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을 떠나 살아보다, 미국 텍사스행

by 김혜진






회사를 한참 다니던 어느 날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몹시도 평범한 어느 날이다. 그날은, 어제와 입은 옷만 다를 뿐 뭐 하나 달라진 것 없던 전날과 판박이인 오늘이기도 하다. 24시간 전과 다른 거라곤, 어떤 생각 하나가 훅하고 아주 거세게 전두엽에서 출발해 내 심장으로 떠밀려왔다는 것. 이틀 삼일 사일을 그대로 머물더니, 결국 한 달이 지나도록 그대로 머물던 그 생각은 결국 나를, 내 몸을 멀리 떠나보내게 만들었다.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에서
한번 즘은 살아보고 싶다.






생각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맘껏 하던 삼십대였기는 하나, 어디 부산여행을 가는 것도 아니고 한 나라를 뛰어넘는 일을 저지르기엔 생각의 생각이 많이 필요하기도 했다. 계획이랄 것도 없이 그저 영어권. 대표 격인 미국으로 가자, 였다. 최소한 체크리스트는 만들자 싶어 하나하나 적다 보니 넘어야 할 큰 산은 세 개였다. 부수적인 나머지들은 어떻게든 되겠지 했다.








첫 번째는 나 자신이다.

여자나이 서른넷 곧 중반이다. 아니 이미 중반에 들어서있다. 이 나이에? 간다고? 가고 싶다고 간다고? 그래도 되는가? 나 이래도 되는가? 묻고 묻고 또 물으며 스스로에게 자문했다. 그리고 한 달여 고민 후 내린 결론은 '된다' 그래도 된다. 내가 허락한다. 오케이, 이걸로 끝. 첫 번째 산은 의외로 수월하게 넘겼다.


다음, 두 번째 관문이다. 프로젝트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매일이 야근이고 회식인 곳. 회사다. 회사에 어떻게 말을 한담. 고민 고민했으나, 사직이 답이다. 걱정스러운 건 반년이든 일 년이든 살아보고서 돌아온 이후다. 새로운 직장 찾기 과연 문제없을까? 나이가 나이인데 어디 받아주는 데가 있을까? 어려울 텐데. 어렵고말고. 어쩌지. 월급이 있어야 생활을 할 터인데. 결혼도 안 한 처자가 돈도 못 벌면 안 되는데. 머리를 굴리고 굴린 끝에 나온 혼자만의 결론은 휴직이었다. 먼저 사내규정을 살펴본 뒤 출산휴직 이외에도 일반인의 휴직이 가능한지를 알아보는 거다. 그렇게 깨알 같은 사칙들을 살펴본 끝에 아주 특별한 서너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는 불가능함을 알았다. 미뤄 짐작했기에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결론적으로 휴직은 불가함을 알았다. 괜찮다. 염두에 둔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부모님이다. 뭐라고 설득할까. 맘먹은 대로, 하고자 하는 대로 말하면 인정해 주실지도 몰라. 물론 정반대의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 그래도 충분히 이야기드릴 수 있지 싶다. 반반의 확률이라면 해 보는 거다. 부딪히는 게 맞다.






체크리스트를 적어보니 움직일 때를 봐야 한다 싶었다. 최적의 타이밍을 노려봐야 한다. 그전에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 회사와 부모님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구글에 접속해 United States of America 미국 지도를 유심히 바라봤다. 내 눈앞에 미국이 펼쳐진 순간이다.


엘에이부터 유타, 텍사스, 시카고, 플로리다 그리고 뉴욕 맨해튼까지. 눈동자 바쁘게 둘러보니 어라. 갈 곳이 추려진다. 엘에이 한인이 너무 많아 탈락. 유타 시골느낌이라 탈락. 텍사스 카우보이? 잘 모르니 스킵. 시카고 겨울 엄청 춥다들었음 탈락. 플로리다 휴양지 느낌이라 탈락. 뉴욕, 어릴 적 친구가 이민을 가서 현재까지도 살고 있다. 항상 오라고 했는데 이참에 가봐? 흠... 아직은 고민이 좀 더 필요하다.



순전 감으로, 추리고 추리다 보니 남은 곳은 두 곳뿐이다. 텍사스 그리고 뉴욕. 비교해보자 싶었다.



서울대출신 텍사스대학에서 MBA를 수료한 동갑내기 동료가 옆팀에 있었기에 다가가 물었다. 텍사스 살만해? 한마디 툭 던졌더니 돌아온 대답이 10분이다. 한 마디, 한 단어로만 답해보라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이란다. 환경적으로도 너무 좋은 곳이라며, 부드러운 바비큐 생각난다며, 텍사스 풋볼 얘기하다 맛집 얘기하다... 옛 추억 모드에 푹 빠진다. 좋다, 살고 온 사람 말 믿어본다.


다음은 뉴욕. 친구가 있는 곳에 가게 되면 혹여라도 의지할까 봐 망설여진다. 게다 한인도 많을 듯하고 너무 대도시인 것도 맘에 걸린다. 뉴욕은 차선책으로 생각해 두자, 싶다.




살아보고픈 도시를 수면 위로 올리고 보니, 살 집도 궁금해진다. 회사에는 여전히 사직통보도 안 한 상태인데 나는 인터넷 검색팀이랑 똘똘 뭉친 느낌이다. 살 집이라, 갑자기 막막하다. 네이버 그리고 다음에서 오스틴(텍사스 대학이 위치한 도시) 검색을 해봐도 딱히 정보랄게 없다. 일본에 살던 때 이용하던 믹시 mixi - 우리나라의 네이버카페와 같은 네트워크 기반의 사이트 - 믹시에 오랜만에 접속해서 오스틴지역 커뮤니티에 가입하고 둘러보았다. 그리고 찾았다.


오스틴 현지에 살고 있는 일본 유학생들의 모임이다. 바로 대화를 시도했고, 그중 몇 명이 대답을 해온다. '유학으로 단기간 1년이라면 여기 여기 그리고 이곳을 추천한다.' 하며 친절하고 상세하게 답해온다. 진심 아리가또 순간이다. 어학연수기간 내가 머물 곳, 살 곳이 준비되는 순간이다.








다음으로는 비용이다. 예상 버짓을 계산해 봤다.

학비와 집세, 생활비, 기타 비용들 12달간 = 합계....$! 집세까지 더하니 예상외의 금액이 나오긴 한다. 물론 최대한 절약할 예정이나, 아르바이트는 하고 싶지가 않다. 평생 다할 아르바이트는 일본유학시절로 충분하다,라고 생각했기에 이번 여정에서는 공부와 여행만을 하련다. 일단 모아둔 돈으로 충당하겠다.



그렇다면 떠나는 시기는 언제가 좋을까.

봄 학기 시작으로 맞추자. 새로운 출발은 역시 파릇파릇한 봄이 제격이지 말이다. 다행히 맡고 있는 라이선스계약도 마무리가 될 즈음이다. 좋다, 하던 일은 마무리 짓고 가자. 부모님께는 모든 준비를 마친 후 가장 마지막에 말씀드리자 싶었다.




계획은 모두 끝났다. 준비 시간도 이 정도면 괜찮다. 즐기자, 떠날 때까지 더 일하고 더 놀자. 그렇게 미국 갈 채비를 혼자서 준비해 두고 움직여가며 서울에서의 남은 삼 개월을 성실히 몰두하며, 남몰래 영어학원도 다니며 회화 벼락치기를 시작했다.




1월 말이던가, 2월 초였던가? 회사 인사팀에 (이미 파악해 둔) 휴직에 대한 문의를 했다. 돌아온 대답은 어렵다. 안된다였다. 예상했던 바였기에 타격은 크지 않다. 곧바로 소속팀에 그만두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랍니까. 설마 했는데 회사에서 특별 휴직처리를 해 주겠다는 거다. 단 일 년은 어렵고 6개월이 최대치라고 한다.


오우. 맘마미아!


그렇게 최종적으로, 휴직 승인을 받았지 말이다. 기뻐서 앗싸 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돌아올 곳을 만들어두는 것만 같아서 어딘가 찜찜하기도 했다.








어찌 되었건 회사도 클리어. 마지막으로 부모님과의 면담 차례가 왔다. 엄마와 아빠에게 말을 꺼내야 한다. 드릴 말씀이 있다 하며 얘기 좀 하자 했다. 엄마는 내심, 남자얘기인가 하고 기대에 차있다(엄마미안). 아빠도 의심의 눈초리를 숨기지 못하시며 긴장의 눈빛으로 날 바라본다.




"회사에서, "


"왜. 잘렸어? 너를?"


"아냐, 엄마. 그런 거 아냐. 실은 회사에서, 요즘 영어를 쓸 일이 너무 많은데. 내가 영어가 좀 안되는지라 힘들 때가 상당히 많아. 그리고 곧 팀장도 되고 해야 하는데 해외부서에서 영어도 못하는 팀장은 좀 그렇잖아. 바이어들 만날 때마다 통역 데리고 다니는 것도 그렇고. 그래서, "


"팀장 해준데? 근데 영어 꼭 해야 해? 일본말 잘하잖아."


"직책이 올라가다 보니깐, 영어 사용할 일이 계속 생기더라고. 해외랑 일 할 때마다 그래서 어려운 게 많아. 기도 죽고. 일일이 부하직원한테 물어야 하고. 그것보다도, 나중 생각을 해보면 영어는 어쩔 수 없이 필수겠더라고. 그래서, 말인데"


"영어가 그렇게나 중요하게 작용해?"


"그렇지. 해외부서 소속인데 당연하지. 영어권 진출이 많아지고 앞으로도 더 늘어날 거라서 필요성을 많이 느끼고 있어. 한국에서만 공부하는 영어로는 안 되겠더라고. 회사 일 때문에 시간이 너무 안 나서. 그래서, (뜸을 잠시 들였다) 미국 가서 한 6개월 정도 현지에서 바짝 공부를 좀 하고 올까 하고"


"회사는? 어떡하려고? 그만두고? 가라 해? 다녀오라 해?"


"응. 휴직받아 줬어. 다녀오라네. 대신 그간 월급은 없고."




휴직기간에는 월급이 없다는 말에 실망인 엄마, 그리고 심각한 표정의 아빠는 생각을 좀 더 해보자. 하신다. (직감적으로 이 시그널은 가능성이다!)



그로부터,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고 부모님도 내 의견을 최대한 수용해 주셨기에 그 길로 바로 텍사스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왕복이 아닌 편도 티켓이다.






(만)서른셋 봄, 내 생애 두 번째로 부모님 곁을 떠나 타지에서 살아보기를 시작한다. 스물셋 이후 십 년 만이다. 열두 시간을 날아서 아는 이 하나 없는 미국까지 가는 건데도 지난날 이미 경험을 해 봐서인지 두려움은 없다. 새로움에 대한 기분 좋은 긴장감만이 한가득이다.



텍사스 오스틴은, 듣던 대로 굉장히 멋진 곳이었다. 그곳에서 보낸 일 년은 나의 삼십 대 경험 중 단연 최고였다(회사에선 결국 추가 6개월의 휴직까지 허락해 줬다). 그리고 미국에서 친구 따라 호기심으로 시작한 운동을 계기로, 그로부터 4년 후 지금의 한 남자를 만나게 되었기에 우여곡절 속의 먼 나라 이웃나라 미국행은 나에게 엄청난 행운으로 다가온 결과물이기도 하다.



지금 몇 살이든, 스무 살이 넘은 성인이 된 이상 원하는 곳이 있거든 한 번쯤은 떠나보자. 부모님 곁을 떠나보자. 무거운 몸 겨우 이끌고 가는 쳇바퀴 도는 편안한 일상에서 멀어져 보자. 한걸음만 물러나보자. 나를 온전히 나로서 대해보는 것이다. 독립을 하고 경험을 해 보는 것. 부딪히고 쓰러지고 뜨거운 눈물이 흘러 펑펑 울더라도, 넘어져 아파하며 외롭더라도 해보자.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해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가 날 더 사랑해 주자!





내가 날 사랑하게 되면, 나이가 들어감에도 나이 듦에 떠밀려 결혼하려 하지 않는다. 불안해하며 누군가를 만나는 일도 없다. 성급한 판단도 하지 않는다.


나를 사랑하게 되면, 내 주관. 내 자아가 채워진다. 사람들도 만나보고, 이 일 저 일도 하면서 나는 이런 게 좋은 사람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나만의 정체성을 내가 먼저 알아차리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떤 사람이 좋고 나와 맞는지 또 사람 겉보다 무엇을 더 중요시 봐야 하는지 차츰 알게 된다. 내가 나를 사랑할수록 다른 사람에게 포용적이고 관용적이고 관대해짐을 새삼 알게 될 것이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짐을 느끼게 된다.



서른 중반이 되기 얼마 전인 그때. 텍사스행을 택한 이유를 한참이 지난 지금 다시금 되돌아 생각해 보니, 어쩌면 나는 나를 참 좋아했었나 보다. 당당하려 했고 자신 있고 싶었다. 내 인생을 즐기고픈 마음이 가득이었지 싶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미국을 다녀온 후 다시 쳇바퀴 도는 인생 속으로 들어갔지만 주변을 보는 눈이나, 마음가짐이 꽤나 달라졌던 것 같다. 좀 더 내 인생에 관대해지고 느긋 해졌다 할까.


딱 일 년이었던 그 시간은 언제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무모했지만) 나의 아주 잘한 일 중 하나'가 되었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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