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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사임당 May 07. 2024

외할아버지 닮으셨어

영원이란 있는 거야

"엄마, 외할아버지랑 닮으셨어."

"그래?"

"응"

"두 분이 형제시니까. 네 아버지랑 큰아빠가 닮으셨듯이 엄마의 아빠랑 큰아빠도 닮으신 거지"

"큰 외할아버지 얼굴이 더 마르셨는데 비슷하셔"

"맞아. 키도 닮으셨고 얼굴도 조금 다른듯한데 똑같지?"


시간도 장소도 갈라놓았던 형제는 언제까지나 형제다. 피가 닮았나보다.




큰아버지가 입원하셨단다. 아버지 큰오빠에 언니까지 친정 가족과 병원에서 만났다. 코로나 시국에 고모를 보내고 보니 이젠 아버지의 원가족 피붙이는 큰아버지 한 분뿐. 아흔이나 되셨으니 언제 가셔도 이상하지 않을 만한 연세지만 아직 준비는 되지 않았다. 자주 뵙지 못한 가족, 방문을 미루는 사이 먼저 가시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는데... 이별을 준비하는 우리들의 자세는 언제나 낙제를 면치 못한다. 준비가 되지 않는다.


언니가 큰집에 연락을 넣고 날과 시간을 정했다. 그러고 보니 고모 장례식 이후 처음이다. 큰집 막내언니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조카가 볼 때마다 자라 있어 "볼라보겠다"는 소리를 인사처럼 하듯 연세가 많으신 분들은 볼 때마다 세월이 실감 난다. 아이를 볼 때와 반대로 인사로 하지 못하는 문장. 급하게 태세를 바꾸는 말이다. "어머, 많이 컸다. 언제 이렇게 컸어! 이제 몇 살이니?", '아이고 많이 늙으셨네. 이제 연세가....' 달라진 모습에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겠지만 후자는 만남에 앞서 마음 준비가 퍼뜩 필요할지 모른다. 생각보다 더 작아지셨으면 어쩌냐. 나의 무관심에 섭섭하지 않으실까, 무너진 마음이 들키지 않도록 다잡아야 할 표정도 있다.


미리 알고 간 것은 아니고 오랜만에 연락을 드려보니 그곳이라 병원으로 가게 되었다. 방문이 문병으로 변경된 거다. 현장일을 오래 하셔서 폐가 나빠지신 건지 다른 원인인지는 모르겠다. 혈액 상태도 60대처럼 깨끗하고 혈색도 건강하시다지만 기흉으로 자주 입원을 하신다 했다. 폐에 호스를 붙이고 전과 다른 모습이시면서도 언제나처럼 인자한 미소다. 뵐 때마다 따뜻한 환대를 해 주시는지라 마음의 고향이 여기구나 확신이 드는 기분이다. 눈물도 웃음도 미소도 편안히 표현하시는 큰아버지덕에 사랑받고 자란 게 아닐까, 먼 곳이지만 나를 사랑해 주시는 분 덕에 이렇게나마 바르게 자란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다. 너무 편찮으실까 너무 힘들어 보이실까 지레 걱정했던 마음은 금세 사라진다. 걱정과 다르게 평소처럼 웃고 대화를 나눈다.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강한 모습으로 약한 속을 표현하시고 강한 큰아버지는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눈물로, 조카인 내 얘기에 웃음을 보이며 부드러운 외면을 보여주신다.


겪어보지 않은 시기 이야기는 집안 어른을 만나지 않는다면 들을 기회가 없다. 가급적 집안 모임도 어른들도 더 만나고 싶은 이유다. 한국사 세계사만큼 내 집안의 역사가 궁금하지만, 어머니도 아버지도 특별한 일도 없이 "밥 먹어라"는 말처럼 옛날이야기를 꺼내시지 않으니 말이다. 

갓난 막내아들, 나의 아버지를 낳고 죽은 남편을 대신해 삼 남매를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길러낸 이야기. 할머니가 김 씨 부락 촌에서 다른 성을 쓰는 한 가족으로 어떻게 살아내셨는지도 언제나 궁금하다. 그러다 부모님이 운영하는 구멍가게에 처음 오셨던 이야기를 해 주신다. 큰아버지가 가게 앞에까지 오자 내가 엄마에게 달려가 했다는 말이라는데 생전 처음 듣는 얘기다.


"엄마, 아빠하고 똑같이 생긴 사람이 와~!"


조금 전 큰아버지를 태어나 처음 뵙고 잠시 밥 먹으러 가면서 둘째가 내게 한 말과 똑같아 소름이 돋는다. 가게가 바쁘다는 핑계로 시댁에도 가지 않는 부모님 덕(?)에 태어나 처음 큰아버지를 보는 아이. 태어났다는 소식만 들었던 어린 녀석이 제 엄마에게 달려가 하는 말을 듣고 아셨을 테다. '아 요 녀석이 내 막내 조카구나' 그 첫 만남을 나는 50년 만에 처음 들었다. 시간 여행이라도 하듯 같은 말을, 내가 했던 말을 내 딸이 하다니 윤회 속에 들어온 것 같았다. 기분이 묘했다.


다시 찾아오겠다 말씀드렸지만, 또 언제 정확히 뵐지도 모를 일. 돌아오는 길에서부터 그립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감당하기에 벅차다. 비록 그것이 잠깐이더라도 말이다. 그리움도 이별도 처음인 듯 마음이 까분다. 들쑤셔진 감정이 여러 온도의 바람을 내어놓아 눈물이 나왔다 들어갔다 밀물인 듯 썰물 같다.


사랑하는 이 가시더라도 그분을 닮은 아이가 세상에 태어난다. 남겨진 사람에게는 아픔이겠으나 그분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우리를 남겨놓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으로 내 아이를 내어놓은 것일지도. 육신은 떠나더라도 우리에게 그분들은 영원히 남을 거다. 그분을 닮은 누군가로 그들이 남겨 놓은 자식으로 말이다. 형제가 닮았듯 엄마와 딸이 닮아있다. 그분들의 영혼은 우리 속에 남아 전달될 것이다.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게 할 것이다. 아픔으로 남겨놓아 잊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렇게 우리 속에 영원히 남겨질 테다. 슬픔으로 애틋함으로….


오래 남아주십시오. 사랑합니다.

대구를 다녀왔습니다. 둘째가 엄마 택시 지붕에 대구 적혀있어~ 해서 하나 찍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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