한 시간 써먹는데 투자한 1주일이 너무 아깝다.

호기심과 흥미를 갖도록 안내자 역할을 하겠다는 첫 시간의 약속을 지키고 있다.

몇 녀석이라도 알아먹는다면 그나마 다행이고.


여기는 비가 제법 온다고.

거기는 조금 뿌리더니 그쳤다고.

어제는 여름 날씨 같았다고.

“왜 목소리가 이상하다.”

오랜만에 나누는 아버지와의 전화 통화.

감기 기운이 있다는 것을 금방 알아채신다.

수업을 많이 했더니 목이 좀 잠겼다고.

날씨가 풀리면서 아버지도 훨씬 거동이 편하시단다.

늘 마음 한쪽이 묵직하게 누르는 무엇.


옆 초등학교 학생을 자전거로 다치게 한 녀석이 있었던 모양이다.

학교로 신고가 접수되고, 우리 포도청에서는 범인을 색출하는데 총동원되었다.

자수를 권했건만, 자전거 거치대 앞에서 주인들의 반과 이름을 파악하느라 비 오는 하교 시간을 몽땅 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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