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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손잡고 1
29화
감기
2024.04.12. 금
by
고주
Apr 28. 2024
북방의 아침 찬 공기에 아직 적응 안 된 내 육신.
바다 건너온 미세먼지에 국내산 연기까지 콧속으로 빨려드는 매캐한 공기.
손수건을 말아 목에 메고, 마스크로 코를 막고.
짓궂은 햇살은 정면으로 이마를 때린다.
정문을 지나가는, 차 안의 사람들이 나를 구경한다.
“감기 걸리셨어요?”
걱정 어린 눈빛으로 날 보는 아이.
“빨리 낳으세요.”
별놈이네, 가정교육 제대로 받았네.
봄이면 여지없이 찾아오는 목감기, 살살 지나가야 할 텐데.
학생 맞이가 끝났는데, 반대쪽에 서 계시는 교감 선생님이 온다.
“5월 계획은 없으시죠?
다음 주에 치료 중인 선생님께 연락드리고, 복귀가 어려우면 계속 더 계셔주십시오.”
고마운 일이지만, 아픈 선생님도 빨리 낳으셔야 하는데.
마냥 좋아할 수도 없다, 양심이 있지.
같은 실에 두 선생님은 눈코 뜰 새 없다.
진술서, 자기 변론서를 쓰는 아이들이 머리를 굴리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아이들만 특별할 수는 없다.
오래 묵힌 괴롭힘, 간단히 끝나지 않는 감정싸움.
절차대로 겹겹이 벗겨야 하는 일의 진행.
문서가 말해주는 일은 시간과 손가락의 노고를 요구한다.
나는 눈치껏 몸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LG 팬인 선생님과 대화.
부상자가 많은데, 기아는 질 것 같지 않다나.
2군에서 올라온 선수들이 더 잘해주는 것은 무슨 상황.
초보 감독이라는데 어설픈 구석이 하나도 없다.
서건창 선수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느냐는 말에 가슴을 친다.
30살 초보 고3 선생이 제일 좋은 입시 결과를 얻은 내 경험이 소환된다.
내부에서 선의의 경쟁이 일어나고, 열심히 하면 기회는 언제든지 온다는 동기 유발 효과가 느껴진다.
다른 팀을 응원한다는 것이 싸움이 아니다.
단지 취향의 문제고 각자의 방식대로 즐기는 중이다.
정치도 그러할까?
그것은 훨씬 심각하고 삶에 큰 영향을 주는 문제인 것 같다.
서로를 존중하는 단계가 올 것인가는 좀 의문이다.
먼 훗날에라도 왔으면.
서로 문제를 풀겠다고 나서는 아이들.
뭐라도 써주려면 소극적인 아이들을 깨워야 한다.
무작위로 지정받은 문제를 들고 끙끙 앓는 녀석들의 뒤통수.
그래도 기죽지 않는 기개.
국민학고 4학년 학기말방학 때, 촌에서 광주로 유학을 왔지.
7천 명이 넘는 아이들이 운동장을 가득 메우고 애국 조회를 했던 토요일.
동네로 잘못 내려온 산토끼처럼 기가 팍팍 죽었었다.
수업 시간에 책을 읽어보라는 지적이 내가 아니었으면?
얼마나 조마조마했었는데.
일어서서 두어 단어 읽으면 책이 온통 하얗게 변했지.
얼굴이 붉어지는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이 아이들에게는 그 부끄럼이 없어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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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를 신으로 모시는 고주망태입니다. 36년의 교직생활을 잘 마무리하고, 이제 진정한 자유인이 되고 싶은 영원한 청춘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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