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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스톰 Nov 07. 2023

Stranger in SEOUL 02

BAHAR – Interview project #02 디자이너 최충훈


인터뷰에 들어가며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성수동 한양대학병원에서 태어나, 학창 시절과 청춘의 대부분을 동작구 상도동에서 보냈다. 서울 사람이었던 나는 한 번도 서울에서 낯설다는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2023년 초가을, 디자이너분들과 서울패션위크를 함께하면서 그들의 몸짓과 눈빛에 처음으로 내 고향 서울에서 이방인이 된 것처럼 낯이 설었다. 그 느낌의 근원을 알고 싶었다.


서울컬렉션 두칸쇼. 바람을 형상화한 거대한 조형물 사이로 흐르는 워킹, 패션이 무엇인지 실체를 보여주는 듯한 그의 확신이 느껴지는 쇼를 보았다. 이번 쇼의 준비 과정과 작품에 깃든 이야기, 그리고 자연과 사물에서 판타지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디자이너 최충훈’의 이야기를 풀어 가보려 한다.







Fantasy of nature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선


디자이너 최충훈

공식홈페이지인스타그램






Q.

어떠한 길이든 시작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시작점과 방향이 길의 운명을 만들게 됩니다. 어떤 길은 산을 넘게 되고, 어떤 길은 산을 뚫고 지나가게 됩니다. 최충훈 디자이너님께서는 패션을 업으로 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언제부터 시작된 꿈일까요?


A.

예전에는 인터뷰에서 그런 질문을 받으면 예쁘게 포장하려고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이런 질문이 제일 많거든요. 왜 패션을 했는지, 언제 동기부여가 되었고, 왜 하게 됐는지에 대한 생각을 해보면, 한마디로 설명할 수가 없는 거예요. 만들어보려 해도 만들 수 없는 게 있지 않나요?


대표님도 이 영화는 보셨을 거라고 생각해요. 빌리 엘리어트. 저는 이 영화를 좋아해서 수십 번을 봤는데, 그때는 못 느꼈었어요. 주인공 빌리가 발레 학교를 입학하기 위해서 오디션을 보는 도중에 실수를 했죠. 그런데 끝나고 돌아 나가려는데 한 면접관이 질문을 해요.


“춤출 때 어떤 기분이 드니?”


“그냥 기분이 좋아져요.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아요.

내 몸 전체가 변하는 것 같아요. 한 마리 날아가는 새가 된 것 같아요.”


그 아이의 대답에서 난 느꼈어요. 저도 마찬가지로 언제부터인가 라는 생각은 안 들었던 것 같아요. 누가 내 옷을 입었을 때, 내가 어떤 사람에게 옷을 입힐 상상을 했을 때 무척 행복해지는 걸 느껴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인위적으로 생각해서 하는 것은 아닌 것 같고, 저는 그저 옷을 하면서 기분이 좋았던 것 같아요.





Q.

최충훈 디자인의 특징은 아름다움을 보는 독특한 시선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우리에게 익숙한 자연과 사물에서 우리가 볼 수 없는 판타지를 보는 눈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화장품 브랜드를 하면서 하는 많은 고민 중의 하나가 익숙한 것을 다시 재해석해야 하는 것입니다. 너무 어려운 소재를 들고 나오면 소비자가 반응하지 않고 너무 멀리 나가면 따라오지 않습니다. 디자이너로서 두칸 혹은 최충훈 디자인의 철학 그리고 사물을 바라보는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A.

잘 아시겠지만, 제가 패션을 하기 전에 뷰티를 했었잖아요. 프랑스에서도 뷰티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활동을 했었고. 제가 한국 들어와서 기초와 색조 제품을 만들어서 런칭도 해봤어요. 뷰티와 패션은 늘 함께 가는 것이기 때문에 메이크업 아티스트로서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욱 복잡한 컬러감 이라든지, 색을 쓰는 데 있어서 다른 디자이너에 비하여 조금은 더 과감할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하게 됩니다.


1차적으로는 자연에서 보이는 컬러가 저한테 많은 영감을 줍니다. 꽃의 컬러라든지. 나뭇잎의 색깔,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있기 때문에 여름의 녹색, 겨울의 눈이 내리는 하얀 감성, 눈이 마당에 이렇게 쌓여 있으면 뭔가 느껴지는 것들이 있지 않아요? 눈으로 보이는 그런 자연에 나만의 색감과 컬러를 입히게 되고, 거기에 불어오는 바람들에서도 영향을 받게 되어 이번 쇼에서도 [윈드 무브먼트]라는 주제가 나왔던 것 같습니다.





Q.

전후 독일에서 창조성 교육에 집중하기 위해 만들어진 학교, 바우하우스에서 제일 먼저 했던 교육이 ‘공감각 훈련’이었고, 그다음이 ‘공감각의 편집’이었습니다. 이번 두칸 2024 S/S서울컬렉션의 주제는 [윈드 무브먼트] 였는데요. 바람이라는 보이지 않는 것을 시각화하는 것이 바로 공감각의 영역인 것 같습니다. 이 작업 과정에 대해 조금 더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매번 돌아오는 패션위크에서 주제를 정하는 원칙이나 기준이 있으신가요?


A.

저는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 [두칸]이라는 브랜드는 무척 페미닌 한 브랜드이긴 하지만 어떻게 보면 강한 남성적인 느낌도 같이 섞여 있어요. 우리가 봄에 부는 미풍의 부드러움에서는 여성성을 느끼지만 여름의 강렬한 태풍에서는 남성스러운 느낌도 있지 않겠어요? 그런 것들을 적절하게 섞여있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단조롭지 않고 좀 더 재미난 쇼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쇼’라는 작품은 쇼적인 분위기를 보여줘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지루한 것보다는 강렬함과 좀 더 서정적인 느낌을 섞어준다면 많은 분들이 더 좋아하는 작품이 되겠지요.


그리고 아까 바우하우스에 대한 얘기도 잠깐 하셨는데, 저도 파리에서 공부를 했었는데, 저도 한국 사람이라서 그런지 생각이 닫혀 있다고 해야 하나요? 한국사람 특히, 우리 나이대가 그랬던 것 같습니다. 파리패션학교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오늘은 하늘을 담은 옷을 만들어봐', '바람을 담은 옷을 만들어 봐'라고 말씀하셨죠. 1차원적인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상상의 나래를 많이 펼치는 게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요? 모든 분야 예술가들이 그런 것 같습니다.


이번 패션쇼에 우리가 [바하르]와 함께 했지요. 함께하는 동안 저는 바하르의 향 작품에 담고 싶었고, 성분을 철저하게 관리하시는 바하르의 좋은 철학을 입히고 싶었어요.


또 이번 쇼에서는 커다란 오브제를 런웨이에 설치를 했는데요. 바위가 바람의 풍화작용에 의해서 깎이기도 하고, 물에 의해서 또 깎이잖아요. 그런데 바위가 그렇게 되기까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진 않죠. 올해는 바람을 받아 몇 천 년이 걸려서 만들어진 자연의 모습을 한 조형물을 놓으면 더 멋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에서 이번 쇼에 오브제를 설치하게 된 것이지요.


또한 음악도 패션쇼에서 무척 중요한 요소입니다. 저는 음악을 정말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음악이라는 것은 하나의 언어잖아요. 어떻게 보면 듣는 이에게 언어보다 더 많은 것을 전달할 수가 있어요.


음악도 있어야 하고, 조명도 있어야 되고, 쇼는 하나의 종합 예술인 것 같습니다. 15분짜리 영화 같은.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패션을 하면서 좋은 점은

쇼에 오시는 분들, 무척 좋아하시고 행복해하시잖아요.

공감하시는 주변의 분들과 함께 완성시켜야 되는 것이 패션쇼라고 생각합니다.





Q.

그렇다면, 디자이너로서 ‘아름다움’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름다움의 정의라기보다는 무엇을 아름답다고 보시는지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항상 아름다움을 찾아 헤매는 여성분들에게 매번 답이 아닌 답을 드려야 하는 저희로서 늘 새로운 아름다움을 창조하시는 디자이너님의 의견이 궁금했습니다.


A.

이를 테면 이런 게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우리는 패션을 하니까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외적인 것으로 평가되는 게 중요하지만 ‘본질’은 있다고 봐요. 저는 그 본질이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이 그 일을 할 때 느껴지는 에너지, 그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바하르 대표님을 처음 만났을 때에 느꼈던 것과 비슷해요. 최근에 뵈었지만 서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최근 코로나로 어려움도 겪은 이야기를 함께 나누면서 좀 더 서로에 대해 알게 되었고, 지금은 좋은 인연이 되었지요.


좋은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한다는 부분에서는 대표님도 그렇고 저도 또 어떤 열정을 가지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하고, 두 사람이 만나서 아름다움이라는 공통되는 영역 같이 할 수 있는 자체가 나는 그게 제일 아름다운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끊임없이 달리는 사람이라기보다는, 한 걸음 한 걸음 함께 걸어가는 사람들이잖아요. 계속 달리다 보면 너무 지치니까. 그렇게 걷다 보면 내가 어느 정도에 올라와 있는지 생각해 볼 수 도 있고 한 번쯤 뒤 돌아볼 수 있는 그런 여유를 가지게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서 같이 손잡고 걸어갈 수 있는 그런 사람과 사람의 관계,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입니다. 


물론 그 과정에 시련도 있어요. 그렇지만 그것도 이겨내고 또 지나고 나면 그때는 너무너무 힘들고 어려운 시기였어도 또 이렇게 그때를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잖아요.




Q.

어떻게 보면 예술과 산업의 양 측면을 모두 이해하고 실현시켜야 하는 곳이 패션업계이다 보니 여기까지 오시기까지 많은 일이 있으셨을 텐데 패션 비즈니스를 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으라면 어떤 장면이 있을까요?


A.

패션쇼라는 것은 종합 예술이에요. 어떻게 보면 음악과 함께 모델에 내 옷을 입혀 보여주는 무대를 만들었을 때, 나는 예술을 하고 있는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짧은 드라마나 단편 영화, 연극을 만드는 것과 똑같아요. 내가 디렉터이기도 하고,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우리 디자이너들은 순수 예술가는 아니에요. 상업 예술과 순수 예술의 경계에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래도, 제 패션쇼를 보시고 눈물 흘리셨다는 분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생겨요. 우리는 누군가를 기분 좋게 해 주기는 쉽지만 눈물 흘리게 만드는 것은 어렵잖아요. 좋은 음악은 사람을 울릴 수도 있고 웃을 수도 있게 만들 수 있잖아요. 그런 점에서 저는 예술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패션은 창작의 고통과 사업으로서의 성공 또는 기쁨 같은 것들이 계속 교차되는 줄타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계속 줄타기를 해야 되는 거예요. 너무 장사하는 사람처럼 보여서도 안되고, 또 너무 예술만 추구해도 안되지요.  


제가 학교에서 배웠던 게 또 있었어요. 파리에서 20대 때 선생님이 말씀해 주신 것인데 너무 크리에이티브한 옷, 입지 못할 옷은 옷이 아니라고도 말씀하시더라고요. 우리가 만들어야 할 옷은 걸어놓고 보는 옷이 아니라 입어야 되는 옷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음… 지금까지 패션을 해오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많아요. 기뻤던 순간, 슬펐던 순간들이 참 많았지만 오늘은 기뻤던 이야기를 해 볼게요.


몇 해 전에 제가 파리에서 쇼를 하게 되었는데, 어느 독일 기자분이 제가 파리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약속도 없이 무작정 저, 최충훈을 만나러 오신 거예요. [두칸]이라는 브랜드를 독일에서도 알아봐 주시고 취재 오셨던 그 순간의 감동은 뭐라고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컸어요.


내가 모르는 세상에서 날 알고 찾아와 주신 거니까요.

정말 열심히 해야지 하고 생각한 순간이었어요.





Q.

현재 다양한 활동을 통하여 패션계의 중추로서 역할을 하고 계신데요. 디자이너로서, 사업가로서 앞으로의 방향은 어떻게 설정하고 계신가요?


A.

짧게 이야기할 수 있어요. 글로벌한 브랜드가 되고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프로페셔널의 길에 대해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 패션계뿐만 아니라 어떠한 일이라도 각자의 영역에서 프로페셔널이 되기 위해서 지금도 땀을 흘리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그 친구들에게 선배로서 전해주실 말씀이 있을까요?


A.

뭐라 선뜻 말씀드리기 좀 어렵네요. 왜냐하면 저도 아직 가야 길과 배워야 할 것들이 더 많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일단은 뿌리를 먼저 키워야 돼요. 자기만의 세계, 거목 같은 큰 나무들은 뿌리가 무척 깊고 줄기는 이렇게 넓게 퍼져 있잖아요. 대나무처럼 길쭉하게만 자라는 게 아니라. 그런 뿌리 깊은 거목이 되어야 해요.


그리고 패션계에서는 멈추면 살아있다고 말할 수 없어요. 끊임없이 발전하고 나를 더욱더 변화시켜야 되는 거예요. 또 패션은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예술로써 만 접근하는 게 아니라, 트렌드를 반영해야 되거든요. 계속 공부를 하고 또 다른 미래를 위해서 투자하고 계속 노력하는 것이 성공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이룬 것에 멈춰 서서 자만하거나 나태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도 가끔씩은 제가 나태해질까 봐 두렵긴 하거든요. 그래서 이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스스로 채찍질해서 멋진 모습을 보여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디자이너 최충훈, 그와 함께 한 어리석은 질문과 깨달음이 있는 답.


당신이 이해한 아름다움을 이야기해 달라는 나에게 그는 아름다움의 본질은 ‘사람’이라 이야기한다.


그의 프로페셔널로서의 확고한 세계관은 결국 ‘인간에 대한 믿음’, 그리고 그 사이를 이어주는 ‘인연’이라는 신념에 기대고 있었다. 우리 나이에 누군가는 미련이 남아 아직 부둥켜안고 있고, 누군가는 몸서리치며 이미 내려놓았을 법한 순수한 신념을 그는 강하게 붙들고 있다.


부드러웠지만 단호했던 그의 목소리는 이렇게 단순한 진리를 아직도 깨닫지 못한 어리석은 나에게 벌처럼 내리는 커다란 천둥소리처럼 들렸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그와의 만남, 그리고 그를 인터뷰하는 이 순간까지도 우연을 가장해 누군가 이미 알고 정해준 ‘인연’에 의해 이끌려 온 것은 아닐까?


시간 그리고 지면의 한계로 우연히 엿보게 된 그의 멋진 세계관을 모두 풀어 보여줄 수 없음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다만, 모두 말하지 않아도 미루어 알 수 있는 그의 미래에 대한 확신을 여러분들께 들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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