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에 한두 번(혹은 서너 번) 오전 10시에 하루를 시작한다. 그러면 짧지도 길지도 않게 하루를 보내는 기분이 든다. 오전 10시 기상, 괜찮다. 어차피 일찍 일어나서 할 게 없는 나라로 왔으니 말이다.
2016년 자기 계발에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미라클모닝 지금까지 붐인걸 보면 일찍 일어나는 것에 대한 기대와 열망은 대단하다. 사실 2000년대에 이르러서 시작된 운동도 아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윌리엄 캠던(1551-1623)이라는 속담처럼 어느 시대에서든 부리런함의 갈망이 있었나 보다. 어려서부터 일찍 일어나는 새보다 늦게 일어나 새를 피하는 벌레가 되어야겠다 다짐해 보는 나로서는 이러한 선조들의 가르침은 버거울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나의 중고등학교의 힘듦의 반은 자비 없는 오전 6시 반 시작이었다. 컨디션과 날씨 등 아무런 고려 없이 일관되게 시작되어야 하는 하루는 나를 고통스럽게 했음이 틀림이 없다. 아침형 인간이 아닌 나에게는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꾸역꾸역 이른 아침 일어나는 삶을 살았다. 세상이 이른 새벽부터 하루를 살아내라 소리치는 곳 한가운데 서있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밤에도 대낮처럼 환한 세상에 살아도 일찍 일어나는 일은 부지런함을 넘어 바른 삶을 사는 것에 대한 대명사이니 늦게 일어난다는 일은 쉽사리 남에게 알릴 만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여기서 아이들은 7시 20분에 학교버스를 타고 등교를 한다. 한국에서는 이때쯤 기상하면 이른 아침의 시작이었다. 아이들을 보내고 아침을 잘 보내려 나름 노력을 해봤었다.
유튜브로 경제나 교육, 뉴스를 일일이 찾아보는 것도 며칠 하다 보면 매번 비슷한 것들뿐이고 지금도 독서는 종이책으로 보는 것을 선호하지 하지만 종이책을 구하기 어려운 이곳에서 노안이 오고 있는 나에게 오전부터 전자책을 보는 건 정말이지 쉽지 않은 일이다. 운동을 하자니 골프에는 영 관심이 없고 수영은 좋아하지만 어디에도 실내 수영장이 없기에 오전 수영은 얼음물이나 마찬가지라 햇빛에 따뜻해지길 기다려야 한다. TV에서 몇몇 연예인들이 배워 본 적도 없다는 그림을 붓질 몇 번에 화려한 작품 같은 것을 만들어내니 나에게도 혹시나 나도 모르던 재능을 찾을 수 있나 하는 마음에 태국까지 넘어가 물감을 사 오기도 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어서 왔지만 정말 아무것도 안 하려니 내 마음이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냐고 말하고 있었다. 남들과 다르다는 건 불안을 마주하는 일과 같다. 어느새 초조함은 불안을 만들고 그것은 또 불만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아무것도 안 하겠다 떠나온 나에게 매번 힘들지 괜찮냐 묻던 남편은 어느 날 “아무것도 안 하려면 늦잠부터 자야지.”라고 말했다. 응원과 이해 어딘가에서 나를 북돋아주는 말을 듣고서야 나의 하루를 저만치 밀어냈다. 그렇게 나의 시간을 찾았다.
나의 아침은 10시다. 다들 몸에 맞는 시간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세상과 동거인의 눈치에 아직 자신의 시간을 못 찾은 이들은 방학이나 휴가를 이용해서 자신만의 시간을 찾을 기회를 가져 보면 좋겠다.
조선시대 왕들의 기상 시간은 오전 5시라니 오전의 기준을 5시라고 해보자. 우리 옆집에 사는 미국인 외교관도 존경하는 인물인 워커홀릭 세종대왕은 이보다 2시간 이른 3시에 하루를 시작했다고 전해지지만 그 시간은 아침이라 언급하지 않도록 하겠다. 오전 7,8시는 매우 혼잡한 시간이다. 라오에서 퇴근시간의 교통 체증이 4시부터인걸 감안했을 때 시작 시간이 늦은 감이 있지만 이동수단이 많이 없는 라오스의 8시는 매우 분주하다. 오전 9시는 바른 느낌이다. 일터에 도착한 사람들은 본격적인 오전 업무를 시작했을 시간이다. 9시는 나에게 늦잠 잔 기분을 주지 못한다. 10시는 오전 범위에 들어간다. 대부분 호텔들 조식 시간이 10시까지인 것을 보면 내 주장에 큰 힘이 된다. 아침의 범주안에서 밥을 먹고 하루를 시작하는 공식적인 시간의 끝자락쯤 되겠다. 11시는 오전이라 하기에 애매한 느낌이다. 분명 오전이지만 눈 뜨고 부랴부랴 나가도 아침밥이라 불리기도 힘들뿐더러 곧 힘찬 오후의 시작인 12시가 바짝 붙어 자리 잡고 있다.
늦은 기상으로 힘들지 않게 간헐적 단식을 경험할 수 있다. 라오 음식뿐 아니라 태국, 서양음식들을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맛집이 곳곳에 있다 보니 부지런히 먹으러 다녔다.(약 60년간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고 태국과 베트남 사이에 있는 라오스는 맛있는 식당들이 매우 많이 있다. 다음 기회에 자세히 소개해보려 한다.) 그런데 라오스에 와서 열 시 기상을 한지 반년만에 약 5kg이 자연스럽게 빠진걸 보니 간헐적 단식이 다이어트에 좋다는 증명을 몸소 해보인 셈이다. 또한 채비를 마치고 나니 11시다. 식당이나 카페등 선택지가 많아지는 건 덤이다.
창밖으로 아직 아침의 기운을 머금은 햇빛이 비춘다. 벌떡 일어날 듯 개운하지만 침대에서 늦장을 부리다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간다. 가볍게 세수를 하고 꼼꼼하게 선크림을 바른다. 활기 넘치는 몸과는 다른 고르지 못한 얼굴톤과 칙칙한 입술에 색을 입혀 더욱 기분을 끌어올린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동네에 아무도 없는 한적함이 생경하게 느껴진다. 방학 맞은 학생인 듯 휴양지에 홀로 놀러 온 듯 차분하게 움직인다. 오늘 하루를 즐길 잔잔한 흥분을 마음에 안고 오전 10시, 책 한 권과 노트북을 들고 카페에 들어가 라테를 한잔 시키면 휴양지에서의 하루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