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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마 May 24. 2024

퇴사하기 전에는 몰랐던 것들

자유, 불안과 책임

퇴사하기 전에는 몰랐다.

 

아침이면 정신없이 뛰쳐나오듯 출근해서 일하고

저녁이면 영혼이 탈탈 털려 퇴근하고 겨우 저녁을 차려먹는다.

내일 출근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으니 눈뜨면 또 아침이 될까 봐 자고 싶지 않다.

늦게 자니 배가 고프다. 배민을 뒤적인다. 야식을 시킨다.

 그 새벽 내 주문을 마지막으로 하루 장사를 마감한 닭꼬치는 질기고 속도 아프게 했다.

‘내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스스로 부여한 사명감으로 피로를 무릅쓰고 늦게까지 견디던 시간들.


모두 이런 줄 알았다.




무한한 자유의 시간


퇴사 후 알게 된 점은 세상에는 시간을 자유롭게 쓰는 사람이 매우 많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출퇴근을 할 때는 모두가 그런 정해진 시간대로 사는 줄 알았다. 차가 밀려도 ‘다 출근하느라 바쁘네.’ , ‘퇴근길이라 그런가’ 생각했다.

나와서 보니 그 시간에 놀러 가는 사람도 많았다. 평일 오전에 카페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많았다. 디지털노마드로 원하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도 많았다.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내가 아는 대로 보는 대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퇴사 이후 주어진 놀라운 자유의 시간이 즐거웠다. 마음껏 시간을 썼다.

출근해서 일하고 있었을 시간, 나는 소파와 한 몸이 되었다.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아이가 유치원 공부를 마칠 시간이 되면 ‘언제 시간이 이렇게 갔지’하는 나날들이 지속되었다.  딱히 뭘 하지도 않았는데 넷플릭스와 휴대폰은 내 시간을 순. 삭. 시켰다.

직장을 다닐 때는 40분씩 10분씩 쪼개어 쓰던 시간 단위들이 뭉텅이로 순간 삭제 되었다.

‘아니… 내가 뭘 했더라?’

기억이 나지 않았다.

수많은 인터넷 세상을 떠돌아다녔는데 남는 것은 없었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변화가 필요했다.

퇴사 전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로 하나씩 루틴을 만들었다.  

동네 뒷산에 1시간 코스로 산책도 다니고,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조금씩 하고 싶었던 것들을 나만의 시간표에 넣고 있었다.


그리고 불안  


하지만 요 며칠은 계속 잠자리가 뒤숭숭했다.

-내가 어떤 낡은 건물의 지하에 있었다. 어디서부턴가 물이 새어 나오고 건물에 금이 가고 있다.

-어딘지 모르겠다. 그런데 문득 옆을 보니 손가락만 한 지네 같은 벌레들이 슥슥슥 지나간다.   

뭐 이런 비슷비슷한 느낌의 꿈들을 자꾸 꾼다. 뭔가 파괴되는 꿈, 벌레가 나오는 꿈.


그래서 평소에는 잘 궁금해하지도 않는 꿈해몽을 검색해 본다.

사람들도 다들 비슷한 꿈을 꾸고 찾아보는지 꿈에 대한 내용과 해석도 참 비슷하다.

내가 꾼 꿈들은 ‘현실에서의 불안한 심리’라고 했다.


그렇다. 요즘 나는 무의식적으로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모양이다.

무한한 자유의 시간이 주는 즐거움 이면에는 무수입의 내 처지가 뭔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슬그머니 나를 잡아끈다.

퇴사하기 전 내가 꿈꾸던 일, 경제적 자유, 내 사업, 아티스트로서의 삶에 대한 희망이 ‘너 지금 잘하고 있냐?’라는 자기 검열을 하고 질책을 한다.

외벌이 중인 남편에게, 퇴사 이후의 삶을 궁금해하는 친구들, 동료들에게 뭔가를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이 나를 짓누른다.


겉으로는

‘아~ 이 자유 너무 좋아.‘라며 여유를 부리지만

수면 아래로는 수없이 발버둥을 치고 있는 오리 같달까.


내가 선택한 자유인만큼 퇴사를 하기 전 내뱉었던 말들을 책임질 때가 다가온다.

지금부터 보내는 시간은 그저 즐거운 시간이 아니고 뭔가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을 쌓아야 할 시간이다. 그림을 한 장이라도 더 그리고 글을 한 개라도 더 쓰는 치열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래야 자유도 누릴 수 있다.  


‘열심히 일한 자 자유를 누리라.’ 라며 퇴사했지만

‘자유를 누린 자 열심히 일하라.‘라는 압박감에 잠 못 드는 요즘이다.


모든 주어진 자유에는 그것을 누리기 위해 책임져야 할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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