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콜포비아, 즉 전화공포증이 있는 사람이었다. 부모님이나 친구들이랑은 통화를 곧잘 하지만, 배달주문을 한다던가 모르는 사람이랑 통화를 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갑자기 심장이 뛰질 않나, 머리가 하얗게 되질 않나, 하여튼 배달앱이 나오기 전에는 혼자 절대 배달음식을 시켜 먹지 않았다. 사실 '못했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한때 잠깐 도서관 사서 보조알바를 한 적이 있었는데, 전화가 울리면 그냥 화장실로 대피했다. 도저히 모르는 사람한테 전화로는 응대가 안 됐다. 정말 형편없는 아르바이트생이었다.
근데 그저 사서 보조 알바와 달리 내가 온전히 1인분은 족히 해야 할 이 회사에서는 전화가 무서워 마냥 화장실로 피신할 수는 없었다. 신규직원은 울리는 전화에 바로 응답해야 했기에, 용기... 라기보다는 분위기에 떠밀려 전화를 받아야 했고, 어쨌든 신규니깐 "죄송합니다ㅠ 제가 신규라서요ㅠ"라고 하면 어찌 되었든 상황이 모면되고는 했다. 그리고 전화를 해야 할 상황이면 시나리오를 아주 철저하게 작성해 혼자 연극을 했다. 상대방의 대답을 나누어 알고리즘까지 그렸으니 귀엽기도 하다. 물론 예상치 못한 질문, 예를 들면 "일을 왜 그딴 식으로 하냐"는 식의 험악한 물음에 대해서는 말문이 막히고 그저 어버버버 눈물 글썽 밖에는 못했지만, 보통 그냥 상대방이 원하는 식으로 반응해 주면서 통화에 적응해 나갔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업무 쪽지보다는 전화가 더 편해지기 시작했다. 이따금씩은 기록 남기기 찝찝하면 그냥 전화로 때우기도 한다(음.. 내선 전화도 녹음이 되려나;;). 민원 많은 부서에서는 이 쫄보가 심지어 민원인이랑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대체 나보고 어쩌라는 것인지 돌아버릴 때 말이다.
인간은 역시 적응의 동물이다. 나에게 전화는 적응할 수 있을만한 대상이었던 것이다(죽어도 안 되는 것들도 있긴 하지만). 콜포비아 극복기는 서글프지만 회사가 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 준 대목이다. 이 대목에서의 교훈은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니 한번 부딪혀 보자는 거다. 의외로 쉽게 극복될지도 모르니깐. 콜포비아였던 내가 무슨 일 있으면 전화통부터 잡게 된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