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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주사

2024.04.03. 수

by 고주


덜 핀 벚꽃이 비에 젖어 누워있다.

여리디 여린 것이.

시집도 못 가고 하늘나라로 가버린 불쌍한 처녀처럼 짠하다.

재수가 없는 걸까요?

그냥 운명일까요?

우산을 받쳐 들고 함께 학생 맞이를 하는 교장선생님.

어제 안전사고 때문에 난리가 난 상황을 이야기해 주신다.

천정이 무너졌다고 학생들이 교장실에 들이닥쳤단다.

올라가 보니 3학년이 사용하는 5층 화장실 구석진 천장의 타일이 한 줄로 떨어져 있더란다.

시공업자를 부른다, 교육청에 연락한다, 학교가 발칵 뒤집어졌는데.

하교 후에 한 학생이 찾아왔단다.

자기가 점프를 해 천장을 손으로 짚었는데 타일이 떨어졌다고.

다행히 어깨 부위를 덮쳤단다.

날카로워 얼굴이라도 닿았으면 큰일 날뻔했다고.

그 정도로 떨어졌으면 결국 잘못한 것이라고.

예방주사 맞았다고 생각하시라 위로했다.

떠벌이 6반.

숫자를 직선 위에 표시하는 것도 어렵다는 아이가 있다.

왜 집중 못 한다 싶었는데.

다 할 줄 안다고 생각한 것이 잘못이지.

자존심 상하지 않게 필요성을 느끼게 해주는 방법은 없을까?

여기서 손을 놓으면 영원히 개천의 미꾸라지다.

따로 불러야겠다.

옆에서 화를 돋우고 있는 공 씨.

지가 조금 안다 그 말이지.

아주 조심스럽게 타일렀다.

활기 넘치는 분위기는 좋다, 다만 수업에 지장이 없도록 해달라고.

말귀 알아들으면 어른이지.

어디 다음 시간에 보자, 이놈.


5층 3학년 교실을 지나 4층 2학년.

6반 교실 앞에 발 디딜 틈도 없이 아이들이 몰려있다.

헤치고 들어가 보니 덩치 큰 놈과 멀대 여자아이가 한참 실랑이 중이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눈물을 줄줄 흘리는 여자아이.

구경 났다고 고개 디미는 못난 중2들.

여자아이를 데리고 학생부실로 내려온다.

남자아이들이 장난으로 바지를 벗겼는데, 의도치 않게 보게 되었다.

당황할 것 같아 모른 척했는데, 자꾸 와서 속옷 색을 묻고 괴롭힌다는 내용.

종이를 한 장 주고, 좀 진정하고 천천히 상황을 써보라고.

수업을 마치고 내려와 보니, 부장님이 남학생까지 불러 각각 진술서를 받아놓았다.

말이 다르단다.

일단 담임선생님과 2학년 부로 진술서와 함께 사건을 넘긴다.

괜히 일만 복잡하게 만든 것 아닌지.

음수를 빼면 양수, 음수와 양수를 곱하면 음수, 음수끼리 곱하면 양수.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 주느냐고.

36년 선생님을 해보았지만, 중1은 작년 두 달이 전부다.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고 했는데, 왜냐고 물으시면?

아이고 머리야.

자료를 뒤져라, 고민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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