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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쁜 놈들

2024.04.09. 화

by 고주


“꽃이 피어서가 아니라 네가 있어 봄이다.”

정문의 봄.

“나의 봄은 언제나 지금”

후문의 봄.

정문과 후문으로 등교하는 아이들이 스티커로 선택했던 자신의 봄.

선거 전날 아침.

아이들은 신경 쓰지 않는 듯 바쁘게 등교하지만, 알 것이다.

쪽문으로 들어가라는 안내에 불만인 녀석.

“왜 그쪽으로 가야 해요?”

“응, 차도는 위험하니까 인도를 따라 올라가세요.”

떨떠름한 표정으로 마지못해 쪽문으로 들어서는 녀석.

그럴 수도 있겠다.

기어이 서서 오줌을 누겠다는 수컷들의 알량한 자존심.

제발 내일부터는 헛심 쓰지 말자.

모닝 아이스크림을 물고 들어서는 눈꼴사나운 고슴도치 한 쌍.

방송 댄스도 곧잘 하는 저 느글느글한 녀석은 맘에 안 든다.

정문은 할 일이 많아 정신없지만 시간은 참 잘 간다.

10년 동안 해보지 않은 기안을 올린다.

안전지킴이 선생님들의 출근부, 봉사활동 기록지, 활동일지를 스캔하고 양식의 형식에 맞게 줄 맞춤, 띄어쓰기까지 앞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구불구불 돌아 마무리한다.

배워야지, 어떻게 해서든지 내 손으로 완성해야지.

뿌듯한 기분으로 퇴근했던 어제.

부장님은 지킴이 선생님들의 봉사료 지급을 위한 기안이라 경로를 행정실로 바꾸시겠단다.

어째 이런 것까지 관리자에게 보고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일을 확실히 시키셔야지, 아니 내가 어떻게 올려야 할지 자세히 물었어야 했다.

힘들어도 내 힘으로.

세상일이 호락호락한 것이 하나라도 있던가?

눈 똑바로 뜨고 두리번거리고 가야지.


말도 많은 6반.

낙타가 사막을 건너는 예로 양수에 음수를 곱하면 음수가 된다는 것을 수직선 위에서 의미를 찾는다.

마이클 잭슨의 뒤로 걷는 문워크를 몸으로 시범을 보이면서 음수끼리의 곱을 설명한다.

자세히 알지도 못하면서 대충 아는 척을 하는 아이들 틈에, 눈이 번쩍이는 한 녀석이 있다.

수개월 면벽 수도하신 스님이 득도한 것처럼.

개천에서 용이 승천하는 것처럼.

번개가 튄다.

머리에서는 천둥이 칠 것이다.

환하게 펴지는 얼굴.

이럴 때 공부하면서 환희를 느끼는 것이지.

너는 평생 나를 잊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수학과는 가지 말아라, 후회하는 제자 몇 있다.

“선생님 수업 시간에는 아이들이 조용하던데요.”

멍사 모르고 날뛰는 아이들에게 진이 다 빠졌다는 부장님.

아이들이 눈치가 없다고, 내가 부럽다고.

나이 드신 선생님을 위해 많이 봐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럴 것이다.

아이고 이쁜 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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