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 재판장님과 마주하다

판결하는 아들 재판받는 엄마

by 김혜진




엄마. 우리 저녁에 재판 좀 하자





일곱 살 아들이 아침 등원 준비 중에 긴급 제안을 합니다. 오늘 저녁! 재판이 필요하다고요. 재판을 하자고요. 거실로 모이라고 말입니다.



재판? 무슨 재판, 하고 물었더니 돌아온 아이의 대답에 잠시 대꾸할 말을 못 찾고 '어 그래. 알겠다. 그러자.' 했네요. 그런데 무슨 재판인지 그리고 누구를 재판하려는 건지를 확인차 물어봤더니, 오늘 저녁 있을 예정인 재판의 피고인은 다름 아닌 '엄마'인 저라는 거예요.



이제껏 살면서 새로 산 자전거 열흘 만에 도둑맞아 파출소에 신고하러 간 것 외엔 경찰복 입은 분들과 마주할 일이 단 한 번 없을뿐더러, 신호등도 분명코 초록불에만 건너는 모범적인 서울시민 이 건만. 아니 내가 왜? 엄마가 왜? 억울해서 다시 확인하며 물어봤어요.



아들이 주체하는 '거실 재판소'에 가야 할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합니다.



재판 안건 : 엄마의 혼내는 말

고발 내용 :
1. 엄마가 혼내는 말을 해서 어린이를 울게 만들었음
2. 엄마가 어떻게 했는지 밝혀야 함



그리고, 각자의 스케줄이 끝나고 오후가 되었고 드디어 어두컴컴 저녁이 되었습니다. 아들이 잊지 않고 말합니다.



"엄마. 재판하자."


"좋아."



떳떳한 엄마도 당당히 대답했습니다. 미룰 것 없이 바로 하자 했지요. 갑자기 아들이 어린이집에서 받아온 판사복 조끼를 입고 오겠다 합니다. 오늘의 재판 판사님은 아들입니다. 살짝 떨려오는군요. 재판장님과 인사를 나누고 곧바로 피고인의 변론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엄마는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재판장님, 억울합니다. 저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재판에 오게 되었습니다."


"오늘 아침. 엄마는 아들에게 혼내는 말을 했습니다. 아이에게는 좋은 말을 쓰세요!"


"오늘 아침에 큰 소리를 한 이유는, 양치하라고 2번이나 말했는데 안 듣고 레고만 맞추고 있어서 큰소리로..."


"아직 아이는 일곱 살입니다. 아직 어린이라서 그렇습니다. 아이는 그럴 수도 있는 겁니다."


"재판장님. 그러면 저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아이가 한 번에 바로바로 하면 좋겠거든요."


"어린이는 아직 어려서. 일곱 살은 아직 초등학교에 안 가서 잘 모를 수 있습니다. 세 번까지도 좋은 말로 하세요."


"아직 초등학교에 안 간 건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아침엔 바쁘니 아이가 말을 잘 들었으면 합니다. 서둘러야 하거든요."


"좋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해 보세요. 판결하겠습니다!"





재판장님의 판결문

아이에게 장난감을 하나 주고 세면대로 데려가세요.

그리고 그거 보면서 하라고 하세요. 그러면 한 번만 말해도 할 겁니다.

쾅. 쾅. 쾅!





피고인의 마지막 진술 기회도 주지 않고 재판장님의 판결문 낭독과 재판봉 세 번의 울림을 끝으로, 재판이 끝났습니다. 휴우- 그나마 다행인 건, 속전속결 재판장님을 만나 구속되거나 철창신세는 면했지 말입니다.



아들의 이유 있는 변호와 깔끔한 판결에 사실 좀 감탄하기는 했습니다. 게다 아이들을 대변하 듯 어린이의 생각을 논리 있게 설명하는 모습에 속 마음까지도 충분히 이해도 했고요. 어린이들의 생각을 듣게 된 소중한 시간, 그 어디서도 경험하기 어려운 재판을 받고 왔지 말입니다. 이런 훌륭한 재판소라면 엄마는 매일 가도 좋겠는걸요. 아니 다시 생각해 보니, 매일은 아니고 한 달에 한 번 정도로 해야겠습니다. 피고인 좌석이 생각보다 은근히 떨리기는 하거든요.








"강력한 이유는 강력한 행동을 낳는다."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엄마에게 원하는 것이 있어 선가요. 본인의 원하는 바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서 '강력한 이유와 강력한 행동'을 본 듯합니다. 아이들로 인해 한걸음 멈춰 생각하는 어른이 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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