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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수자 May 08. 2024

어른을 위한 동화 10선

6화 해바라기 아저씨

  “셋방 한 칸 있습니다.”

  효정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대문에 붙었던 종이를 떼어 냈다.  

  좁은 마당에 서 있는 해바라기만 고개를 끄덕일 뿐 언제나처럼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아저씨라면 공부방을 내주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해바라기를 닮은 아저씨.

  효정은 어제까지 쓰던 공부방에 들어가 비어 있는 방을 둘러보았다.  

  양팔을 들고 빙 돌면 벽에 손이 닿을 만큼 좁은 방이었지만, 처음으로 갖게 된 혼자만의 방이었다.  

  주민 센터에서 근무하는 아버지와 조그만 사무실에 나가는 어머니가 십여 년을 모은 돈으로 지난해 이 집을 샀을 때 엄마 아빠는 물론 효정이도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주인집 할머니의 고함 때문에 뛰어놀지도 못한 사글셋방. 할머니가 무서워 두 번 다시 효정이 집에 오지 않겠다던 친구들에게 제일 먼저 자랑하고 싶었다.  

  효정은 방을 닦고 또 닦았다. 벽에는 안개꽃을 말려서 걸어두고, 먼지 앉은 유치원 때 사진도 꺼내 말끔히 닦아 책상 위에 붙어 놓았다. 이모 집에서 얻어온 분홍빛 커튼까지 고쳐서 창문에 달고 보니 효정은 마치 공주가 된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효정이 방에 어머니가 들어와 말씀하셨다.  

  “효정아, 네 방을 세를 놓았으면 하는데…….”

  “세를 놓는다고요? 싫어요! 엄마.”

  효정은 딱 잘라 말했다.  

  “너희 둘만 집에 두기도 겁나고 무리를 해서 집을 샀더니 돈이 좀 모자라는구나.”

  “엄마, 저도 이제 5학년이에요. 혼자 있고 싶다고요.”

  “그건 그래, 우리는 내 집을 갖기 위해 방 한 칸에서도 옹기종기 모여 살지 않았니? 그때를 생각해 봐.”

  효정은 엄마를 쳐다보았다. 

  엄마의 거칠어진 손이 효정이의 어깨 위에 올려졌다.  

  “……, 알았어, 엄마.”

  힘없이 효정이가 말했다.  

  “미안하다. 중학생이 되면 꼭 네 방을 돌려줄게.”

  다음 날 아침 효정이네 대문에는 ‘셋방 한 칸’ 종이가 아버지 손에 의해 붙어졌다.  

  그러나 사흘이 지나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나흘째 되는 날, 젊은 부부가 와서 방을 보고는 너무 좁다고 돌아가 버렸다.  

  은근히 아무도 오지 않았으면 하고 효정은 바랬다.  

  “여보, 세를 주기는 방이 너무 좁은 것 같소. 효정이도 내키지 않는 모양인데 좀 힘들더라도 거두면 안 되겠소?”

  “무슨 말씀이에요.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된 것도 아끼고 또 아낀 덕분인 것을 누구보다 당신이 잘 알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 효정이가 너무 아쉬워하잖소.”

  “아끼고 절약하는데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아이예요. 걱정 마세요.”

  마당에 우뚝 선 해바라기가 잘 여문 얼굴로 고개를 수그리고 있는 여름날 저녁이었다.  

  “실례합니다!”

  해바라기처럼 긴 다리를 가진 아저씨 한 사람이 쪽문을 열고 들어왔다.  

  효정은 그 아저씨를 보자 움직이는 해바라기가 서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 손님이에요. 어서 나와 보세요!”

  “에 또, 방을 좀 볼까 합니다.”

  “네 이쪽으로 들어오시죠. 가족은 몇인가요?”

  어머니는 아저씨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에, 또, 가족은 없어요.”

  “그럼, 혼자 사세요?”

  어머니가 다시 물었다.  

  “에, 또, 가족은 모두 서울에 있어요. 이번에 큰 뜻 대학교로 옮기는 바람에 혼자 쓸 방을 구하고 있답니다만.”

  “어머, 교수님이시군요.”

  “에, 또 그렇습니다.”

  “에, 또, 교수님.”

  효정은 입을 가리고 쿡쿡 웃었다.  

  “에, 또, 잘 웃는 너는 몇 학년이지?”

  교수님은 효정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에, 또, 5학년이에요.”

  “아니? 쟤가 버릇도 없이…….”

  어머니도 효정을 흘겨보면서 웃음을 참고 있었다.  

  “하하하! 버릇을 들켜 버렸군요. 우리 애들한테도 늘 당한답니다.”

  교수님도 크게 웃었다.  

  “그런데 방이 너무 좁아서 교수님께서 지낼 수 있을는지 모르겠어요.”

  “에, 또, 이만하면 됐습니다. 학교가 가까워서 좋습니다.”

  “언제쯤 오실 예정인가요?”

  “내일 이때쯤 오겠습니다.”

  효정은 교수님이 있을 방을 쓸고 닦았다.  

  어제 어머니랑 책상을 옮기고 청소까지 했지만, 새 주인을 위해서 창문을 활짝 열고 먼지도 훌훌 다시 털었다.  

  드디어 교수님이 오셨다.  

  효정은 동생과 같이 뛰어나가 인사를 했다.  

  “그래. 앞으로 잘 부탁한다.”

  교수님 방에서는 언제나 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 출근한 후에 교수님은 일어났다.  

  효정이가 동생을 데리고 학교 갈 무렵이면 교수님은 마당에 나와 체조를 하였다.  

  “교수님,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잘 갔다 오너라.”

  학교 가는 길에서 동생이 효정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언니, 요즘 교수님이 ‘에, 또’ 란 말을 잊어버렸나 봐.”

  “그래?”

  “아이들한테 ‘에, 또’ 교수님이 우리 집에 산다고 말했거든.”

  “저런, 그런 소리는 하는 게 아니야. 좋은 별명이 얼마나 많은데…….”

  “좋은 별명, 어떤 게 있어?”

  “해바라기 아저씨, 어때?”

  “맞아, 해바라기처럼 키가 크고 멋져.”

  동생과 효정은 마주 보며 ‘크크크’ 웃었다.  

  효정이 공부방을 내어준 지도 반년이 지났다.  

  “엄마, 제 방을 세 주길 참 잘했어요.”

  “이런, 언제는 뽀로통해 있더니.”

  “집에 오면 아무도 없다가 교수님이 계시니까 든든하기도 해요.”

  “나도 그래. 모르는 것이 있으면 우리 선생님처럼 잘 가르쳐 주세요.”

  동생도 교수님 자랑을 하였다.  

  “얘들아, 교수님은 바쁘단다. 귀찮게 해서는 안 돼.”

  아버지가 동생에게 다짐하듯이 말했다.  

  “그래, 모르는 건 언니한테 묻도록 해, 연구하는데 방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어머니도 거듭 다짐하였다.  

  “하지만, 교수님이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보라고 하셨는데…….”

  동생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더라도 너무 자주 괴롭히는 게 아니야.”

  “네!”

  효정과 동생이 똑같이 대답했다.  

  그러나 그들은 궁금한 것이 있으면 바로 달려가 묻곤 했다.  

  교수님은 두꺼운 책을 펴놓고 글을 쓰고 있다가도 귀찮아하지 않고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쉬는 날, 밖에 나가시지 않으면 아버지와 바둑을 두기로 하고 효정이네와 식사를 하기도 했다.  

  학교 갈 때나 집에 돌아왔을 때 인사를 받아 주는 교수님이 없을 때는 엄마 아빠가 없을 때처럼 허전하기까지 하였다.  

  낙엽이 지듯이 달력의 날짜도 하나둘 떨어져 나갔다.  

  어느덧 6학년이 된 효정은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 늦어졌다.  

  그래서 교수님과 이야기할 시간도 없었다. 교수님도 바쁘신지 집에 계시는 날이 드물었다.  

  9월이었지만, 햇볕이 따가운 토요일 오후였다.  

  “다녀왔습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동생은 가방을 내려놓고 놀이터에 나가 노는지 없었다.  

  마당에 있는 해바라기도 고개를 떨어뜨리고 이파리도 누렇게 변했다.  

  효정은 마당에 나와 하나 둘 체조를 하기 시작했다.  

  “어, 효정이가 하는 체조는 아침 체조가 아니라 토요 체조로구나.”

  “교수님, 다녀오셨습니까?”

  “그래, 오랜만이지.”

  “네, 더우시죠? 어서 씻으세요.”

  “응, 씻고 나올게.”

  교수님은 나뭇잎이 그려진 셔츠를 입고 밖으로 나왔다.

  “교수님, 전 해바라기를 보면 꼭 교수님을 보는 것 같아요.”

  “해바라기?”

  “네, 해바라기는 키가 크죠. 노랗고 둥근 얼굴은 언제나 웃는 교수님을 닮았죠?”

  “해바라기가 날 닮았다, 싫지는 않은데…….”

  “그래서 제가 별명을 해바라기 아저씨라 지었어요.”

  “‘에, 또’ 교수보다 훨씬 좋은데, 해바라기 아저씨가.”

  “해바라기 아저씨!”

  “왜 그래요? 효정 아기씨.”

  둘은 마주 보고 웃었다.  

  푸른 하늘에는 하얀 구름이 둥실 떠가고 바람도 살살 불어왔다.  

  “곧 가을이 오겠구나.”

  교수님은 마루에 걸터앉았다.

  “이제 효정과 함께 지낼 날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무슨 말씀이세요?”

  “서울에 있던 학교로 다시 가게 되었어. 가족들과도 떨어져 있으니 보고 싶기도 하고 말이야.”

  “……, 잘 되었네요.”

  효정처럼 해님도 힘없이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너희들과도 정이 들었는데 헤어지려니 섭섭하구나.”

  “그래요, 교수님. 마당에 있는 해바라기는 씨앗을 받아 내년에 심으면 다시 볼 수 있지만 아저씨는 언제 또 보아요?”

  “효정의 마음에 아저씨의 마음을 심어 놓고 갈게.”

  “마음에다 심어요?”

  “그래, 마음에 추억을 심어 놓으면 영원히 같이 있는 것처럼 생각된단다.”

  효정이 어깨에 한 손을 얹은 해바라기 아저씨가 말을 이었다.

  “자주 연락하자, 너희들이 서울에 올라오면 만나면 되고…….”

  효정은 중학생이 되기 전에 공부방을 다시 찾았지만 조금도 즐겁지 않았다. 한 번씩 해바라기 아저씨가 효정이 마음에 심어 둔 추억을 생각하면서 씨앗을 종이에 곱게 쌌다.  

  내년이면 마당에서 반겨줄 해바라기 아저씨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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