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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스톰 Aug 17. 2023

'서서'를 보내며

폭풍의 브랜드 도전기 Ep. #02 첫 번째 한강 다리



둥!   둥!   둥!


나의 지난 인생을 한마디로 설명하라고 한다면, 하루키의 표현대로 내 귀에만 들리는 '먼 북소리'를 찾아 헤메긴 여행이라 말할 수 있겠다.





2012년 10월


늦깎이 공부하느라 시작이 많이 늦었던 사회생활.

코스닥 상장사 연구소에 말단으로 입사하여, 9개월 만에 기획실장으로 고속 승진을 경험했, 회장님을 지근거리에서 보필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했기에 짧았던 시간에 비하여 많은 것을 배웠던 기간이었다. 사표를 쓰는 것이 쉽지는 않았으나 마흔이 되기 전에 무엇이든 시작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사표를 손에 쥐니 제일 먼저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가 회사 생활을 시작하고는 처음으로 적금이라는 것을 부어봤다며 적금통장을 들고 기뻐하던 사람이었다. 내 내면의 막연한 부름에 대하여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으나 일단 저질렀다. 


두웅~~! 하고 어디선가 북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아내에게 퇴사를 알린 건 회사를 설립하고 10개월이 지나 자립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 시점이었다. 매달 급여일에는 그동안 모아 온 비상금과 퇴직금을 합쳐 마련한 자금으로 급여통장에 다니던 회사 이름으로 송금했다. 물론, 그 10개월 동안 매일 아무렇지도 않게 양복을 입고 새벽에 출근했다. 나도 참 답이 없다.

 

[첫 사무실 혹은 번데기]


사표를 내고는 회사 근처 1인 소호 사무실을 얻어 화장품 R&D 사업을 시작했다. 기술이전 사업을 준비하면서 처음부터 바로 벤처기업 신청을 했다. 기술과 특허 몇 가지를 보유했기에 쉽게 벤처기업 타이틀을 받을 수 있었다.



처음 한동안은 '벤처' 기업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벤처... 이게 모험이라는 영어 단어 어드벤처의 '벤처'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누가 우리 제품을 사줄 것인가, 어떻게 제품개발비를 충당할 것인가? 이런 기본적인 문제에 맞닥뜨리면서 내 주변의 상황은 희망에서 절망으로, 천국에서 지옥으로 변해갔다. 25일이면 어김없이 어디선가 돈이 나오는 줄 알고 살았던 직장인으로서는 사업의 한 달 한 달이 '어드벤처'였다. 아니 대놓고 '벤처'라고 쓰여있는데 왜 몰랐지?


 모험의 시간 동안 많은 만남과 헤어짐이 있었다. 그중에 가장 마음에 남는 이별을 적어본다. 내 능력의 한계와 외적 상황의 문제이기에 아직도 마음에 깊이 남았다.

 




연구 생활을 하는 중 만난 K 소장.

내게는 삼국지의 '서서'와 같은 사람이었다.


회사 잘 다니고 있던 그를 설득해 그만두게 하고 조그만 연구실을 함께 만들었다. 그는 나와 일을 시작하고는 직장 생활한 뒤로 처음으로 아침의 여유를 느꼈다고 했다. 그 당시 내가 제공할 수 있는 복지(?)의 전부인, 비싸지 않은 커피 원두에도 그는 행복해했고, 무슨 의식을 치르듯 그라인딩하고 온도를 맞춘 물로 정성스럽게 드립 커피를 건네주고는 아침을 시작했다.


그의 마음은 언제나 정제되어 있었고, 일을 나누어 구분할 줄 알았다. 개발에서 제품 생산 그리고 마케팅으로 이어지는 전 과정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희끗해지는 그의 눈썹에 걸맞은 통찰이 있었다.


그가 연구를 맡아준 뒤로 우리의 개발 업무는 정확하고, 빠르게 정리되어 갔다. 내 마음도 사업을 시작한 이래 최고로 편한 날들이었다.


이 무렵 우리 회사 동료들의 이메일 이름을 함께 정했는데 날씨와 자연 현상의 이름을 메일에 쓰기로 했다. 하나의 재미였는데 몇 가지를 소개하면, S책임은 구름 속에서 햇살이 뻗어 나오는 '실버 라이닝(Silver lining)', 그녀는 구름 속 한줄기 햇살이 희망을 생각나게 한다고 했다. J차장은 '깊은 고요(Deep calm)', 조용하고 담백한 그의 성품 그 자체였다. 나는 옛날 영화 로맨싱 스톤에서 따온 '로맨싱 스톰(Romancing Storm, 줄여서 '알스톰')', 낭만폭풍이라는 의미였다.


K소장은...... 생각나는 단어가 하나였다. 모두들 한 번에 동의했는데, '유니버스(Universe)'였다. 그의 이메일 이름은 그렇게 정해졌다.


[모든 것의 시작과 끝, 유니버스]





행복했었다.

돈이 아니라 사람이 곁에 있어서.


그러다 자기 중국발 사드(SAAD) 사태가 터졌다. 소비재에 대한 대중국 수출이 하루아침에 막혔는데, 화장품 업계가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고, 우리 또한 예외일 수 없었다. 가장 큰 타격은 우리가 공급한 화장품 몇 컨테이너가 중국 상하이 항구에서 기한 없이 발이 묶인 것이었다. 무한정 시간이 지나갔고 마침내는 포기하게 되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투자와 병행된 공장설립도 거의 완성 단계에서 무산되어 무일푼으로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홀로 맞는 한강의 칼바람은 서러웠다]


내 첫 번째 한강다리 위에 선 기억이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나 혼자가 아니라 책임질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에 더 힘들었다. 한 가정의 가장인 그에게 끝이 보이지않는 고난의 행군을 함께 하자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였고 도리가 아니었다.


마침, 우리에게 투자하려던 회사에서 K 소장을 연구소장으로 영입하려 했다. 답은 하나였다. 그를 놓아주는 것. 오히려 다행이었다.


사업이란 돈으로 시간을 사서 사람을 남기는 것일진대, 나는 시간을 살 돈이 없었다.


떠나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전한 것은 50만 원이 들어있는 흰 봉투였다. 그 무렵 그의 큰딸이 예고에 합격하였기에 교복을 사 입히시라고 마다하는 손에 억지로 전해주었다. 그가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카페에서 이야기를 마치고 뒤돌아 걸어가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처진 어깨가 눈에 들어왔다.


...... 의 마음도 내 마음과 같을 것이다.





"저 길 앞을 막는 버드나무 가지를 잘라내거라!

서서의 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구나."



유비의 마음을 다시 읽었다.

나는 렇게 그를 보냈으나 그를 통해 사람이 사람을 만나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배웠다.

회사의 성장통은 오롯이 대표의 몫이다.


나는 아프게 조금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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