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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뱡인 Aug 12. 2023

나의 구속기 (10)

10. 체포의 의미

우리 남매와의 일주일은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직장생활 2년 차나 20년 차나 피할 수 없는 일요병을 버티고 출근하니 쿨하게 퍼스널 데이로 볼일 보고 오라던 디렉터가 드디어 나왔냐는 투로 인사말을 건넸다. 그녀의 동유럽식 친밀함의 표현이었겠지만 익숙해지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해고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전부터 친구처럼 의지하던 동료 제이슨이 내가 나타난 것을 감지하고 내 큐비컬로 와서 별일 없냐는 인사를 하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눈물을 참으며 눈만 검벅이자 그는 일단 일하고 점심이나 먹자며 옆자리로 돌아갔다.


나와 6개월 차이밖에 나지 않지만 그는 참 어른스러웠다. 큰 키에 곱슬거리는 금발을 한 그는 평상 시엔 엄청나게 조용하면서 일도 참 빠릿빠릿 잘하지만 주말에는 맥주를 한없이 들이키며 끝없이 조크를 날리고 주변에 웃음이 끊이지 않는 이중 인격자(?)였다. 미국 회사라 한국식 회식은 많지 않았지만 나름 일리노이에서는 규모가 있는 기업 본사라 그런지 여기저기 회계법인이나 법무법인들이 접대를 많이 해주었고 팀빌딩을 위한 행사도 적잖게 있었다. 그때마다 그의 이중인격은 모두를 참 즐겁게 해 주었고 앞뒤 좌우로 꽉 막힌 남편 옆에서 청춘을 낭비하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자기 약혼자와 친구들이 모여 놀 때 나를 자주 초대해 주던 참 고마운 동료였다.


점심때가 되어 우리는 회사 바로 옆 몰로 갔다. 타 부서 동료들이 주로 가지 않는 조용한 비인기 베이글샵으로 간 우리는 앉자마자 난감했다. 나는 눈물이 터졌고 그는 늘 하던 대로 조용했다. 울먹이며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다며 내가 슬픈 이유를 구구절절 나열하는데 그는 안쓰러운 표정을 하면서도 체포되고 감금되는 일은 사실 여기서는 아주 흔한 경험이라며 아주 현실적으로 나를 안심시키려 했다. 나는 내 주위에서는 아무도 그런 경우를 못 봐서 모르겠다며 세상에서 고립된 듯한 기분을 설명하려는데 그가 왜 주위에 아무도 없냐며 자기가 있다는 것이 아닌가.


얼바나에서 일리노이 주립대학을 다니던 그는 4학년 할로윈 주말에 친구들과 시카고로 놀러 나왔고 친구 집에서 시끌벅적 파티를 하고선 집으로 운전해서 가는 어리석은 행동을 했단다. 바로 경찰에 연행되었고 Driving Under the Influence라는 미국에서는 아주 심각한 범죄로 입건되었고 새벽이 되어서야 큰 몸집에 야한 미니스커트를 입고 브리트니 스피어스 복장을 한 자기를 모친이 와서 데려갔다며 자기의 경험을 이야기해 주었다. 물론 그 기록으로 인해 취업과 이직에 어려움이 많았다는 점은 큰 위로를 상쇄시키는 현실이었지만 자기의 웃픈 비밀을 이야기해 주며 나를 다독이는 그 동료가 16년이 지난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얼마 후 내가 작성한 공동계좌 관리 동의서를 검토한 그는 내가 요청한 대로 서명을 하고 인출해 갔던 현금을 다시 입금하며 부부상담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그가 교회를 통해 찾은 상담사와 약속을 잡고 만났고 그 첫 상담은 참담한 패배였다. 그 상담사도 애초에 둘이 어떻게 만나서 왜 결혼까지 했냐는 막말을 할 정도로 우리는 같은 경험을 놓고도 서로 기억하는 바가 완전히 다르고 극명하게 맞지 않는 성격이었다. 내가 무슨 질문에 답을 하던 그는 내가 신앙인으로서 성경을 따르지 않는 언행을 하며 자기도 옳지 않은 행동을 하게 하고 성경이 용납하지 않는 이혼을 요구한다며 기승전성경의 논리로 나를 공격했다. 우리 둘의 언쟁은 멈출 줄 몰랐고 상담사가 포기 선언을 할 정도로 첫 상담은 좋지 못한 경험이었다. 그 상담사는 일단 둘 다 분노와 상처가 많은 듯하니 각자 상담을 통해 내면 치유를 하고 부부 상담을 하는 것이 어떻냐고 제안했다. 그로 인해 부부상담의 악몽에서 벗어날 줄 알았지만 그는 내가 부부상담을 거부하며 거짓 약속으로 자기 몫의 현금을 앗아간 악녀를 만들었다. 시간이 갈수록 이 사람과는 더 이상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명확해졌지만 앞으로가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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