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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수자 Oct 25. 2023

낮에도 별은 빛난다

12화 마지막 회 낮에도 별은 빛난다

  겨울밤은 길었다.

  재훈은 밤중에 한 번씩 깨는 날이 많아졌다. 12시일 때도 있고, 새벽 3시일 때도 있었다. 예전처럼 혼자만 쓰는 방이 아니라 할머니가 깰까 봐 조심조심 밖으로 나오곤 했다. 밖으로 나오면 언제나 반겨 주는 건 바람이었다. 제일 먼저 재훈의 품속으로 안겨들었다. 그다음은  별이었다. 이름을 모르는 숱한 별들.  쏟아질 것같이 반짝거리며 재훈을 반겼다.

  갑자기 옛집에 있던 진세가 생각났다. 작별도 못 하고 다른 집으로 가버린, 털이 반짝거리며 재훈을 따랐던 셰퍼드 진세. 또, 재훈이 사랑했던 마당의 목련 나무. 앙상할 때는 메마른 대로, 하얗게 꽃을 달았을 때나, 꽃이 져 버리고 나서 무성하던 초록 잎도 재훈은 좋아했다.

  그리고, 어머니. 피를 나눈 사람처럼, 재훈을 아끼고 사랑해 주었던 별 같은 어머니. 눈부시게 빛나지 않으면서 늘 깊은 물 같았던 어머니. 어머니만 생각하면 재훈은 죄를 지은 것처럼 우울해졌다. 부끄러웠고, 가슴이 아팠다. 영원할 줄 알았던 것이 그렇게 쉽게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슬펐다.

  재훈은 마루에 앉았다.

  멀리 바다에 잠긴 불빛도 재훈처럼 잠이 들지 못하고 있었다. 괘종시계가 ‘댕’ 하고 한 번 울었다.

  문소리를 못 들었는데, 큰누나가 조용히 서 있었다.

  “잠이 오지 않니?”

  “어, 큰누나!”

  벌떡 일어난 재훈은 누나를 바라보았다.

  “저기 서쪽 하늘에 보이는 저 별이 무슨 별인지 아니?”

  “어디?”

  “마당으로 내려와 봐. 사각형으로 이어진 가운데 나란히 있는 세 별이 삼태성이고, 왼쪽 위에 붉게 보이는 별은 리겔, 오른쪽 아래 푸르게 빛나고 있는 별이 베텔게우스라고 해. 이 별자리가 겨울 하늘에 보이는 유명한 오리온좌란다.”

  “응, 저 별이 오리온이었구나.”

  “오리온은 힘센 사냥꾼이었는데, 달의 여신과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대. 그런데, 달의 여신 오빠는 오리온을 싫어했단다. 그래서, 오리온을 없애기로 마음먹고, 오리온에게 금빛을 씌워, 활을 잘 쏘는 달의 여신에게 맞추어 보라고 했지. 아무것도 모르는 달의 여신은 사랑하는 오리온을 자기 손으로 쏘아 죽게 되자, 눈물로 밤을 새우며 신에게 빌었단다.”

  재훈은 눈을 반짝이며 누나 이야기를 들었다. 재미있었다. 별들도 사람처럼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하니 신비로웠다.

  “그래서 누나, 어떻게 되었는데?”

  “달의 여신이 언제라도 볼 수 있도록 신은 오리온을 별로 만들어 주었다는 거야.”

  재훈은 어머니 생각이 났다. 어머니도 죽으면 별이 되고 싶다고 했었다.

  “누나, 엄마도 죽으면 별이 되고 싶다고 했어. 정말 별이 된 것일까?”

  “글쎄, 별이 되었으면 아마 지금 우릴 내려다보고 계실 거야. 그리고, 너와 내가 이렇게  얘기하는 걸 보고 기뻐하실 거고.”

  “어머니는 별이 밤에만 빛나는 것이 아니라, 낮에도 반짝이고 있다고 했어. 다만 우리가 그걸 보지 못하고 있다고 ……. 이제야  그 뜻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아. 어머니의 사랑은 언제나 하늘의 별처럼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그래, 우린 보이는 것만 믿으려 하지. 낮에는 태양 때문에 상대적으로 별빛이 약해져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고 있지.”

  누나는 오른팔을 재훈의 어깨에 얹었다.

  “재훈아, 어머니는 저 하늘 어디선가 우리를 지켜보는 아름다운 별이 되어 있을 거야.”

  “누나, 이제 낮에도 빛나고 있는 별들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별들이 재훈의 가슴속에 내려와 빛나고 있는 것 같았다. 누나 눈동자에도 별이 내려온 것처럼 반짝거렸다.

  재훈은 누나와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는 이 한밤이 소중하고, 행복했다.

  어느새, 바람도 잠들었는지 조용해졌다.

  “들어가자.”


  선영 누나가 졸업한 다음 날, 재훈의 졸업식이 있었다.

  운동장에서 식을 마치고, 교실로 들어가 마지막으로 선생님 말씀을 들었다.

  “이별은 짧을수록 좋겠지. 평소에 잔소리가 많았으니까, 오늘은 딱 한 마디만 할게. 잘 가.”

  아이들은 웃지 않았다. 잔소리로 닦달하던 선생님이었지만, 헤어지려니 눈물이 났다. 특히 재훈에게 얼마나 자상한 선생님이었던가?

  “선생님, 안녕히 계십시오.”

  “그래, 재훈아. 중학교에 가더라도 자주 연락하자. 운명은 개척해야 하는 것이지만, 받아들여야 할 때도 있는 거야. 똑똑하니까 잘 알겠지?”

  “네, 선생님. 노력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오른손을 내밀었다. 재훈도 오른손을 내밀고 힘을 주었다.

  “선생님, 이거 손수건이에요.”

  “노란 손수건?”

  재훈은 예쁜 포장지에 싼 손수건을 내밀었다.

  “선생님이 해 주신 ‘노란 손수건’ 이야기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그래, 고맙다.”

  나오면서 선생님께 할 말을 빠뜨린 것 같아 문 앞에서 돌아섰다.

  “선생님, 결혼하거든 꼭 연락해 주세요.”

  선생님은 초승달처럼 웃었다.

  재훈이 운동장으로 나오자, 가족들이 반겨 주었다. 오랜만에 면도를 한 아버지 턱이 파르스름하였고, 할머니도 재훈의 손을 잡으며 환히 웃었다.

  장미꽃다발을 들고 서 있던 미영 누나도, 예쁘게 포장한 책을 내밀고 악수를 청하는 선영 누나도, 모두 재훈의 졸업을 축하해 주었다.

  모두의 가슴에 사랑이 가득한 순간이었다.

  재훈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맑은 하늘 가운데 해님이 빛나고 있었지만, 재훈은 낮에도 빛나고 있는 어머니의 눈부신 별을 볼 수 있었다.

  어디선가 장미 한 송이를 들고 달려오던 지혜가 재훈에게 꽃을 내밀자, 그 순간을 놓칠세라 큰누나가 찰칵 셔터를 눌렀다.

  그것을 보고 활짝 웃는 모두의 얼굴도 큰누나는 놓치지 않았다.

  낮에도 별은 모두의 가슴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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