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적인 가장 보통의 사람
부랴부랴 뛰어도 열 시 정각이다. 일분 이분 그러다 버스 한번 놓치면 10분. 늦잠을 잔 것도 아닌데 일주일에 서너 번은 매번 지각이다.
좋지 않다. 출근이 빠듯하다 보니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탕비실 왔다 갔다에, 화장실 왔다 갔다에. 오자마자 제일 바쁘다. 자리에 앉음과 동시에 해외 각지에서 도착한 이메일과 개발실에서 밀려온 연락들을 체크만 하는데도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난다. 그러다 오전회의 시간이다. 회의에 다녀오면 점심시간이다. 아침에 뛰어선지 밥맛도 너무 좋다. 뒤이어 커피를 한잔하고 회사 주변을 잠시 걷는다. 건물에 들어서니 엘리베이터 대기줄이 엄청나다.
오후 업무가 시작된다. 우체국 직원처럼 우편물을, 이메일을 분리한다. 메일을 읽고 메일을 보내고, 첨부된 파일들을 정리하고 번역한다. 일본에서 도착한 기획서가 백장이 넘는다. 오늘은 야근임을 직감하며 개발팀과 회의를 잡는다. 회의준비를 위해서 리서치를 시작한다. 오늘 야근은 심야택시 시간까지 갈 듯하다.
어김없는 다음날이 왔다. 무거운 몸을 일으키고 눈을 뜨니 새벽도 아니고 아침도 아니다. 애매모호한 시간이다. 그다지 허기진 느낌도 없고 해서 아침은 건너뛰기로 한다. 전철역에서 회사까지는 빠른 걸음으로 도보 12분 남짓한 거리다. 뚜벅뚜벅 걸어갈지 판교역 앞에서 버스를 타고 갈지 어제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시간을 보니 출근시간까지 아직 여유롭고 아침공기도 유난히 좋다. 미세먼지 없는 가을바람이 분다. 이 바람 타고 천천히 걸어가자, 싶어 뚜벅걸음 걷던 중 모닝커피 생각이 간절하다. 롤링핀 스콘과 커피는 그즈음 가장 즐겨 찾는 메뉴였다.
카페에 앉아서 창 밖 지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데 모두들 걸음걸이가 재빠르다. 커피 한 모금 마시며 지나쳐가는 얼굴들을 바라봤다. 옷맵시는 깔끔한데 얼굴엔 표정이 없다. 너 나 할 것 없이 남녀 할 것 없이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이나 한 듯 통일된 무표정이다. 남은 커피를 입속에 털어내듯 마시고 밖으로 나왔다. 무표정 인파 속으로 회색그림자처럼 들어간다.
표정 없는 나. 걷고 걷다 계속해 걷다 보니 한 가지 생각이 서서히 떠올랐다.
어차피 다니는 회사. 직장. 뭔가 좀 더 활기찰 순 없을까. 특히 아침. 만물의 시작, 하루의 시작이라는 신성한 아침인데 페이크 아닌 진짜 굿모닝을 하고 싶다. 회사까지 터벅터벅 걸어가며 혼자만의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얼마 뒤 그 생각을 실전으로 옮겨보자 하며, 수많은 경우수를 생각하게 되었고 결국엔 다짐까지 했다.
지각이 몸에 밴 하루시작을 하던 나. 멀티작업을 하며 아침부터 저녁 아니 밤까지도 매일같이 바쁘던 나. 이른 아침 카페에 앉아 홀로 쓴 커피를 마시던 이날 아침을 계기로 모닝루틴을, 하루의 습관을 이제는 좀 바꾸자, 하고 확고해졌다. 누군들 알았으랴, 그 잠깐의 커피 한잔과 십분 동안의 걷기가 부지런함의 계기가 될 줄.
하루 중 평균 12시간을 너끈히 보내는 회사. 업무시간을 조금 줄일 필요가 있었다. 줄이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뭘까하고 생각해 봤다. 회의하는 시간을 줄이면 좋은데. 이메일 체크하는 시간도 많이 들어가는데. 관계를 위한 이유로, 카페테리아에서 보내는 시간도 적지 않고, 내 점심시간을 단축할까. 일을 더 효율적으로 하고, 집중하려면? 더 어떻게? 더 무엇을 하지?
그러다, 든 생각 하나. 무엇을 하기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기였다.
컴퓨터 전원 끄기. 그리고 퇴근. 최대한 퇴근시간에 맞춰보자. 단순하기 그지없는 생각이다. 그런데, 이게 먹혔다. 주변에서 상당한 눈치를 주기도 했지만, 그냥 했다. 퇴근. 대신 가장 중요하게 처리해야 하는 것들을 먼저 했고, 오늘해도 내일해도 되는 우선순위가 높지 않은 일들은 쳐내거나 마감일자를 정해두었다.
비워야 시간이 난다.
시간을 내기 위해서는 비워야 한다.
비울 때는 과감히 비워줘야 한다.
시간이 흐르니, 내 방법은 통했고 퇴근 후 확보된 개인시간은 운동을 하는데에 사용했다. 집에 일찍 가면 (그렇다 해도 8시나 9시였지만) 한강에서 밤조깅을 하고, 새벽잠만 자던 습관도 바뀌어 12시에는 잠자리에 들어 숙면도 취했다.
그렇다고 아침기상에 몸이 가벼울 새가 없었다. 새벽 테니스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6시에는 눈을 떠야 했고 레슨을 가야 했다. 레슨을 마치자마자 집으로 다시 와서 씻고 화장하고 아침까지 다 챙겨 먹고선 출근을 했다. 다행인 건, 출근하자마자 뇌를 활성화시키는 로딩타임이 별도로 필요치 않았다. 이미 이른 아침부터 깨어있던지라 사무실자리에 앉자마자 일처리 속도가 빨라졌다. 지나치게 활기찰 수밖에 없었다.
어떤 한 동료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미국에서 온 교포인 줄 알았다고...!
매일같이 뛰고, 숨 헐떡이며 회사에 도착하던 일상에서 출근 전 커피 한잔을 즐기다니. 정작 본인조차도 상상 못 한 여윳시간을 보내곤 했다.
다만 그때를 생각하면 한 가지 못내 아쉬운 것이 하나 있다. 매일 아침 그 시간에 책을 읽었더라면 어땠을까. 책을 읽고 매일같이 글을 썼더라면 어땠을까. 내 정체성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하고 생각했더라면. 아마도 그랬더라면 성공이라는 단어 해석을 조금 더 폭넓게 할 수 있었을 텐데 싶다.
그즈음의 나는, 삼십 대의 나는 책을 읽는다는 폼만 잡았던 게 아닌가 싶다. 가방 안에 피터드러커 책은 한 권쯤 갖고 다녔으나 그저 책의 처음만 읽다 말았고, 어쩌다 읽었다한들 아하 그렇구나. 그런 거구나. 하며 거기서 끝이었던 듯하다. 그다음을 전혀 몰랐다. 그저 읽었다에서 책의 수명이 끝나는 줄 알았다. 거기서 책 읽음이 마무리되는 줄 알았다. 아무도 그다음을 알려주지 않아서 몰랐다. 깨닫지조차 못했다. 그땐 그랬다.
바람 좋던 그 아침. 그저 잠깐 멈춰서 커피를 마셨고, 생각했고, 길을 걷었다. 그리고 그 날이후 지각이 빈번하던 나에서, 지각을 최대한 멀리하고자 하는 나로 변해갔다. 스스로를 위한 시간활용법을 알게 되었고, 어느새 취미부자가 되었으며, 나름 건강한 삼십 대를 보낼 수 있었다.
어제와 같은 오늘, 매일이 같은 일상 속에서 하루의 시작이 무표정인지 어떠한지 생각해 보자. 지금 이 순간을 십 년이 지난 후라 생각하고, 침묵 속에서 오늘의 나를 한번 바라보자. 오늘도 무표정으로 하루를 보낼 것인지 무엇 하나라도 변화하고자 할 것인지,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오늘의 나에게 말을 건네보자.
얼마 전 일요일 오전 열 시. 강남에 위치한 욕망의 북카페라는 곳엘 다녀왔다. 잔잔한 분위기 속에서 한 권의 책을 읽다가 A5 사이즈의 생각노트를 꺼내 몇 가지 적어 보았다. 노트에 적은 메모는 이랬다.
10년 후 나에게 무슨 말을 해줄까?
10년 전의 나에게는 무슨 말을 해줄까?
10년 전의 나에게 해 주고픈 말 그 중 두 가지를 여기에 옮겨본다.
첫 번째로,
마음을 챙기고 생각에 매혹되지 않도록 해라. 자기만족에만 그치는 행동을 하지 마라. 자기만족보다 더 큰 성취로 확장이 될 수 있는지에 집중해라.
두 번째로,
코치 그리고 멘토를 찾아라. 특정인이 없다면, 책이다. 책을 멘토로 삼아라. 그리고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공해 줄 수 있는 훈련코치를 찾아라.
삼십 대의 나는, 나의 정체성과 사회라는 혼란 속에서 보냈던 듯하다. 그러다 내가 하는 생각이 옳다고 고집을 부렸던 것 같다. 내가 아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전부라 믿었다. 지식이 얕음을 몰랐던 듯하다. 삼십 대의 빠지기 쉬운 유혹인 평균적인 사람. 그저 평균적인 사람 · 삶을 당연하다 생각했지 싶다. 서른에 못하는 일은 마흔에도 하지 못함을 몰랐다. 더 대담해지고 평균을 넘어서는 방법을 알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또 어떤 내가 되어있을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마흔이 훌쩍 넘은 나는 생각한다.
마흔에 못하는 일은 열의 다섯 배인 쉰에도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하자. 행동하자, 움직이자 더 생각하고 더 도전하자. 그렇다고 성급해할 필요는 없다. 조바심을 낼 필요도 없다. 공격적인 계획을 짜되 꾸준히는 하자. 수많은 나의 멘토, 책들이 말한다.
성공은 결국,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가져간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