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헌 단편소설집_2
타투를 지우는 것은, 매번 누군가의 기억을 지우는 행위이다. 이를 위해서는 준비된 순서라는 것이 있다. 우선 타인의 피부에 깊숙하게 박혀있는 환부를 본다. 예전에는 남녀노소 옷을 벗어야 보이는 곳에 각인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손,발, 얼굴까지 타투가 그려진 환자가 찾아오곤 한다. 얇은 바늘로 수만 번 잉크를 박았을 살결에 손을 가져다 댄다. 환부를 손바닥으로 쓸어내리고 타투의 크기, 색깔, 울룩불룩한 비후성 흉터를 보며 레이저 파장의 세기와 지워야 하는 횟수를 정량적으로 예측한다. 환자는 예상 시술 횟수와 가격에 대하여 놀랄 수밖에 없다. 타투에 비해 적게는 10배, 많게는 50배 이상까지도 지출이 생기고 시간도 곱절로 들기 때문이다.
나는 곧 하얀색 마취 크림을 환자의 살결에 바르고 얇은 비닐을 씌어 외부의 공기와 차단시킨다. 이후 오래된 타투가 감각이 무뎌지기를 기다린다. 타투는 안락사를 기다리는 유기견처럼 숨죽여 마취를 받아들인다. 그동안 나는 시술실 안쪽에서 타투 색깔에 맞춰 레이저 기기 파장수를 맞춘다. 예전에는 대부분 검은색 타투에 맞춘 파장 레이저만 준비하면 됐지만, 요새는 빨간색부터 초록색, 가장 강한 주황색까지 잉크 색깔이 매우 다양해졌다. 각자의 색에는 각자의 맞는 파장이 있다. 나는 마치 각기 다른 심리적 트라우마에 맞게 상담을 준비하는 심리치료사처럼 환자의 타투에 맞춰 그에 맞는 파장의 레이저를 준비한다.
그리고 곧 나의 신호에 맞춰 간호사가 환자를 시술실로 부른다. 그리고 나는 강력한 레이저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해 우스꽝스러운 보호 안경을 낀 채 환자에게 다가간다. 환부의 위치에 따라 환자의 자세는 매번 다르다. 넓은 등판-가슴-팔 부위는 정 자세로 누워서, 허벅지-종아리-발목은 환부 다리를 구부리고 앉아 시술받곤 한다. 가끔씩은 기괴한 곳에 타투가 있어 역동적인 자세로 시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들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아슬하게 선을 타는 곡예사가 된듯한 느낌을 받는다.
나는 건조해진 입을 떼며 말한다.
“시술 시작하겠습니다”
수천만 원이 넘는, 의료 렌트를 통해 시술실에 구비된 레이저 기기를 킨다. 3초간의 큰 우우웅 소리 이후, 미세하게 리듬감을 가지고 있는 진동소리가 방 안을 채운다. 보조 간호사는 타들어가는 살 가루를 담기 위해 의료 청소 흡입기를 키며 내 옆에 다가온다. 그리고 곧 레이저가 잠깐 방안을 번쩍이며 밝히고, 투투둑 소리와 함께 환자의 살결에 박힌다. 환부에 마취크림을 발랐다고 하더라도 아프지 않을 리 없다. 환자는 마치 자신의 과오로 인한 벌을 받듯이, 받아야 할 마땅한 고통을 받는다는 듯이 견디고 또 견딘다. 환자의 필사적인 움찔거림, 레이저의 순간 반짝임, 일정한 삐빅대는 소리들이 불균형한 조화를 이룬다. 그리고 곧 얇은 오징어가 새까맣게 타 오그라드는 냄새가 방안을 가득 채운다. 이 행위들을 인식하고, 긴장하는것도 1분~3분 사이이다. 곧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일정한 투투둑 소리가 무엇인가를 재단하는 재봉틀 소리같이 지겹게 귀에 반복될 뿐이다.
사실 이레즈미, 블랙암 타투처럼 피부 전체를 덮어버리는 타투가 아니라면 타투를 지우는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는다. 짧게는 15초, 길게는 3분을 넘기는 것이 많지 않다. 다만 반복되는 일정 파장의 레이저 소리와 환자의 고통을 참는 신음소리가 공기를 어색하고 답답하게 만든다. 넓다면 넓은 시술실이 무엇인가 절단되는 도축장처럼 비린내 나게 뜨겁지만, 때로는 냉동창고처럼 날카롭고 차갑게 느껴진다. 환자에게는 아마 이 시간이 곱절의 시간으로 느껴졌으리라.
“시술 끝났습니다”
레이저 보호 안경을 벗으며 환자에게 말한다. 나의 입안은 시술 들어가기 이전보다 더 말라있다. 환자의 고통은 분명히 어떤 알 수 없는 매개체를 통해 타인에게 공유된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시술실에서는 딱딱하고, 무표정하게 - 때로는 불친절하게 - 느껴지는 이유가 이것에 있다. 시술 직후 바라본 타투는 하얀색 각인이 남으며 시술 이전보다 훨씬 연해져 보인다. “곧바로 레이저가 효과를 보이는구나”라고 환자는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일시적인 팝콘(기포) 현상일 뿐이다. 하얗게 타들어간 피부로 인해 타투가 곧 없어질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 피부가 아물면, 곧 언제 그랬냐는 듯 검은색, 파란색, 주황색 잉크들이 다시 고개를 들어 모습을 보일 것이다. 타투는 그런 존재이다. 한 번의 충동적인 각인으로 10번 이상의 치아가 으스러질 정도의 고통을 견뎌야 하는 것. 또 후회하고 계속 후회해야 하는 것. 그것이 곧 “타투”의 존재이다.
시술이 끝나면 환자의 찡그린 표정이 서서히 풀린다. 안도의 한숨을 자신도 모르게 쉬고 있지만, 사실 진짜 고통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제 레이저를 맞은 부위에는 마치 서로가 서로의 침입을 막기 위한 방공호처럼 크고 작은 물집들이 올라올 것이다. 곧 이 환자는 드레싱 작업을 위해 잠깐동안 대기실에 앉아 있어야 할 때도, 집에 도착해 눈을 감으며 침대에 누울 때도, 크고 작은 물집들이 그를 짓누를 것이다. 시술이 끝나더라도 자신의 과오에 대하여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참회해야 하는 것이 타투이다.
나는 시술이 끝나면 간호사에게 환자의 드레싱을 맡긴 뒤, 곧바로 진료실로 돌아가 구석 작은 세면대에서 세수를 한다. 마치 무엇인가 용접하듯 레이저를 박다보면, 내 얼굴에도 피부가루가 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환자의 후회와 고통이 온 얼굴에 달라붙어 내 피부로 흡수되기 전에, 나는 강박적으로 곧바로 얼굴을 씻는다. 냉수로 세수를 하고, 그리고 곧 긴장으로 경직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스트레칭한다. 강한 레이저로 인해 뜨거워진 얼굴에 비해 손과 발은 긴장으로 인해 차가워져 있다. 시술 이후에는 항상 몸의 밸런스가 어딘가 뒤틀려 있다고 느낀다. 나는 그것을 다시 제 자리로 맞추기 위해 몸을 이리저리 흔든다. 마치 술에 취한 댄서처럼.
방금 환자는 오늘의 마지막 환자였다. 어느새 드레싱을 마친 환자는 수납을 한채 사라졌다. 그 환자는 아마도 이 짓을 열 번 넘게 반복해야 할 것이다.
나는 곧 대기실에 간호사들에 말한다.
“오늘 정리합시다”
이렇게 나의 하루는 저문다. 누군가의 오래된 추억, 과거의 뜨거웠던 열정, 평생을 약속했던 애인을 레이저로 태우며 하루를 보낸다. 가끔씩은 내가 “주술사”같다고 생각하곤 한다. 처음보는 타인에게 서슴없이 깊은 상처를 내어 끔직한 기억을 없애는, 속으로 “괜찮아 곧 끝날 거야”라고 말하며 잔인하게 환자의 흉터에 상처와 피를 내어 주술을 거는, 그런 사람 말이다.
그날은 약속이 잡혀있기에 일을 빨리 끝낼 셈이었다. 그녀와의 약속은 몇 달 만이었고, 나는 그날 오전부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당시는 나의 이름을 건 ”병원”을 차린 지 얼마 안 되었을 시기였다. 피부과는 성형외과 못지않게 돈을 모을 수 있는 “가게”에 속했지만 나는 그중 특수한 고객만을 대상으로 하는 “타투 제거”에 힘을 쏟고 있었다. 주변 동기들은 보톡스, 필러, 인모드 등 다양한 돈이 되는 시술을 병행하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타투를 지우는 일이 나의 천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는 돈을 쓸어 담을 기회를 버리는 나를 바보 취급했지만, 정작 나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타인에 몸에 새겨진 타투의 후회를 가늠하고, 상처를 내어 없애는 일을 하며 하루를 보내는 것에 만족했다. 그렇게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어느새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빠지고, 배가 튀어나온 아저씨가 되어 있었으며 바쁘다는 핑계로 이성 한 명 제대로 만나지 못한 삶을 살고 있었다. 물론 ”의사”라는 타이틀로 여럿 여자들이 나를 스쳐 지나갔지만 결국 좋게 마무리된 적은 없었다. 내가 큰 돈벌이를 내버려 두고 오직 타투만을 지우고 있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가슴의 정중앙에 칼이 달린 타투를 지우러 온 여자. 그 칼은 그녀의 가슴 중앙을 뚫고 내려가 배꼽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선생님”
그녀가 나를 부른다. 의사라는 직업의 가장 큰 특권은 “선생님”이라는 극 존칭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는 그 누구도 쉽게 누릴 수 없는 큰 특권이다. 그 누구라도 나를 대우하며 높인다. 티 나게 신나 하면 낯 부끄럽지만, 그렇다고 나쁠 것도 없는 기분이다.
“선생님은 낯선 이의 가장 마지막 타투를 보는 타인이겠군요.”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레이저가 몸에 박힐 때마다 그녀의 온몸은 비틀렸다. 레이저의 반복되는 소음과 피부 분진가루를 담는 청소기 소리에 그녀의 목소리는 묻혔지만, 그녀는 상관없다는 듯 계속 말했다.
“마치 '신' 다고 생각해요. 과오로 인해 더러워진 곳을 청소하고,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 입을 닫고 침묵하시는 모습이.”
여전히 그녀는 레이저가 박힐 때마다 미간을 힘껏 찌푸렸지만 어딘가 웃고 있는 듯 보였다. 타투를 제거하다 보면 10분 전까지 생판 모르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로 환자에게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나는 항상 환자의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환부를 살펴야 했고, 그들의 체취를 맡아왔다. 대다수는 긴장감에 발현된 습한 땀냄새가 나거나, 차가운 -창백한- 살 냄새가 났다. 그런데 그녀에게서는 강한 “풀” 냄새가 났다. 그녀의 몸에 가까이 다가가면, 그녀와 나의 공간 사이 어딘가에서 풀 비린내가 느껴졌다. 그 공간은 명백히 형용할 수 없는 제3의 공간이다. 그 허공에는 마치 선명한 초록색 풀이 뜨거운 증기에 쪄지는 냄새가 났다. 나는 그녀의 타투를 지울 때면, 뜨거운 습기가 가득한 우거진 풀숲에 홀로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곧 그것이 “떨”냄새라고 생각했다.
나는 시술이 끝나고 그녀에게 물었다.
“다음 시술은 두 달 뒤에 오시겠네요.” 그리고 나는 숨을 고르고 한번 더 말한다.
“그때 끝나고 뭐하세요?”
나는 두 달 뒤까지 약속이 가득 찬 사람에게 만남을 구걸하듯이 말했다. 의사로서 환자에게 사심을 가져본 적은 없었다. 지금껏 TV에 나오는 한류 연예인, 교육계의 1타 강사, 강남의 SNS 미인들 모두 시술해 봤지만 그들에게서는 감정을 느낀 적은 없었다. 그들이 온몸으로 내는 고통의 신음소리를 보며 동정한 적은 있어도…다만 그녀는 달랐다. 그녀의 풀냄새가 내 안의 두터운 공백에 미세한 진동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곧 그녀를 “궁금해”하고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계속해서 일정한 신호를 보내왔다. 그녀의 가슴 정중앙에 박힌 타투를 봐야 한다는 것도 있지만, 시술을 받을 때 그녀의 일정한 손길과 지속적으로 속삭이는 말들은 내 몸 안에 있는 아주 얇은 심지에 불을 붙였다. 나는 그 심지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만, 그녀 덕분에 심지에 불이 붙여 내 몸안을 밝히고 내부를 조심히 녹아내리게 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녀가 한 번은 병원이 끝날 때까지 대기실에 나를 기다린 적도 있었다. 단순히 다른 환자의 시술이 끝난 이후 내 얼굴 표정을 보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다른 환자의 후회의 가루가 가득 묻은 내 얼굴을 보고 난 이후, 그녀는 아무 말도 없이 그냥 떠나곤 했다.
“네 그때뵈요”
나의 데이트 요청에 그녀는 긍정만을 남긴 채 떠났다. 정확한 날짜와 시간은 구체화되지 않았지만 아마 그녀가 정하는 듯했다. 그녀는 나에게 있어 선택권이 아니었다. 나는 그 이후로 그녀가 떨을 피우는 꿈을 꿨다. 남들의 눈이 닿지 않는 어떠한 창백한 공간에서.(그 공간이 정확히 어떤 공간인지 여전히 설명할 수 없다) 언제나 그 꿈에는 그녀와 물기 가득한 풀냄새만이 존재했다. 나는 그녀의 작은 머리와 넓은 어깨, 긴 다리와 얇은 발을 생각한다.
그 이후로, 나는 그녀와 주기적으로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그녀는 분명 신비로웠다. 가벼웠지만 천박하지 않았고 순수했지만 나약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는 항상 나에게 말하곤 했다.
“주변에서 제 타투를 보면, 눈빛이 바뀌어요. 저를 좋아하던 사람들이 혐오의 눈빛으로, 저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욕망의 눈빛으로 바뀌곤 한답니다. 선생님이 타투를 지울수록, 잉크가 더욱 깊게 박히는 기분이 들어요. 그 잉크가 더 깊게 박혀서, 제 몸 깊숙이 들어가서 안 보이게 되는 거죠. 그리고 긴 핏줄을 돌다, 제 몸속 어딘가 뻥 뚫린 곳에 쌓이는 거죠. 그곳에서는 타투 가루들이 정어리떼처럼 우루루 몰려다녀요. 곡선을 그리기도 하고, 큰 원형을 그리기도 하고. 그러다가 누군가 딱 쳐다보면 없어져요. 마치 담배연기처럼 공중에서 사르르 없어지는 거예요. 그래도 어딘가에서는 존재하는 게 느껴져요. 분명히.”
그런 그녀의 타투를 처음 보는 내 눈빛은 어땠을까. 내심 궁금했지만 그녀에게 따로 물어보지는 않았다. 나는 단순히 타투를 지우는 사람일 뿐이었다. 단순히 몸에 박힌 잉크를 지운다고 해서 내가 그녀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언제나 그녀의 말을 완전히 알아듣지 못했지만 다시 되묻거나 설득을 강요하지 않았다. 나는 단순히 그녀와 같이 있는 것이 좋았다. 그녀는 엉뚱하고 기괴한 언어조차도 수긍하게 되는 묘한 매력을 가진 여자다. 고급 레스토랑을 가면서도 그녀는 목이 늘어난 얇은 흰색 반팔티와 주름이 진 검은 반바지를 입고 오곤 했다. 고급 레스토랑 의자에 대충 기대어 앉아 나에게 말을 하는 그녀는, 무례했지만 순수했고 경박하지만 쾌감이 있었다.
나는 그녀와 문을 닫은 병원에서 만남을 가지는 것이 잦아졌다. 우리는 타인의 피부가루가 묻었을 시술실 침대에 누워 프로포폴을 맞았다. 나는 그녀의 소중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내 “의사”타이틀을 활용했다. 나는 레이저의 고통을 견디지 못해 수면마취를 필요로 하는 환자들을 위한 프로포폴을 다룰 수 있는 “의사”이자 주입량의 일부를 빼내어 따로 보관할 정도의 위험은 감수할 수 있는, 그녀를 사랑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시술대에 누워 하얀 액체를 팔에 꽂고 곤히 잠을 잤다. 나는 그 모습을 어두운 병원의자에 앉아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그럴 때면 아무런 뒤척임 없이 잠든 그녀의 헐렁한 옷 사이로 보이는 가슴에는, 내가 지워야 하는 칼자국 타투가 보였다.
그녀는 잠에서 일어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를 떠나갔다. 약에 취해 반쯤 풀린 눈이 천박하거나 경박해 보이기보다는, 편안하고 너그러워 보였다. 그러고는 그녀는 곧 몇 주, 몇 달 동안 연락이 끊어졌다. 그녀의 번호도, 이메일도, 심지어는 정확한 이름도 알 수 없다.(차트의 이름은 가명일것이다) 하지만 나는 하염없이 그녀를 기다린다. 그리고 그녀는 내가 필요한 순간이 오면 나를 찾을 것이다. 나는 매번 그것을 알고도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또다시 나에게서 떠나간 상태이다. 그리고 내 앞에 나타났을 때, 실핏줄이 다 보일 정도로 하얗던 피부가 거멓게 타서 온다거나, 햇빛을 머금은 듯 깨끗한 기름으로 뒤덮여 있던 머리를 갑자기 짧은 단발로 잘라 내 앞에 나타날 수도 있다. 그녀는 그렇게 항상 갑작스럽고 당황스럽게 나에게 다가온다. 나는 그렇게 그 시간만을 기다리며 환자를 받았다. 현재도 그녀에게 연락이 오지 않은지 몇 주가 지났다. 그럼에도 그녀는 곧 얼굴을 비출 것이다. 나는 그것만을 기다리며 오늘도 환자를 맞이했고 수많은 후회들이 태워냈다.
그 남자는 내 병원에 처음 온 환자였다. 그는 병원에 노란색 하와이안 셔츠에 짧은 반바지, 주황색 쪼리를 신고 왔다. 마치 여름인 것을 자신의 몸으로 티 내고자 하는 옷과 몸짓이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얇은 옷이 들려 어두운 안쪽 피부색이 바깥으로 자주 드러났다. 그의 온몸에는 타투가 가득했다.
“타투를 지우려고 합니다 선생님. “
그 남자는 생긴 모습과는 다르게 매우 얇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짧게 친 옆머리와 길게 뻗은 윗머리를 왁스로 전부 넘긴 시원한 머리였다. 크고 넓게 찢어진 눈망울과 높게 솟은 콧대의 밸런스가 얼굴 전체를 감싸고 있는 매력적인 페이스였다.
“어느 쪽 타투를 지울생각이신가요?”
그는 하와이안 셔츠 팔 쪽을 어깨까지 걷어올려 이두 쪽의 타투를 보여준다. 나는 바퀴가 달린 의자를 끌며 그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그의 타투가 내 눈 바로 앞에 왔을 때, 그에게서는 강하고 시원한 향수 냄새가 났다. 그리고 그 향수의 끝내음에는 강하다 못해 코를 찌르는 알콜 냄새가 풍겼다.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알콜 냄새였다. 무엇인가 제조하고 제거하기 위해 사용하는, 불쾌한 미식거림이 느껴지는 공업용 알콜 냄새. 나는 내 자신이 어떻게 알콜의 종류를 구분할 수 있는지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다. 내가 왜 이 냄새를 알고 있지?
그가 지우고자 하는 타투는 높고 기다란 산맥들 사이에 물이 뿜어져 나오는 타투였다. 마치 예전 일본 편의점 생수 플라스틱병에 그려졌을 만한 타투였다. 색깔은 검은색 단색으로 주변의 잉크 테두리가 매우 삐뚤삐뚤하게 이어져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초짜 아티스트의 조잡한 타투였다.
나는 그 타투가 문득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 타투에는 특유의 하얀색 반점이 가득했다. 그것은 분명 타투를 레이저로 태웠을 때 나오는 하얀 반점이었다. 마치 타투를 레이저로 지우고, 또 그 위에 타투를 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은 굉장히 괴상하고 꺼림칙했다. 이상하지 않을 리 없었다. 남들은 한 번만으로 충분한 과오를, 두 번이나 연속하는 사람은 없다.
“타투를 한번 지운곳에, 다시 타투를 하셨나 보네요?”
나는 최대한 정중히 물어보았다. 내가 왜 정중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입이 살짝 벌어지며 피식 웃었다. 마치 물어볼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되었네요. 이 정도 크기면 이렇게 가능할까요?”
그는 손가락 5개를 들어 올리며 나를 보고 말한다. 그의 대화 태도에서 약간의 신난듯한 아이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무엇인가 칭찬을 들은 해맑은 아이.
“500만 원까지 나올 정도의 타투는 아니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나는 방금 그에게 반말을 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세한 건 바깥 실장님과 이야기하면 됩니다.”
그는 내 말을 듣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들어올 때는 몰랐는데, 일어난 키가 제법 컸다. 적어도 185 이상은 되어 보였다. 아니요, 500에 하시죠. 제가 사정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 라고 말하며 그는 나의 말을 무시하고 진료실을 나가버렸다. 그의 근육이 가득한 육중한 다리가 움직일 때마다 바닥에 쪼리가 붙었다 띠는 끈적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어떤 남자의 차를 타고 도착했다. 나는 그 장면을 2층 레스토랑 창가에 홀로 앉아 지켜보았다. 초록색 스포츠카는 곧 그녀를 내려주고 찢어지는 굉음을 내며 길가를 떠나갔다. 청담동의 좁고 높은 경사를 오르기에는 차가 턱없이 낮고 빨라 보였다. 그 차는 쓸모없고 불편해서 더욱 빛나는 존재였다. 그녀는 “이쁘다”라고 불릴만한 - 이성과 동성을 모두 포함한 - 친구가 많은 듯했다. 그녀는 매번 다른 남자의 차를 타고 나에게 왔다. 어떤 날은 키가 작고 명품으로 도배된 남자가, 어떤 날은 위아래 회색츄리닝을 입고 로렉스 시계를 찬 남자의 차를 타고 왔다. 나는 그들의 몸에도 타투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예상했던 것보다 평범하게 나에게 다가왔다. 갑자기 못 알아볼 정도로 피부가 타서 온다거나, 머리를 짧게 치고 오지는 않았다. 다만, 살이 빠졌는지 얼굴 볼살이 전보다 더 깊게 패여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녀를 보며 약간의 흐린 필름 사진을 보는 듯했다. 오래되어 노이즈가 잔뜩 낀, 빛이 선명하지 않은 옛날 사진. 그녀는 나에게 약간 흐리기에, 아련하고 더욱 간직하고 싶은 존재였다.
나는 그녀를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도 잠시, 곧 그녀가 말이 없으면 우리가 대화가 잘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화의 대부분이 그녀가 말을 하고 내가 들어주는 수순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대화 주제는 주로 괴변에 대한 것이었다. 겨울에는 여름의 뜨겁고 습했던 공기들이, 여름에는 겨울의 차갑고 건조했던 공기들이 너무나 아깝다고 말하는 식이다. 그녀는 항상 필요할 때 없는 존재들을 탓하고 위로하는 것 같았다. 각자가 필요한 순간에 없어져 무엇인가 낭비된다고 말하는 그녀의 말에는 항상 괴변이 섞여있었고, 나는 그 미묘한 분위기를 즐겼다.하지만 오늘 만남은, 그녀가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녀는 무척이나 피곤해 보였다. 그런 그녀를 위해 빠르게 병원에 데려가 재우고 싶었다. 어떤 행위라도, 그녀를 위해서는 할 수 있었다. 그런 기이한 생각을 하다, 나는 레스토랑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한 남자를 본다. 얼마 전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채 타투를 지우러 온 남자. 짧게 친 옆머리에 올백을 한 남자는 멀리서 봐도 존재감이 느껴질 정도로 여전히 키가 컸다. 그는 레스토랑에서 자리를 찾는 듯 두리번거리다 나와 눈이 마주친다. 그리고 그는 웃음을 보이며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다리가 긴 탓인지 몇 걸음 안 되어서 나에게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늘은 하와이안 셔츠가 아닌, 파란색 체크무니 셔츠에 검은색 바지와 정장을 입은 상태였다. 지극히 평범한 조합이었지만 그의 큰 키와 다부진 몸 탓인지 그에게서 말 못 할 아우라가 느껴졌다. 그는 나에게 인사를 하고 난 뒤, 그녀 쪽을 바라본다. 그녀 또한 그를 한번 바라본다. 둘은 눈이 마주쳤고 그녀는 웃으며 그에게 첫 인사를 한다. 나는 순간, 잠깐동안이지만 둘에게서 비언어적인 교류가 있었다고 느낀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공백의 소통. 그것들은 대부분 사랑에 빠지기 이전에, 권태와 절망을 느끼기 이전의 새로운 시작에 관한 설렘이나 흥분 같은 것들이었다. 그녀의 얼굴에 곧 생기가 돌았고 창백했던 얼굴이 빨간색 홍조가 돌아 한층 더 건강해 보였다. 나는 그 사실이 기쁘면서도 슬프다고 느꼈다. 그는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합석 요구를 했다. 그는 일행이 없어 보였다. 마치 나와 그녀를 만나기 위해 레스토랑에 온 사람 같았다. 그의 합석이 당연한 수순이었던 것처럼 말하는 그를 보며, 나는 말했다.
“그러시죠 그럼”
그때 나는 사실, 그녀를 잃을까 봐 걱정이 되었지만 유치한 질투를 꺼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녀와 어떤 관계도 아니었으니까. 단순히 그녀의 타투를 지우는 사람일 뿐이니까. 나는 타투를 지운곳에 또 다시 타투를 하는 남자와 나에게 타투를 제거받고 프로포폴을 투약받는 여성과 함께 합석을 하게 되었다. 나는 이 순간이, 우연을 핑계삼은 이 만남이 앞으로 나에게 큰 영향을 줄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와인 2병을 마셨다. 스페인 고급 레드와인 1병과, 적절한 분위기를 만들어 줄 이태리 화이트 와인 1병을 마셨다. 우리는 기약 없이 만났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셨다. 갑자기 활기가 생겨 신나게 떠들어대는 그녀와, 그 모습을 행복한 듯 웃으며 듣고 있는 나, 그런 그녀가 흥미로운 듯 뚫어져라 쳐다보는 남성의 조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마 우리가 너무 시끄러웠는지 웨이터가 격식을 차리고 우리 테이블에 찾아와 “무엇인가 필요하실까요?”라고 2번 정도 되물었다. 레스토랑의 분위기가 우리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우리가 떠들 때면 다른 레스토랑이 시끌벅적해졌고, 우리가 조용해질 때면 레스토랑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분위기에 멋 모르고 들이킨 와인의 취기가 올라올 때쯤, 그녀는 어느새 눈이 반쯤 감겨 있었다. 레스토랑 의자가 침대인 마냥 등을 기대고 잠들어 버린 그녀는 마치 어미의 젖을 먹다 자신도 모르게 스르륵 잠들어버린 새끼 고양이 같았다. 잠든 그녀를 보며 나 또한 모든 걸 내팽개치고 자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 남자는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올곧은 자세로 앉아 있다. 뻣뻣한 목각 인형처럼,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딱딱하게 앉아있다. 그 남자는 지금까지 마셔버린 비싼 와인값이나 내일 출근을 위한 귀가 시간 같은 자잘한 고민과 걱정은 추호도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왜 제가 문신을 지우는지 궁금하시죠”
남자는 나에게 말했다. 그의 얇은 목소리가 말랑해진 내 뇌를 번쩍 깨우는 것을 느낀다. 그 질문이 내가 가장 궁금했던 질문이었고 묻고 싶은 무례한 호기심이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려 머리를 뒤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항상 궁금합니다. 환자들이 왜 타투를 지우는지. 의사는 단순히 지우기만 할 뿐, 호기심을 가지는 순간 환자는 도망가버리거든요”
그는 무엇인가 고민하는 눈빛으로 레스토랑 테이블을 쳐다보고 있다. 테이블은 찌꺼기만 남은 파스타, 양념 얼룩으로 가득한 스테이크 그릇, 비어져 있는 와인잔이 너저분하게 흐트러져 있다. 질서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나와 그녀, 그의 관계처럼. 곧 그의 손이 두툼한 턱을 어루만지고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는 무엇인가 고민하고 있다.
“모든 타투들은 각자의 사연이 있습니다. 각자가 소중히 하고 싶은 것을 타투에 녹이고자 하죠. 과거의 잊으면 안 되는 기억, 감정, 추억 같은 것들이요. 하지만 그 소중한 것 역시 시간이 지나면 질리고 후회하고, 증오합니다. 마치 그것을 사랑했던 과거는 없었던 마냥."
그는 목이 약간 타는지 보틀에 담긴 물을 따르고 마시며 말을 이어갔다.
“참 웃기지 않나요 선생님, 그렇게 애지중지 몸에 수천번 얇은 바늘에 박혀 고통으로 각인된 타투를, 이제는 혐오하며 지운다는 게”
그는 마치 나의 답변을 기다리는다는듯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나는 내 앞에 있던 밑잔으로 남은 와인을 한모금 마신 뒤 말한다.
"의미 없는 타투도 있지 않을까? 나는 타투를 지우는 사람이지만 정말 후회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어. 병원안에서 상담을 받다가 울기도 하는 정도니까"
나는 어느새 그에게 반말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별로 신경쓰지 않을것이다.
“타투를 단어로 표현하자면, 아마도 그것은 '아쉬움' 일 것입니다. 어느 순간 타투를 새기기 이전의 감정들을 사람들은 잊어버립니다. 간직하고자 했던 사랑이나 잊기 싫었던 의미들이 모두 사라져 버리는 거죠. 그것들이 사라진 타투는 마땅히 지워야 하는 쓰레기가 됩니다. 선생님이 말한 '의미 없는 타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의미가 없는 타투는 사실 없습니다.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찾지를 못한 거죠."
그의 모습은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었지만, 어딘가 화나보이는 말투였다. 그 또한 약간 흥분한 자신의 상태를 인지하였는지 자세를 다시 한번 고쳐 앉아 목소리를 낮춰 차분하게 말했다.
"하지만 저는 시간이 지나 그것을 혐오하기 이전에, 그러니까 의미가 사라져버리기 전에 그것을 지워 아름다움을 간직하는 겁니다. 저는 그렇게 버려지는 기억들을 제 나름대로 지키고자 하는 겁니다. 이것이 제가 지운 타투 위에 또 타투를 하는 이유입니다. 타투는 저에게 어떠한 아쉬움도 줄 수 없어요.”
나는 그가 괴변을 쏟아낸다고 생각했다. 나의 취기 때문인지, 아니면 말이 논리가 어려워서 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의 말을 한 번에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번에 선생님께 지우는 이 타투도 이제는 버려지거나, 질려서는 안 되는 기억이기에 지우는 겁니다. 지움으로써, 영원해지는 겁니다.”
그는 이제 말에 약간의 미소를 더하며 말했다.
“사실, 선생님께 마지막으로 타투제거를 하고 조금은 쉬려 했습니다만, 오늘로써 조금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지우고 싶은 타투가 더 생겼다는 건가?"
"그것까지는 조금 기다려봐야 될것 같습니다. 곧 선생님께 연락을 드리죠."
우리가 떠들 때에도 그녀는 여전히 푹신한 레스토랑 의자에 기대어 곤히 자고 있었다. 대화가 끝나고 우리는 레스토랑에 나왔다. 그녀는 한쪽 팔을 그의 어깨에 기대어 품에 안겨 있었다. 나는 그녀가 자는 척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저는 차를 가져왔습니다."
그는 자신이 그녀를 대려다 줘야 하는 사람처럼 선언하듯이 말했다. 그의 행동에는 항상 미련함이나, 망설임이 없었다. 그것이 그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이자 나에게는 불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여전히 그의 품에 안겨 자고 있었다. 나는 그의 몸 안에 기대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그녀를 보는 것이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매번 순수해지기 위해 나에게 다가와 타투를 지우던 그녀가, 이제는 영원히 없어져버릴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보내줄 것이다. 나의 미련하고 망설임의 행동에서 나의 질투와 경계를 느꼈겠지만 그는 아마도 그것을 신경조차 쓰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녀를 붙잡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너무 아름다운 우주였고 나는 고작 정해진 궤도를 도는 인공위성 잔해였다. 통신의 전파나 우주의 흐름을 방해하는 대상. 자신의 목적을 다하고 방대한 우주를 떠도는 하찮은 조각. 그런 나에게 그녀를 대려 올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의 차는 페라리 빨간색 쿠페 스포츠카였다. 이 역시도 청담동의 좁은 길목과는 어울리지 않는 차였다.
“오늘 즐거웠습니다. 다음번 타투 지우는 날, 그때 다시 뵙죠”
나는 그와 함께 그녀를 보내며 생각했다. 그녀를 위해 조금씩 몰래 모아 왔던 프로포폴을 하수구로 버려줘야 할 때라고.
그녀는 이전에도 그랬듯, 잠적을 감추었다. 그와 그녀를 마지막으로 만난 이후, 나는 여전히 그녀의 연락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항상 몇 주 혹은 몇 달 동안 잠적을 하는 건 그녀의 당연한 수순이었지만 이번에는 무엇인가 느낌이 달랐다. 나는 그에게로 떠나버린 그녀가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나는 어느새 그녀를 기다리는 것에 있어 다시 내 앞에 나타나주길 바란다는 “소망”보다는 “집착”을 하게 되었다. 이 집착은 몇 달 동안 나를 괴롭혔다. 매 순간 전화, 이메일, 우편함을 강박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나는 그 우편함이 비어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것을 실제로 열어보기 전까지는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항상 심장이 두근댔다. 비어있는 우편함 안에 실제로 마치 그녀의 흔적이 있는듯한 느낌을 받는 것이다. 이 느낌은 타투를 지우는 중에서도 나타나 나는 환자의 “후회”를 지우는 것에 있어 수많은 실수들을 범했다. 레이저가 번쩍이고, 눈에 남는 잔상에서 왜인지 모를 그녀가 느껴졌다. 통증에 아파 눈을 비빌수록 그 잔상은 더욱 눈 안에 퍼져가며 선명해져 갔다. 저는 차를 가져왔습니다 - 그의 마지막 말이 머릿속에 은은하게 퍼져갔다.
그는 그로부터 2달이 지나서야 내 앞에 나타났다. 그는 여전히 온몸이 까맸고 옷이 가벼웠다.
“죄송합니다. 예약 날짜를 못 지켰네요.”
나는 그에게서 그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가벼움, 무례함, 건방짐, 쑥스러움까지. 그는 나를 보며 웃는다. 그리고 이두 쪽 팔을 걷어 시술을 준비했다. 여전히 선명한 타투였다. 타투는 역시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반대쪽 팔에 검은색으로 번진 주사기 타투가 하나 보인다. 전에는 보지 못한 타투다. 너무나 삐뚤빼뚤해 영유아 사인펜으로 휘적거리며 그린 타투 같아 보였다. 나는 우스꽝스러운 보호 안경을 낀 채, 레이저 기계의 차갑지만 뜨거운 열과 함께 그에게 묻는다. 새로운 타투를 하셨나 보네요. 그에게 했던 친근했던 반말은 어느새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는 나의 말을 듣고 아주 살짝 웃었다. 그 또한 시술대에 누워 우스꽝스러운 보호안경을 끼고 있다.
“네. 얼마 전 받은 타투입니다.”
그 타투제거도 저에게 받으시죠. 나의 권유에 그의 얼굴에는 웃음이 덮였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술이 끝난 뒤, 다음번 예약을 잡고 나가버렸다. 그렇지만 나는 그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보이지 않은 지 반년이 지났다. 여전히 키가 190에 빨간색 스포츠카를 탄 그는 500만 원을 선 수납하고 나머지 타투를 지우러 오지 않고 있다. 나는 그녀를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었다. 최근 몰라보게 수척해진 나를 보며 의대 동기 한 명이 나에게 여자 한 명을 소개해주었고 나는 그녀와 교제를 하고 있다. 나를 우선적으로 챙겨주는 그녀는 작은 키와 좁은 어깨, 긴 머리를 가졌다. 사라진 그녀와는 정 반대인 여성이었다.
”최근에 이상한 환자가 온 적이 있어”
의대 동기 모임 자리에서, 나와 맞은편에 앉은 동기가 와인을 마시며 말했다.
“뭐 타투를 지우러 왔는데, 그전에 몇 번이고 지웠던 곳에 타투를 했더라고. 그리고 또 와서 하는 말이, 또 타투를 지우겠다고 하더라.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라고 말하면서 말이야. 나는 그렇게 타투를 지우고 또 위에 한 거는 처음 봤어. 아마 엄청 아팠을 거야”
나는 반쯤 취해 떠들어대는 동기를 보며 그 지우려는 타투가 무엇인지 물었다.
“그 뭐였더라” 동기는 생각에 빠진다.
“어 그래. 하얀색 물병이었어”
나는 동기가 소개해준 여성과 2년을 교제하다 결혼을 약속하였다. 여성은 나의 공백과 갈망을 채워주는, 세심한 사람이다. 항상 나의 부족한 부분을 불태워 더욱 공백을 넓혔던, 그래서 더욱 무엇인가를 갈망하게 했던 그녀와는 정반대의 여성이다.
나는 결혼을 약속한 여성과 고급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있다. 차분한 옷차림에 나이프로 고기를 자르는 여성은 꽤나 고풍스러웠다.
“선생님은 이 자리에 앉는 게 버릇인가 봐요?”
여성은 나에게 묻는다. 이 여성 또한 나에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쓴다. 나는 여성의 뒤편의 오래된 레스토랑의 문을 바라보고 있다. 여전히 그때처럼 그 남성이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다. 나는 곧 여성을 바라보고 웃으며 와인을 마신다.
나는 오늘도 후회를 지우기 위해 오는 사람들의 후회의 크기를 재고, 가격을 계산하고, 그곳에다가 레이저를 쏜다. 얇은 오징어 끝부분이 강하게 오그라들며 타들어가는 냄새가 난다. 나는 여전히 생각한다. 그는 갑자기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는 여전히 어디서 타투를 박고 있을까, 아니면 타투를 지우고 있을까.
나는 또다시 휴대폰을 켜 문자와 메일을, 집 앞 녹슨 우편함을 억지로 열어 뒤져본다. 오늘도 그녀에 관련된 연락은 없다. 하지만 내일의 그 우편함을 열어보기 전까지는 모른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을지. 나는 그것이 빈 우편함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열어보기 전까지 나의 심장은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그녀는 없어졌기에, 나에게 영원히 각인되어 버렸다.
“아직은 몰라. 정말로 열어보기 전까지는 말이야.” 누군가 나의 귀에 속삭인다. 그것은 나의 목소리이지만 나와는 다른 존재이다.
나는 병원에서 다음 환자를 부른다. 그리고 곧 말할 것이다. 이 사람의 후회가 얼마나 큰지, 얼마만큼의 가격이 필요한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한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