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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 Feb 13. 2016

[일상] 세상의 숙제

  토요일 오전은 보통 빈둥거리기 마련이거늘.  몇 주전부터 날 괴롭히던 생각이 아침부터 또 날 괴롭히기 시작하여 답답함에 글을 남긴다.


  설 연휴때 남해 고향에 다녀왔다.  아버지와의 술자리에서 편안한 대화가 오가던 중, 슬며서 우려했던 단어들이 아버지의 입에서 어김없이 나온다.  "건아, 올해 결혼할거냐?".  "때가 되면 하지 않겠어요?"라는 말로 슬쩍 흘려 넘긴다.  세상에는 그 문화가 만든 많은 숙제가 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그 숙제들을 해나가며, 그 숙제는 마치 우리에게는 어떤 족쇄와 같기도 하면서, 또 숙제의 결과는 재수없게도 그 사람을 평가하는 아주 큰 잣대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사는 사람에게 주어진 숙제를 보면.  20세까지 죽어라 공부해야 하는 말도 안되는 숙제가 주어진다.  자아가 발달하지도 않은 나이부터 죽어라 숙제를 하게 되며, 그 이유를 찾기가 힘들다.  말 그대로 숙제다.  불필요하다고 느낄지라도 해야한다.  그리고 우리는 종종 숙제를 잘하나 검사받게 된다.  "요즘 공부는 잘하니?", "성적표 가지고 와봐"라는 말로 우리는 숙제를 잘 하고 있음을 검사 받아야 했다.  공부하기 싫다는 마음은 뭔가 죄를 짓는 느낌마저 받게 만든다.  식물 키우는 일이 하고 싶을지라도, 또 다른 무엇인가가 공부하고 싶더라도, 세상이 정한 과목을 공부해야 한다.  숙제니까.


  그렇게 20세가 되면 세상은 우리를 두부 썰듯이 너무나도 쉽게 잘라서 분리되기 시작한다.  숙제를 잘 수행한 녀석들은 앞쪽에서 좋은 대학을 가게되며, 숙제를 안한 녀석들은 뒤에서 좋지 않은 대학을 가게된다.  잘려 나가기를 거부하여 도마위에 오르지 않은 녀석들은 평생 '고졸'이라는 낙인을 등뒤에 찍고 살아간다.  숙제 검사 하는날에 도망간 멋진 녀석 들에게 '고졸'이라는 낙인은 너무 하지 않은가.


  그렇게 대학에 입학하면 그때부터 또 다른 숙제를 한다.  취업.  이라는 숙제를 하기위해 또 공부를 한다.  우리 문화는 이미 잔디밧에 누워서 통기타 치며 개똥벌레를 부를만한 마음의 여유를 감히 허락하지 않는다.  대학교 1학년때부터 취업 동아리에 가입하여, 스펙이라는 것을 만들기 시작한다.  숙제이기에 해야한다.  이유는 없다.  그것을 통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잘 알게 되지만, 그래도 어찌하겠는가.  숙제인데.  세상만사 모든것이 상대적이니.  옆의 친구가 하는 만큼은 해야 중간은 간다.


  그렇게 20대 중후반에 되면 또 한번 잘려 나간다.  20살때는 세로로 잘렸다면, 이제 그 세로 안에서 다시 가로로 잘려 나간다.  그 이름표로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  이것 또한 재수없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때부터 이제 'A대학 나와서 B회사에 다니는 아무개'로 불리기 시작한다.  백년 가약을 맺을 배필을 구할때도 사용될 것이며, 이직할때도 따라다닐 것이다.  몇 몇 말도 안되게 재수없는 회사에서는 신입 출신이냐, 경력입사냐를 구분하며 성골 진골로 불리우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대학도 나오고 취업도 하고.  이제 결혼해야 한다.  불행한 점은 그 시기는 이미 세상이 어느정도 만들어 놓았다는 점이며.  다행인 점은 그나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다는 정도리라.  그런데 긴장은 놓으면 안된다.  결혼 또한 평가 대상이며, 또 한번 잘려 나가야 한다.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나를 너무 사랑해주는, 하지만 세상의 평가가 박한 상대방과 만나고 있다면.  역경을 앞에 둔 그대에게 축복이 함께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래도 사랑의 힘이 대단한 것이 원하는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수많은 사람을 보았기에.  사랑이 참 대단하다 싶긴하다.


  그 이후에도 이미 세상이 정해놓은 사람을 살아갈 것이다.  이제 자식의 숙제를 검사하고 독려하고, 세상이 만든 숙제에 타당성을 부여하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좋은 대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한 준비를 해나갈 것이다.  허나 난 잘 모르겠다.  경험이 없기에.  그 이후의 경험이 없기에.  하지만 뭔가 여태보다 조금 더 힘든 숙제를 해나가야 함은 확실해 보인다.


  이딴 숙제를 위해서 놓친 것들이 무엇일까.  음. 경험상 초등학교때의 사랑, 중학교때, 고등학교때, 대학교때, 그 이후의 사랑은 모두 다르다.  많은 사람이 대학교에 와서 연애를 처음 한다.  숙제 하라며 연애를 못하게 하기도 한다.  못 마시는 술을 어른들 몰래 먹으며, 같은 여자를 좋아하는 친구 녀석을 두고.  "난 괜찮타. 너 가져라"라며 객기 부리던 순간을.  사랑보다 우정이 앞서던 시절을 절대로 경험하지 못한다.  비만 오면 축구공 들고, 맨발로 축구하고 끝나면 편의점에서 만두 돌려먹고.  어른들 눈과 비를 피할 만한 곳에서 쪼그려 앉아서 맥주에 새우깡을 먹으며 우리는 변하지 말자고 다짐하던 그런 추억을 절대로 만들지 못한다.


  내가 슬픈건, 너무 슬프고 분한건.  한 인생 한 삶인데, 그 중 가장 빛나야할 시기를 저딴 숙제나 하며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과 문화가 만든 숙제를 이제는 놓아야할 시기가 아닌지.  모두 놓기 힘들지라도, 하나씩 하나씩 놓는 연습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든다.  나 또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마지막 나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어짜피 이 글을 절대로 읽지 않을 아버지, 제 결혼은 제가 사랑하는 사람 생기면, 제가 그 사람과 의논해서 정한 그 날짜에 합니다.  30대 초반이니 이제 결혼해라건 어짜피 세상이 만든 거자나요?  아 그리고 어머니, 선 안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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