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야말로 계획이 필요하다
“취미가 뭐예요?”
아이스 브레이킹으로 자주 듣는 질문이다. 나는 이 질문에 답하는 게 늘 어려웠다.
사람에게는 3종류의 취미가 필요하다고 한다.
1) 몸을 쓰는 취미
2) 감정을 쓰는 취미
3) 아무것도 쓰지 않는 취미
취미마저 종류를 나눈다니, 처음에는 다소 복잡하게 들렸다.
몸을 쓰는 취미, 즉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20대가 된 이후 계속 가지고 있었다. 20대 때부터 체력을 키워야 나이 들어도 건강하다며 주변 어른들은 따뜻한 잔소리를 해주셨다. 하지만 이를 실천으로 옮긴 것은 겨우 3개월째이다.
내가 몸을 쓰는 취미를 고를 때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요소는 “스트레스가 풀리는가”였다. 이미 스트레스가 가득한 일상에서, 운동마저 스트레스가 된다면 오래 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운동을 위한 운동인 철기구 운동, 즉 헬스는 나에게 또 다른 to-do가 생기는 것 같아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그다음으로 중요하게 생각한 요소는 “동적인 운동인가”였다. 원래 행동반경이 넓지 않은 나 같은 내향인에게 운동은,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사건이다. 일전에 골프를 쳤을 때 따분함을 느꼈던 나였기에. 요가 혹은 필라테스 같은 정적인 운동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할 것 같았다.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운동은 검도였다. 목검을 내려칠 때의 쾌감과, 탁탁하고 울리는 소리가 너무 좋았다.
그다음으로 하고 싶었던 운동은 테니스다. 학창 시절 배드민턴을 꽤나 쳤는 나는, 유사해 보이는 테니스도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검도와 테니스는, 자주 하기에는 나의 약한 손목이 허락하지 않았다.
태권도, 결국 내가 선택한 운동이다.
아빠가 추천해 주셔서 집 근처 도장을 다니기 시작했고, 지금은 매주 2회씩 빠짐없이 가고 있다.
태권도를 계속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주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스트레스가 풀린다. 태권도 미트를 발로 정확하게 찼을 때 “팡”하고 울리는 소리는, 내 속을 뻥 뚫리게 만든다. 그리고 그 소리는 ‘지금 내 자세가 좋구나’에 대한 확신을 준다.
2. 검은띠라는 목표가 있다. 목표지향적인 나에게 딱 맞는 운동이었다. 물론 품새를 외우는 것이 나에게는 다소 스트레스로 다가와서, 국기원에 들어갈지 말지 고민 중이다.
3. 호신술로 사용할 수 있다. 겁이 많은 나에게,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생기는 것은 좋은 일이다. 특히나 맨몸 운동인 만큼, 긴급 상황에서도 써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런 일은 발생하면 안 된다.)
이외에도 태권도를 계속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결론적으로 체력이 좋아지는 게 느껴진다. 출근할 때 지하철역의 계단에 숨차했던 내가 가뿐하게 계단을 오르고, 업무용 모니터만 하루종일 보느라 찌뿌둥하던 몸이 개운하게 느껴진다.
“감정을 쓰는 취미”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다소 생소하게 느껴졌다. 감정을 쓰면 썼지, 취미로 쓴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를 나에게 설명해 준 친구는 일례로 “연애”를 들었다. 하지만 나는 연애는 취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감정을 쓰는 취미”를 “생각을 쓰는 취미“로 재정의했다.
언젠가부터 책을 읽는 게 좋아졌다. 학생 때 의무적으로 요구되는 독서는 정말 싫었는데.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싶은 때 읽는 자율성이 한 몫한 듯하다.
나는 상황에 따라 책을 고른다. 컨디션이 좋을 때는 집중력이 필요한 소설을, 쉼이 필요할 때는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를 주로 읽는다. 개인적으로 자기계발서는 마치 삶에 정답이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선호하지 않고, 지식서적은 필요한 정보가 인터넷 검색으로 부족할 때 공부용으로 읽는다.
고로 나는 소설 혹은 에세이를 좋아한다. 타인의 삶과 정의를 들여다보고, 관련하여 내 견해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브런치 작가에 도전하게 된 계기는, 내가 가진 뒤죽박죽 생각들을 사람들과 공유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초고를 잘 썼는지 운 좋게도 나는 바로 작가로 승인될 수 있었다.
아직 끄적끄적 글을 썼다 지웠다 반복하는 신입 작가이지만, 글을 쓰는(write) 취미는 독서보다도 더 “생각을 쓰는(use) 취미”에 적합하다고 느껴진다. 독서는 타인의 것을 엿보는 것이고, 작문은 나의 것에 집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문은 내가 가진 무수한 생각들을, 단발성이 아닌 반복적으로 돌아보고 정리하게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나는 성장한다. 이것이 내가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이자, 작가라는 목표를 갖게 된 이유이다.
아무것도 쓰지 않는 취미라고 하면 흔히들 “누워있기”를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누워있으면 내 신체는 부동(不動)이다. 그리고 몸을 쓰지 않는 것은 내 의지로 손쉽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머리를 쓰지 않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나같이 잡생각이 불쑥불쑥 찾아오는 사람에게 “생각 멈추기”란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 그래서 아무것도 쓰지 않는 취미 찾기가 가장 어려웠다.
“드라이브 갈래?“, 우울한 사람에게 많이들 하는 말이다. 나도 드라이브를 하면 기분이 한결 좋아진다. 왜 그런지에 대한 원인을 굳이 찾지도 않았고, 찾더라도 그냥 ‘기분 전환’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러다 취미에 대해 살펴보면서, 드라이브가 기분 전환이 되는 이유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물론 운전자의 경우 내비게이션을 보고 운전하는 정도의 에너지는 써야 한다.) 나 같은 경우 부끄럽지만 아직 운전면허가 없다. 그래서 조수석 혹은 뒷좌석에 앉아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차 안에서 시도 때도 없이 바뀌는 창밖 풍경에 집중하고 적응하느라, 다른 생각을 할 겨를조차 없다. 그래서 드라이브를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전시회를 정말 좋아한다. 그림을 보는 것 자체로도 너무 좋지만, 조용한 전시관에 있으면 세상과 단절된 듯한 기분이 든다. 그림에만 집중하는 관객들 속에서, 나 또한 오롯이 그림만을 보게 된다.
하지만 작품 감상을 아무것도 쓰지 않는 취미라고 하기에는, 작품의 의도를 파악하다 생각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하나 최근 운 좋게도 정말 아무것도 쓰지 않는 문화생활을 새롭게 발견했다.
오케스트라를 계속 가보고 싶었지만, 기회가 닿지 않아 미루고 미루다 최근에서야 다녀왔다.
사실 나는 그저 음악을 즐겨 듣는 사람일 뿐이다. 가사가 귀에 쏙쏙 박히는 국내 가요보다는, 어느 정도 흘려들을 수 있는 외국 팝송을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오로지 음악만 존재하는 오케스트라가 너무 좋았다.
가장 최근에 다녀온 콘서트는 할리우드 영화의 주제곡들을 연주해 주는 공연이었는데. 멍 때리며 즐기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특히 아는 곡들이 연주될 때에는 더욱 집중이 잘되곤 했다.
앞서 드라이브가 눈을 사로잡았다면, 오케스트라는 귀를 사로잡는다. 다른 생각이 떠오르다가도, 귓속에 때려 박히는 악기 소리들에 집중력이 분산된다.
나 또한 과거에는 그저 몸과 마음이 이끄는 대로 취미를 즐기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딱 맞는 취미를 찾고, 내 취미는 무엇이다라고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나니. 취미뿐만 아니라, 회사 생활과 같은 일상에서도 편안함을 느끼고 있다.
계획적으로 취미를 가짐으로써 “워라밸”이 맞춰지는 기분이 든다.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모두 “워크”에 대해 계속적으로 점검하지만, 각자의 “라이프”에 대해서는 헤아려보지 않는다. 라이프는 워크보다 개개인의 선택권이 훨씬 자유로운데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워라밸의 붕괴는, 어쩌면 라이프를 채우는 취미에 대한 고민이 부족해서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나는 계속적으로 고민한다. 나에게 딱 맞는 취미를 찾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