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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을 위한 목표(퀘스트)

<킹덤 컴: 딜리버런스 2>를 플레이하고 드는 생각

by 버터멜론

게임을 좋아하다 보니, 마음에 드는 게임이 생기면 엔딩을 볼 때까지 쭉 몰입해서 플레이하는 편입니다. 단순히 플레이 자체를 즐기는 것도 있지만, 왜 특정 게임은 유독 몰입이 잘 되는지를 생각해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게임 속 목표 설계나 리텐션 구조에 관심을 갖기도 합니다.

얼마 전 '킹덤 컴: 딜리버런스2(KCD2)'라는 게임을 엔딩까지 플레이하였습니다(플레이 타임을 살펴 보니 140시간이네요). 이 게임은 15세기 보헤미아(지금의 체코) 지역의 역사적 정세를 기반으로 한 1인칭 RPG로, 용과 마법이 난무하는 중세 판타지 게임이 아닌 사실적 고증을 바탕으로 제작된 게임입니다. 그렇다 보니 게임 플레이 전반에 여러 불편함들이 널려 있는데, 예를 들어 세이브 물약을 마시거나 내 침대에서 잠을 자야만 게임 저장이 가능하고, 필요한 무기나 물약은 직접 재료를 구해 만들어 사용하기도 합니다. 익숙하지 않은 게임 시스템임에도 불구하고 KCD2는 제게 굉장히 높은 몰입감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qQVBwSQbxXMPB8Mbbyf7Zw54ZwfTPEDrJgSzcEW5_pnNwMV2T_FleVs-gp74n2N5t0IFaVMtC9C8xN70KjNE3w.webp 킹덤 컴: 딜리버런스2


그 이유로, KCD2에서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게임 내에서 제공하는 목표들이 전혀 억지스럽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RPG 장르에서 흔히 보이는 "가죽 10개를 모아오세요"와 같은 과제는 거의 없었고, 그 대신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이 행동이 나의 이야기 안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유저가 쉽게 납득할 수 있도록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결혼식 참석에 필요한 옷을 구하는 퀘스트에서 유저는 NPC의 도움을 받거나, 돈을 벌어 사거나, 훔치거나, 심지어 누군가를 죽여 빼앗는 등의 다양한 선택이 가능합니다. 시스템이 정해준 목표가 아닌, 세계관 내에서 내가 선택하고 수행하는, 결과에 책임을 지는 내 일로 느끼게끔 모든 게임이 흘러갑니다.

KCD2_Dancing_Best_dialogue.png?width=1280 헨리의 선택(곧 나의 선택)에 따라 결과가 바뀌게 됩니다. / 출처 IGN



이렇게, 플레이어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게 되는 구조로 게임이 설계되어 있다는 점은 몰입에 있어 매우 주목할 만한 포인트 같습니다. '선택이라는 행위'는 결과적으로 유저가 게임에 몰입하기 위해 필요한 '플레이 동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죠. A를 하면 B를 주는 단순한 로직이 아닌, ‘이렇게 하는 게 맞을까?’라고 유저가 한 번 더 고민할 수 있게 하면서, 스스로의 동기를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열쇠를 플레이어의 손에 쥐어준 것이죠.

다른 대부분의 서비스에서 '리텐션'을 굉장히 중요한 지표로 삼고 있는 만큼 게임이 아닌 일반적인 서비스들에서도 접속 동기를 끌어올리기 위한(리텐션을 높이기 위한) 장치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출석 체크나 할인 쿠폰 같은 기능들이 대표적인데, 개인에게 특정한 목표를 부여하고 유저의 참여를 유도하는 익숙한 이벤트입니다. 물론 이러한 방법들도 일정 수준의 반복 접속을 유도하는 데에는 효과가 있을 수 있습니다만 게임처럼 자발적인 몰입을 유도하려면, 목표 자체에 있어 ‘자율성’을 느껴지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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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는 행위에서도, '당장은 필요 없지만 그냥 갖고 싶은 것', '정기적으로 구매하고 있는 것', '선물하기 좋은 것' 등의 구매 맥락의 카테고리를 추가해 둔다면 구매 동기를 강력하게 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했습니다.

정리하면, 게임에서 맥락에 맞는 목표(퀘스트)가 플레이 몰입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 처럼, 다른 서비스들에서도 유저의 이용 맥락을 이해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유저가 직접 선택/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서비스에서 마련해 준다면 지표(리텐션) 개선에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단순히 "무엇을 하세요"가 아니라, "왜 하고 싶은지"를 이해하고 사용자 스스로 동기를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향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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