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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손잡고 1
25화
머리 좀
2024.04.05. 금
by
고주
Apr 28. 2024
비둘기 할멈과 할아비가 꽃놀이하신다.
바쁘게 사람들이 오가는 출근길 산책로에서 넋을 놓고
가는 바람 따라 날리는 꽃비를 쳐다보고 있다.
빨리 가자는 할멈 비둘기의 재촉에도 할아비 비둘기는 모른 체다.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르니, 눈에 가득 담겠다는 맘이다.
그 맘 지켜주고 싶어 되도록 멀리 돌아 오르는 학교로 가는 구름다리.
미세먼지 때문일까, 목이 칼칼하다.
마스크를 쓰려다 생각한다.
중무장한 노인을 교문에서 그것도 아침부터 아이들이 보면, ‘뭐 하러 나오셨소’ 하지 않을까?
그래 성의가 있지, 나만 아는 왼 입술의 불편한 모습이라도 맨얼굴로 맞이해야지.
백만 불짜리 미소를 쏘아줘야지.
비굴하지 않을 정도까지 깊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해줘야지.
내 인사받아먹고 돌려주지 않는 녀석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내 마음의 호수에 가득한 인사가 줄어드는 것 아니니 노여워 말아야지.
수업하다 보면 유독 눈길이 자주 가는 아이가 있다.
재미있는 영화의 주인공을 보듯이 한 동작도 놓치지 않는 간절한 주시.
선인장 가시를 만진 것처럼 자꾸 성가시게 심기를 건드리는 흘김.
딱히 그것 때문에, 그것의 실체도 없다.
그냥 내 마음의 문제일지 모른다.
내 맘 나도 모르겠다.
그것이 합인가? 끌어당기고 밀고하는.
밥만 먹으면 들러야 하는 화장실.
너무 깔끔해서 탈이다.
벽 너머에서 들리는 꾀꼬리 같은 중창 소리.
댄스를 시작으로 발라드까지 줄줄, 마지막은 교가다.
터져 나오는 주체할 수 없는 젊음, 부럽다 자식들.
신나게 한바탕 춤을 춘 아이들이 벚나무 아래로 쏟아져 나온다.
바람 타고 날리는 꽃잎을 잡으려 뛰어간다.
눈, 솜사탕 같은 첫눈을 받아먹으려 고개를 쳐들고 보았던 하늘.
파란 하늘을 가득 채운 겨울이 보내준 선물.
혀를 간질이던 그 감촉.
벚꽃 잎을 모아 친구의 머리에 뿌린다.
피해 도망간다.
두 번째 시작종이 울린다.
효정이는 숨을 헐떡이며 내게 와서.
머리 좀 묶어주세요, 하며 고무줄을 내민다.
천사가 꽃잎 타고 지상에 내려왔다.
일과를 마친 실험실.
예선을 통과한 아이들이 학년별로 모였다.
하얀 가운을 입고.
소금, 설탕, 베이킹파우더, 식초들을 물이 든 비커에 넣고 잘 섞는다.
작은 그릇에 붓고, 크립을 몇 개씩 넣는다.
그릇 위로 빵이 부풀 듯이 솟는 용액의 높이를 잰다.
활동지에 열심히 결과들을 옮긴다.
표면 장력에 대한 실험이다.
진지한 저 표정들, 대한민국의 미래다.
그런데 왜? 여자아이들이 더 많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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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를 신으로 모시는 고주망태입니다. 36년의 교직생활을 잘 마무리하고, 이제 진정한 자유인이 되고 싶은 영원한 청춘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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