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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오아쿠아 Oct 02. 2023

국제 갤러리로 가는 길

10여 년 전 리움의 상징적 조각에 매료된 후

추석 연휴 하루를 남기고 곧 오픈하는 나의 스튜디오에 들러서  5년 전  동생에게 맡겨두었던 오브제 스피커를 받았다.


나에게 귀여운 조카가 하나 있는데 고 녀석이 예중준비를 한다고 한다.

독일로 떠날 때 초등학교에 막 입학할 때였는데 훌쩍 자란 조카가 기특하고 신기했다.


나는 미술관과 작은 갤러리를 가는 것을 워낙 좋아하기에 동생과 조카에게 국제 갤러리에 가자고 제안했다.

강남은 연휴 때는 정말이지 차가 없는 한적한 대형 도로이다. 그곳에서 강북으로 넘자마자 교통체증이 시작된다.


국립 공예 박물관을 지나 북촌 마을로 들어가서 민속박물관 맞은편 쪽 대로변에 귝제 갤러리 K1, K2, K3 가 있다.


그 근처로 맛집과 항아리 빙수로 유명한 카페, 작은 갤러리들, 한옥의 형태인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멋스럽게 어우러져 있어서 관광객들로 언제나 붐빈다.

10여 년 전 리움 미술관에 처음 갔을 때 나는 아니쉬 카푸어 조각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한참을 왔다 갔다 하며 보면서 매료되었었다.


 영국 런던 로열아카데미와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에 소개되어 인기를 끌었던 2000년대 대표작 <큰 나무와 눈>(2009) 일 듯하다. 루이스 부르주아의 거대한 거미 조각 <마망>이 있던 리움의 앞마당에 들어선 이 작품은 스테인리스 공 73개가 15m 높이로 쌓인 형태로, 릴케의 시집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반짝이는 공에 비친 이미지들, 그리고 공들이 중첩되면서 만들어내는 작품 자체의 이미지가 하나로 섞이며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매년 리움 미술관을 갈 때마다 큰 나무와 눈을 보고 사진을 찍었다.


이 초대형 조각품은 계절에 따라서 건물 안에서 바라볼 때와 가까이서 볼 때마다 새롭고 신선하다.


단순함과 단순함의 연결 혹은 파괴에서 오는 무언가를 재창조하기도 하고 무언가를 어떻게 사라지게도 하는 강한 힘을 주는 작품인 듯하다.


한국으로 와서 참 운 좋게 에드워드 호퍼에 이어서 아니쉬 카푸어 전시까지 보게 되다니 너무 감사하다.

21세기 가장 선구적인 작가 중의 하나로 평가받는 카푸어는 회화부터 대형 공공미술품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면서도 늘 극도로 간결해서 강렬한 형태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을 선보여왔다. 이번 전시회는 2016년 이후 7년 만이다.


귝제 갤러리에서 네 번째 개인전으로 서울 K1, K2, K3 전 공간에 걸쳐 조각, 페인팅, 드로잉을 망라하는 다채로운 작업을 큰 스펙트럼으로 소개하고 있었다.


무언가 원초적이고 불안전한 감각을 촉발하는 카푸어의 페인팅 작품을 보면 물질과 물질사이의 흡수와 강한 파괴력 속에서 형성되는 단순함을 끌어내어  그의 다양한 작품에 반영시키는 듯하다.


지극히 나의 개인적인 느낌과 견해이다.

73개의 스테인리스 공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아니쉬 카푸어를 몰랐던 나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그에 대해서 강한 호기심과 그의 작품을 하나둘씩 알아가게 했다.


일 년 중 가장 한가한 강남의 도로를 10분 만에 넘어가서 관람한 아니쉬 카푸어의 전시회는 추석 연휴 나에게 최고의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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