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결심/이해인
마음이 많이 아플 때
꼭 하루씩만 살기로 했다
몸이 많이 아플 때
꼭 한순간씩만 살기로 했다
고마운 것만 기억하고
사랑한 일만 떠올리며
어떤 경우에도
남의 탓을 안 하기로 했다
고요히 나 자신만
들여다보기로 했다
내게 주어진 하루만이
전 생애라고 생각하니
저만치서 행복이
웃으며 걸어왔다
『희망은 깨어 있네』 마음산책 2010
어떤 일이 고통스러운 것은 그 일이 마음속에 눌어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상도 하지요. 즐거운 일은 그 순간이 지나면 순식간에 사라지는데 마음 아픈 일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습니다. 고통스러운 일도 그러하지요. 나쁜 일은 왜 그렇게 우리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을까요.
그것은 우리 뇌가 부정 편향적이기 때문입니다. 학자들은 그 일을 "과거 그러한 [부정적인] 편향을 지닌 조상들의 생존 가능성이 더 컸다"(바우마이스터 박사https://www.bbc.com/korean/international-64149594 )고 설명합니다.
동일 기사에서 실제로 인간은 위협을 감지하도록 구조화된 존재로, 생후 8개월밖에 안 된 아기들도 친근한 얼굴의 개구리보단 뱀 사진 쪽으로 더 급히 고개를 돌아본다. 그리고 5살이 되면 화가 났거나 두려운 얼굴을 행복한 얼굴보다 우선시하게 된다고 언급하지요.
그것은 우리 뇌가 살아남기 위해 부정적인 것을 더 오래 기억하도록 설계되었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스트레스의 원인을 설명하는 이론입니다. 즉 오늘날 거의 모든 병의 원인이 된 스트레스는 궁극적으로는 살아남기 위해 인간의 뇌가 부정적인 것을 더 오래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그 부정적인 것이 너무도 강렬한 경우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됩니다.
오늘날 누구나 알고 있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는 부정적인 기억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좋은 설명입니다. 뇌가 끊임없이 사고 당시의 기억으로 돌아가고 있는 거지요. 잊지 않아야 다음을 대비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잊지 않아야 다음에 동일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할 수 있습니다.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이 시의 화자가 마음이 많이 아플 때 꼭 하루씩만 살기로 했다는 결심은 부정적인 기억에서 벗어날 아주 좋은 방안입니다. 꼭 하루란 그 일이 일어난 그 하루지요. 그 하루가 지나가면 마음 아프게 한 일을 내려놓거나 잊어버리는 겁니다. 누군가 말하듯 아침은 항상 신선함으로 희망으로 가득 차 있으니까요.
저 역시 그러했습니다. 독일에서 잠시 머무를 때 입원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런저런 검사를 끝내고 병실로 갔지요. 고열로 밤새 잠을 못 이루고 뒤척였습니다. 그날 밤은 끝없이 길었습니다. 누군가 울고 있었어요. 그 흐느낌이 얼마나 아픈지 저도 눈물이 났습니다. 새벽이 찾아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던지요. 창문만 하염없이 바라보았지요. 아침이 되니 살 것 같았습니다. 이상도 하지요. 아픔은 여전한데 기운이 났던 겁니다. 후에 같은 병실에 있던 사람들은 그 밤에 운 사람은 저였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왜 아침을 기다렸을까요? 아침이면 무언가 달라진다는 기대에서였을까요? 아마도 햇살 덕분이 아닐까요. 빛은 가볍다는 의미니까요. 아침은 밤을 털어냅니다. 아침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게 합니다. 아침은 지난밤의 어둠을 모두 몰아냅니다. 어둠이 절망이라면 빛은 희망이지요. 빛과 어둠, 희망과 절망.
몸이 많이 아플 때 꼭 한순간씩만 살기로 했다는 건 더더욱 의미심장합니다.
연구에 의하면 아픔은 15분씩 지속된다고 합니다. 15분이 지나면 잠시 휴지기가 찾아오고 다시 또 시작된다는 것이지요. 항암 요법으로 고통이 극심할 때 아주 잠깐 아픔이 멎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살 것 같습니다. 그 아픔이 사라진 것 같은 착각을 합니다. 조금 지나면 다시 아픔이 시작되지요. 아픔은 가고 옵니다. 그러므로 화자가 말하듯 몸이 많이 아플 때 꼭 한순간씩만 살기로 했다는 건 아주 정확한 묘사입니다. 아픔을 느끼는 그 한순간만 살다가 다시 내려놓는다는 의미지요. 한순간이 지나면 아픔을 내려놓고 다시 아파하고 또 한순간이 지나면 그 아픔을 또다시 내려놓는 겁니다. 아픔이 흘러가도록 하는 아주 좋은 방법인 셈입니다.
한순간만 살자는 건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집중하자는 것이지요. 지금 이 순간만 산다는, 그 일 자체가 현재에 집중한다는 의미입니다. 어제도 없고 미래도 없는 것처럼 산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까요. 최선을 다해 최고의 순간을 누리는 것처럼 기쁘게 또한 향기롭게 살지 않을까요.
그런 다음에 화자는 고마운 것만 기억하고 사랑한 일만 떠올리겠다고 합니다. 긍정적인 것만 기억하겠다는 의미지요. 고마운 것과 사랑한 일은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누군가 나에게 베풀었을 때 느끼는 것이 감사지요. 한편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세상에 대한 기여입니다. 그러므로 감사와 사랑만 기억한다는 것은 곧 나의 소중함을 되새긴다는 것이지요.
고마움과 사랑은 나의 태도에서 비롯합니다. 철 따라 다른 꽃이 피거나 음식을 먹거나 하는 당연한 일에도 고마움을 느끼는 일은 세상을 보는 태도에 나옵니다. 그 모든 일에 대한 감사를 느끼는 것이지요. 살아 있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섭리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일에건 남 탓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무언가 원인이 있어 이 일이 일어났고 그 일은 나와 관련된 무언가로 일어났다고 보는 태도지요. 더 넓게 보면 이 모든 일은 나비효과와 같은 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은 서로 연관되어 있기에 원인이 없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한편으로 이 일은 카르마와 같은 삶을 한층 더 넓고 길게 보는 태도와 연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은 학교라는 시각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 올 때는 무언가 목적이 있어 왔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모든 일을 설계했으며 그로 인해 어떤 배움을 얻을 수 있다는 시각이기도 합니다. 많은 이들이 이런 시각으로 보았지요. 마야 앤젤루는 「나는 배웠다」”라는 시로이 시각을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세상을 학교로 보는 시각은 동일합니다. 놀랍지 않은가요.
쉽고도 친근하게 씌여진 시지만 그저 쉽게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꼭 하루씩만, 꼭 이 순간만 전부로 여기기로 했다는 이 구절은 오랜 세월 삶의 의미를 탐구하면서 살아온 이의 흔적이 역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