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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뱡인 Aug 12. 2023

나의 구속기 (7)

7. 판가름

그렇게 변호사와의 짧은 미팅이 끝난 후 다시 구치장으로 옮겨졌고 또 앉아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다시 호출되어 어딘가로 따라갔고 드디어 법정 안으로 들어섰다.


옆문으로 들어간 나는 우선 영화나 텔레비전에서 보던 그 법정의 광경에 한번 기가 눌렸다. 그리고 정말 보고 싶지 않은 그의 얼굴과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멀찍이 방청석에 앉아있는 내 동생이 보였다. 다시 그를 향해 나의 적대감을 과감 없이 드러내 매섭게 노려보면서 잠시 만났었던 나의 변호사 옆에 섰다. 그 변호사가 나를 살짝 건드린다. 판사가 이미 내 이름 확인을 하려 했는데 못 들은 모양이다. 판사와 성명 확인 후 간단히 Yes를 몇 번 하고 그 자리에 섰다. 이후 절차에 따라 검사가 경찰 조서에 따른 범죄 정황과 사항을 설명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도 옆에서 그 상황을 설명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하지만 정확히 기억나는 것은 나도 모르게 아니라고 조용히 외치고 짧은 한숨을 쉬었던 장면이다. 상대편에 선 그들은 내가 위협적인 몽둥이로 그를 상당히 후려친 듯이 이야기했다. 속으로 진짜 그렇게 신나게 흠껏 두들겨 패기라도 했다면 덜 억울했을 걸 싶었고 너무나 속상했다. 어찌저찌 내 변호사는 침착하게 나는 CPA이며 이런 상황에 연루된 적이 없고 전과도 없다 설명하며 또 아마 곧 분리되어 지낼 것이며 뭐 그런 이야기도 했던 것 같다. 판사는 곧 케이스가 드랍되었다며 망치로 간단명료한 소리를 울렸고 그렇게 끝이 났다…


복잡 미묘한 감정이 북받쳤고 눈물이 쏟아졌다. 동생이 나를 안아 잠시 울게 두었다가 이끌어 나머지 처리와 소지품 수거를 위해 법정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간단한 처리가 있고 이후 동생과 주차장으로 향했다. 쭈뼛쭈뼛 따라오던 그와 주차장 건물에서 다시 한번 언쟁을 벌였다. 앞으로의 거처나 일단의 조치 등 의논할 것들이 많았지만 피곤한 심신에 감정이 북받쳐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기 어려웠다. 울며불며 일단 주차된 차에 와서 내가 운전하겠다며 운전석에 앉아 다시 흐느끼는데 동생이 가져온 전화가 울렸다. 큰누나라며 받아보라는데 그 상황에서 언니한테 무슨 이야기를 할까 싶어 안 받겠다니 동생이 영어로 뭐라 뭐라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언니가 지금 여기 오헤어 공항에 와있는데 택시 기사한테 집 주소를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언니가? 지금? 오헤어에? 왜? 어떻게? 내가 그렇게 한참이나 갇혀있었나?


집에 오는 동안 동생에게 어떻게 하고 있었는지 물으니 강아지 산책 후 집에 와서 내가 잡혀간 소식을 들었고 한동안 멍했지만 조용히 짐을 쌌단다. 한참 짐을 싸는데 그가 와서 나도 곧 집에 올 텐데 어디 갈 데도 없는 우리 둘이 나가지 말고 우선 자기가 3분 거리 누나 집으로 가겠다고 했단다. 간단한 짐만 싸서 일단 가 있을 것이고 경찰이 내일 아침에 법정으로 가라고 했다며 내일 아침에 만나자고 하며 나갔다고 한다. 미움과 원망이 가득했지만 적어도 그 얼굴을 마주하며 견디지 않아도 된다니 조용히 나가주신 그가 내심 고마웠다.


일단 씻고 누우니 잠이 쏟아졌다. 언니가 오는 건 보고 잠들고 싶었는데. 꿈인지 생신지 얼떨떨한 상태로 곧 언니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고 언니가 침대로 와서 같이 울다 웃으며 무언가를 이야기했던 것 같다. 내가 잡혀간 후 동생은 혼자 고민하다 우선 언니에게 전화해서 소식을 전했고 언니랑 동생은 부모님이 이 소식을 알게 되었을 때 달리 도움도 주지 못하면서 발만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 할 것이 눈에 훤해 우선 둘이서만 상황을 살피기로 했다고 한다.


언니는 경기도로 외근을 나가는 중에 전화를 받고 곧바로 차를 돌려 긴급휴가를 내고 집으로 돌아가서는 갑자기 학회가 잡혔다 둘러대며 시카고로 올 짐을 싸서 바로 인천공항으로 달렸단다. 영화에서나 보던 상황, 공항에 나타나 “지금 제일 빨리 가는 표로 하나 주세요”를 했더니 항공사 직원이 황당한 얼굴로 언니를 바라보더니 언니 여권을 보고 언니를 번갈아 보았다. 그러더니 내 이름을 대면서 그 애 언니 아니냐는 답이 돌아왔단다. 알고 보니 나와 같은 반도 여러 번 하면서 초중고를 같이 나온 조ㅎㅇ 이었다. 언니가 대강 급한 일로 나에게 가려한다니 그 아이가 컴퓨터를 보며 이것저것 두드리더니 빈 좌석이 있는데 어찌어찌해서 이 가격에 끊어줄 수 있다며 몇 달 미리 예약해야만 끊을 수 있는 가격에 리턴은 오픈으로 왕복표를 준 것이 아닌가. 혹시 언니가 급한 마음에 황당한 요금을 감수하고 달려온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일단 마음이 편해졌고 역시 사람이 마냥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이런 상황에도 이런 행운이 있을 수도 있다니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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