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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뱡인 Aug 12. 2023

나의 구속기 (9)

9. 가족의 의미

일단 급한 일은 낮동안 해결하고 언니와 동생이 함께 있으니 마음의 안정을 비교적 빨리 찾을 수 있었다. 아직 몇일 간의 휴가가 있으니 우리 남매와 심심치 않게 보내고픈 어린 마음이 일었다.


우선 공동 계좌에서 현금을 좀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그에게 전화를 걸어 몇백 불만 인출하겠다고 전했더니 그가 머뭇거리며 은행 잔고가 아마 생각한 거랑 다를 거란다. 당황한 나는 동생과 가까운 은행으로 달려가 잔고를 확인했고 또다시 내 안에는 큰 분노가 일었다. 월요일에 재빠르게 공동명의 Checking과 savings 계좌에서 정확히 반을 갈라 인출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내 기억에 한 4-5만 불, 적지도 많지도 않은 잔고였지만 그중 반을 빼가니 볼품없이 남아있는 그 잔고에 더욱더 어이가 없었다. 앞으로 나갈 공과금은 다 이 계좌에서 나가게 되어있는데 그가 반을 가져가 버리고 앞으로의 비용을 내가 다 떠안으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 이 현금은 대부분 한국에서 내가 가져온 현금이었으니 정확히 따지자면 이는 혼인 전 형성된 나의 개인 자산이었다. 이것은 분명 나와는 끝이 났다는 것을 입증하는 거구나라는 생각과 그렇다 한들 내가 없는 사이에 한마디 의논 없이 이렇게 현금의 반을 가져가다니 실망감과 분노가 일었다. 지금 돌아보면 모조리 다 빼가지 않은 것도 참 신사적인 것이었지만 그 당시로서는 이는 이혼 선언처럼 들렸다. 앞으로 우리의 운명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자산의 분리와 우리의 관계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이전처럼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당장 되돌려야겠다는 조바심이 들었다.


동생을 옆에 태우고 곧바로 차를 돌려 그가 묵고 있는 3분 거리에 있는 시누이집으로 달려갔다. 가서 그에게 전화해서 잠깐 나와서 현금만 돌려 달라고 곧바로 입금하겠다 했지만 그는 단번에 거절하고 나오지 않았다. 화가 난 나는 문 앞에서 초인종을 울렸고 대형견 두 마리가 짖기 시작했다. 시누이의 딸아이가 아직 3살밖에 되지 않았고 나도 매우 가까이 여기고 아끼는 아기였지만 그 아기가 깨서 울지도 모른다는 사실보다 그와의 재정문제를 일단 논의하는 것이 나에게는 중요한 문제였다. 대형견 두 마리가 짖어대니 정신이 없었지만 나에게는 큰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으니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자 그렇게 가까이 지내던 시누이와 그 남편이 창문을 열어 나에게 당장 본인들 거주지에서 꺼지지 않으면 경찰을 부르겠다고 소리치는 것이 아닌가. 개들은 짖어대고 방금 들은 소리가 맞는 소리인지 어안이 벙벙해 뭐라는 거야? 진심이야? 따위 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욕지거리를 섞어가며 뭐 하냐 당장 꺼져라 애기 깬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정신이 차려졌다. 그렇다 이들에게도 나는 그저 동생에게 폭력을 행사한 범죄자일 뿐이었다. 소란을 눈치챈 동생이 차에서 내려 나를 다시 이끌었고 울며 돌아서서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는 나는 이 일을 절대 잊지 않겠다. 이 경험은 다 값아주겠다 따위뿐이었다. 그들은 내가 울거나 말거나 잊거나 말거나 일말의 관심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저 나 자신에게 하는 다짐일 뿐인 그 말을 그리 되뇌며 돌아섰다.


그 후 몇일동안 그와 간간이 어쩔 수 없이 통화할 때마다 다투면서도 그 외의 시간은 언니와 동생과 비교적 평화적으로 보냈다. 언니와 동생과 같이 Aurora에 있는 프리미엄 아웃렛에 가서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저렴한 금액으로 Theory 정장을 구입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닌 기억이 난다. 언니와 동생은 나의 상황을 딱하게 여기면서 본인들이 해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며 안타까워했지만 난데없이 구치소에 갔다 와서 혼자 지내게 된 나의 입장에서는 우리 삼남매가 한 공간에 있을 수 있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 너무나 큰 힘이었다. 언니가 언제 부모님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해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 부분은 걱정 말라며 다독여주는 언니와 동생이 한없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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