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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주 Jun 04. 2024

예감

2024.05.03. 금

     

제법 빠른 시간에 등교하는데, 학교 후문 앞 공원 기구 위에서 방방 뜨고 있는 저 어르신.

저렇게 흔들어 대다 혹시 다치시기라도 하면?

팔을 돌리는 옆 기구로 옮기시는데,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신다. 

무엇이 서기도 힘든 저분을 밖으로 불러내는 것일까?

또 눈을 떴구나,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스스로 하루를 열어가시는 것은 아닐까?   

  

횡단보도에 설치한 배너에 불만인 임 샘. 

본인이 서서 교통지도를 하는 위치여서 방향을 바꾸시겠단다.

기다리는 학생들이 잘 볼 수 있는 곳이라 제대로라는 정 샘.

사고 예방에 도움이 된다면 아무렴 어째도 상관없다.

두 분이 잘 타협하시겠지.    

  

양팔 저울이 평형한 상태에 있다면, 양쪽에 똑같은 무게를 더하거나 빼도 그대로 유지된다는 사실.

바로 등식의 기본성질.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난 유클리드가 기원전 3세기경 썼다는 ‘유클리드의 원론에 나온 공리.

그 후 지금까지 대수학의 기본이 된 원리.

너무 당연한 이야기들이라 쉽게 생각했겠지. 

제들이 배우고 있는 교재도 바로 원론의 번역서라는 사실은 몰랐겠지. 

건방진 몇 놈, 공부 좀 한다는 얄미운 꼬락서니들.

학원 교재를 놓고 문제를 풀고 있다.

이놈들아, 세상도 사람도 당연한 것들이 중요한 거야.

그걸 모르면 엉망 되는 것이여.


점심을 먹고 화장실 쪽으로 가는데, 복도에 아이들이 가득하다.

날 보더니 우르르 달려오며 ’ 멋있어요 ‘ 한다.

“뭘 부끄럽게 가만히 이야기해 줘.”라고 하려는데 날 지나친다.

뒤쪽에 젊은 부장의 모습이 보인다.

큰 소리로 이야기했다가는 아주 낭패를 보았겠다.

젊음은 이길 수가 없다.

아이고 허리야.

들었던 손은 허리만 콩콩 두드린다.

화장실까지가 너무 멀다.    

 

처음 직접 찾아와 받는 수학 질문.

양변을 제곱하여 얻은 값을 주어진 식에 대입했는데, 왜 답이 틀리냐는 것이다.

같은 것을 제곱하면 당연히 같지만, 제곱한 값이 모두 원래의 값이 된다고 할 수는 없다.

무연근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설명하니 얼굴이 환하게 펴진다.

중학교 3학년 과정.

과학고를 준비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재미있단다.

수업 시간에도 눈빛 한번 흐트러지지 않고 집중하는 녀석이다.

크게 될 놈은 떡잎부터 다르다니까.

자주 볼 것 같은 예감.

질문만 보아도 어느 정도쯤 될지, 내 36년의 세월 중에 서 있는 어느 제자의 모습이 겹친다.     


농부 시인의 시는 크게 입맛에 맞지 않다는 아내.

기형도 시집을 빌려달란다.

어려운데, 너무 심각한데.

역시 전생에 마리 앙투아네트였을 것 같은 아내의 취향은 남다르다. 

’ 엄마 걱정‘ 만큼은 항상 누구에게나 울컥해지는 감동이 있다.

장모님이 화순에서 아픈 허리로 담가 보내주신 열무김치를 뜨거운 흰밥에 쓱쓱 비벼.

한 입 몰아넣고.

눈물과 함께 삼키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린이날 이른 점심.      



         

엄마 걱정        -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 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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