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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상한 승리

2024.04.11. 목

by 고주


이겼으되 욕심껏 주시지는 않는다

교만하지 말라고

졌으나 씨까지 말리시지는 않는다

포기하지 말라고

다음을 또 기약하며 가야 하는 길고 긴 여정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빗방울 몇 개 후드득 털어진다.

비 오는 날은 학생 맞이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실 청소를 마치고, 우산을 챙기고 교문으로 나선다.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고 꼬십다’ 하고 눌러앉아 있기가 민망하다.

두 달 하고 절반, 아니 11년째 하는 교문 지기.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그 자리에 있었던 나라는 사람.

그 사람에게 미안해서는 안 된다.

시큰둥하게 지나치는 고얀 놈.

눈 치켜뜨고 왜 정문으로 가면 안 되느냐고 항의했던 녀석은 알아서 쪽문으로 들어간다.

위험해서라는 것을 이해했으니 당연히 고분고분해야지.

멀리서 오는 자기는 빨리 오는데, 가까이 사는 민이는 늦다고.

어떨 때는 집에까지 가는 경우가 있다고 이른다.

용인의 자동차박물관에 가서 자율자동차를 탔는데, 핸들이 스스로 움직였다고.

놀란 토끼처럼 눈이 똥그래져 쫑알거리는 정이.

하루와 신나게 놀겠다.

성적에 들어가지 않으니 너무 호들갑 떨지 말라고 했건만, 수행평가에 대해 묻는 아이들이 많다.

긴장도 되겠지, 학창 시절 처음 보는 시험이니.

이놈들아! 모두 논술형이다, 너희들은 코피 났다 인자.

수업을 눈 까뒤집고 들어도 부족한 우는 계속 고개를 묻는다.

그래 아무것도 모르니 시간이 너무 안 가지?

내일은 꼭 만나자, 아무도 모르게 몰래.

첫 단원이 끝나고 참여 수업.

희망하는 사람은 단원평가 문제를 풀고 설명하는 시간.

서로 하겠다고 칠판 앞에서 결투가 벌어졌다.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져가며 깔끔하게 설명하는 겸.

여유롭게 간단명료하게 정리하는 건.

재주는 재주다, 아무나 할 수 없는.


학생부에 뭐라도 써주려면 모두 참여해야 하는데.

뒷짐 지고 있는 녀석들은 항상 그 모양.

번호를 지목하고 강제로 풀게 한다.

사칙연산이 여러 개 겹쳐있는 계산 문제.

자신 없는 도는 쭈뼛거리다 나왔다.

앉아있는 아이들은 시끄러운 훈수로 교실을 아수라장으로 만든다.

가만 보니 별가락도 없는 애송이들이, 넘버 쓰리나 하는 버르장머리하고는.

다행히 도는 느글느글하게 넘긴다.

다른 시간에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는 모양이다.

도야 꿋꿋하게 이겨내라.

그리고 복습 좀 해라, 이 원수야.


안도현 시집을 두 권 빌려 나오는데, 시가 밥이시네요 한다.

아내가 드디어 시집에 꽂혔답니다.

자주 보다 보면 따라 하게 되고, 시인의 맘에 스며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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