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고 묻는 질문에 한동안 저는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 얼버무린 적이 많았습니다. 그러한 물음에 요즈음에는 저 스스로를 ‘스토리텔러’ 또는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답하곤 합니다.
책을 읽고 공부하다 보면서 느낀 점은 '신화'는 모든 이야기의 원조이자 생각의 근원이라는 생각입니다. 스스로를 '스토리텔러' 또는 '크리에이터'라고 규정한다면, 전 세계의 신화와 전설 그리고 그 상징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세상에 대한 아무런 과학적 사전 지식이 없던 원시 시절의 우리가 하늘을, 밤하늘의 별을, 비바람과 번개를 그리고 사람 사는 세상의 제어할 수 없는 감정의 흐름들을 보고 느끼고, 해석하는 틀이 신화인데, 그 신화의 이야기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금도 우리가 무언가에게서 느끼는 심연의 공포, 두려움, 그리고 참지 못할 호기심의 불구덩이를 참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물을 객체로 이해하기 이전에 존재 자체로 받아들이는 우리의 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반응하는 본능적인 판단이 발현된 현상이 아닐까 합니다.
저 세상으로 가는 문
화장품은 하나의 상품이기 이전에 여자의 욕망을 대변하는 표상
이기도 하지요. 저한테 뭘 묻는 와이프의 질문의 의도와 눈빛도 한눈에 해석하기 힘든(;;) 저로서는 화장품 소비의 시장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임이 분명합니다. 과학적으로 세상을 해석할 힘이 없었던 고대인들처럼 저는 화장품에 숨겨진 여인의 욕망과 질투의 이야기를 들어보려면 신화를 읽어야만 했습니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근원적인 질문의 답과 우리는 왜 아름다움을 숭상하는가에 대한 근사한 해답은 제가 읽은 신화 어디에서도 명쾌하게 찾아볼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어렴풋이나마 인간의 부족함과 두려움이 어제보다 조금 더 복잡한 세상을 만들어왔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짧은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만, 자연이 가혹할수록, 숲이 깊을수록 신화와 전설은 더욱더 깊고 어두워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의 지진과 쓰나미, 화산폭발 같은 가혹한 자연환경이 이유 없는 분노로 사람을 해코지하는 일본 특유의 귀신과 괴수의 원형을 만들어낸 것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자연재해로부터 비교적 안전했던 우리나라 귀신은 보통 사또가 자기 원한을 풀어주면 마음을 고쳐먹고 하늘로 승천하는데 말이지요. 어디서 시작해야 될지 몰랐던 이야기의 출발점이 이런데 있습니다.
작품전을 준비하시는 오순경 작가님
얼마 전 우리나라 민화의 대가이신 '오순경 작가님'으로부터 민화 작품 속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와 그 안에 녹아 있는 상징을 직접 듣고 배울 수 있었던 감사한 시간이 있었습니다.
자손의 발복을 빌고, 무사를 기원하며 그리고 선물하며, 그 은유를 읽을 수 있는 사람에게는 무한한 생각의 출발점을 제시해 주는 민화는 그 단순화한 선과 눙친 여백에 신화와 전설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를 숨겨놓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규방과 사랑채를 오가며 마음의 암호를 건네고 받으며 위로받았을 우리의 조상들은 매일 밤하늘과 땅이 속삭이는 신화에 귀 기울이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신화와 전설은 우리의 먼 조상님들이 경험한 불에 덴 상처가 만들어낸 경고장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어디에라도 기대면 들을 수 있는 소중한 경고를 무시하고 있어서 요즈음의 사회의 이해 불가능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는 오히려 생각을 간단히 정리해 보면 답을 찾을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아이디어가 고갈되었다고 느끼실 때는 조용히 신화 책을 펼쳐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신화와 전설은 당신이 찾아 헤매던 질문에 대한 힌트를 슬며시 내어 놓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