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 업계에서 10년 넘게 일을 하다 보면 다양한 유학 관련 행사들을 경험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런 자리에서 가장 자주 들었던 질문 중 하나가 바로 이거다. "호주는 인종차별이 심한 나라라고 들었는데, 진짜야?"
누군가는 큰 비용을 들여서 호주에 가는 걸 수도 있고, 누군가는 꿈을 찾아서 떠나는 걸 수도 있다. 이유는 각자 다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낯선 나라로 간다는 게 결코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데 그렇게 큰 결심을 하고 가려는 곳이 인종차별이 심한 나라라고 하면, "굳이 그런 곳까지 가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호주에도 인종차별이 심했던 시기가 분명히 있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백호주의(White Australia Policy)' 때문이다. 이건 1901년부터 1973년까지 존재했던 호주의 이민 정책으로, 백인이 아닌 사람들의 이민을 제한하는 법이었다.
1800년대 말, 멜번에서 금광이 발견되면서 골드러시가 시작됐고, 많은 중국인들이 호주로 넘어왔다. 중국뿐만 아니라 태평양 지역에서도 노동력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러다 보니 경쟁이 치열해졌고, 호주 백인들은 수익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결국 백인들만의 이익을 보호하고자 비백인들에게는 이민의 문턱을 높여버린 것이다.
물론 겉으로는 '언어 능력' 같은 기준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40여 개 언어 중 심사관 마음대로 언어를 지정해 면접을 보게 하던 제도였다. 사실상 이민을 막기 위한 장치였던 셈이다. 반면 영어권 사람들에겐 영어로만 심사가 진행됐고, 백인들은 손쉽게 이민을 할 수 있었다.
호주 사람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이었겠지만, 이민자들 입장에서는 본격적인 차별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백호주의가 무너지기 시작한 계기는 동양인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호주 북부의 다윈(Darwin)을 폭격하면서 호주는 큰 위기를 맞았고, 당시 인구가 약 760만 명에 불과했던 호주는 인력 부족 문제에 직면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호주는 국가의 안보와 성장을 위해선 인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고, 점차 백호주의를 폐지하며 세계 각국에서 이민자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물론 법적으로 차별은 없애더라도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지금도 호주의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모든 교육기관에서는 첫날 오리엔테이션에서 인종차별은 절대 해선 안 되는 일이며, 만약 차별을 느꼈다면 주저하지 말고 바로 이야기하라고 교육하고 있다.
인종차별이라는 건 상황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어떤 사람은 그냥 지나치는 말을 다른 누군가는 큰 상처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차별하고 있다는 걸 인식하지 못한 채 말하거나 행동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영어로 인한 오해다. 예를 들어 식당에서 종업원이 손님에게 고수를 넣을지 물어보는데, 손님이 '코리안더(coriander)'라는 단어를 몰라 대답을 못하면, 종업원은 주문을 확정 못 하고 결국 자기 마음대로 주문을 넣게 된다. 손님은 자신이 원치 않는 재료가 들어간 걸 보고 불쾌해지고, 혹시 자신이 아시아인이라서 그런 건 아닌가 하고 오해할 수 있다. 단순한 언어 차이에서 비롯된 일이 인종차별로 느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사실 인간은 무리를 지어 살아가고, 그 안에서 차별이 생기는 건 어느 사회든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 무리 안에 있을 땐 잘 모른다. 하지만 밖에서 바라보면 보이기 시작한다.
예전 한국 방송을 보면 시골 어르신들이 외국인을 보고 '양놈', '코쟁이', '양키'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땐 그냥 이름을 모르니 그렇게 불렀던 거고, 본인들은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거다. 사회 분위기 자체가 그랬던 시절이다.
한국은 흔히 단일민족 국가라고 불린다. 나 역시 어릴 적 학교에서 '우리는 단일민족'이라고 배웠고, 그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그 단일민족에 포함되지 못하면 외부자가 된다.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게 된다. 나도 한국에 있을 때는 이런 걸 잘 몰랐는데, 해외에 나와 살면서 조금씩 알게 됐다.
호주에서 살다 보면 나도 가끔 인종차별을 당할 때가 있다. 대부분은 10대 청소년들이 장난처럼 다가와 시비를 거는 경우다. 그런데 이건 꼭 인종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냥 누구에게든 시비를 거는 애들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무대응이 정답이다. 관심을 주면 더 심해진다.
이런 걸 제외하면 딱히 인종차별이라고 느꼈던 경험은 많지 않았다. 물론 내가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고, 상대가 조심스럽게 배려해준 걸 수도 있다. 영어가 서툴다면 미리 말해두는 게 좋다. 그러면 상대도 배려해주려고 하고, 불필요한 오해도 줄일 수 있다.
가끔은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했다가 나중에 보니 아니었던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면 내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아침마다 등원시키러 가면 엄마들이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는데, 호주 엄마들은 호주 엄마들끼리, 아시아 엄마들은 아시아 엄마들끼리 모여 있는 모습이 많았다.
처음엔 '왜 이렇게 나뉘어 있지?' 하고 나도 모르게 거리감을 느꼈다. 그런데 어느 날 호주 엄마들끼리 나누는 대화를 듣고 그 이유를 알게 됐다. 본인이 어릴 적 다녔던 유치원 얘기나, 집 리노베이션 관련 얘기 등,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이 많은 사람들끼리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거다.
나처럼 이민 온 사람들은 그런 경험이 없으니 대화에 끼어들기 어렵고, 결국 서로 다른 배경에서 오는 거리감이 생긴다. 그건 인종차별이라기보다는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어쩔 수 없는 결과다.
적어도 호주는 인종차별이 사회 전체에 만연한 나라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한국 드라마나 음악이 워낙 인기가 많아지면서, 한국인에 대한 인식도 훨씬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오히려 친근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아졌고, 문화적인 거리감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결국 인종차별이라는 것도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고위직일수록 차별이 심하다는 얘기도 있지만, 주변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실력과 태도로 인정받는 사람들이 많고, 예전보다 훨씬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리더 역할을 맡는 모습도 종종 보인다.
인종이라는 벽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예전보다는 훨씬 낮아졌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태도가 그 벽을 더 허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