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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사임당 Sep 20. 2024

하리보의 고백

말랑하지만 말랑하지 않은 말랑이의 독백

말랑한 기분이다.



몸 상태는 막 탕 목욕을 마친 듯한 노곤함이 껴있고, 정신은 손 대면 툭 하고 터질 것만 같은…. (현철 아저씨 영면하십시오…. 우리 가족 모두 아저씨를 좋아했답니다) 연약한 상태다.

감수성이 예민한 상태라고나 할까? 감수성이라 좋게 표현했지만 실은 무척이나 기분이 제 멋대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종잡을 수 없다는 말과 다름 아니다. 누가 우는 장면만 봐도 눈물이 또르르 흐르고, 감정적인 얘기를 들으면 같은 감정으로 카멜레온화 하기 쉬운 상태.


막 내일 아침 있을 차례 준비를 마쳤다, 거의. 내일 아침 생선 찌고 국 끓이고 나물 간을 해야 할 거리가 남았지만 십수 가지 반찬과 상차림 용 음식이 끝난 거다. 어른 여자가 나뿐인 관계로 나 혼자.(여자가 성도 다르고 피도 안 섞인 집안 돌아가신 분들 제사 준비를 왜 혼자, 몽땅해야 하는지는 차치하고) 가족들은 어제 너무 많이 먹고 (술을)퍼마시고 놀아 피곤한 나머지 잠들었다. 막내부터 최고참 아버님까지. 초저녁인데 말이다. 나 참…. 혼자 눈을 말똥히 뜨고 있는 중이다.

갑자기 기분이 말랑카우가 되어버려서다. 이렇게 오늘을 마쳐버리긴 아까운 기분이랄까. 아까운 밤을 불태울 나이트를 갈 수도,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를 노래방을 갈 수도 없는 이 밤(어제 갔다 왔다). 나는 하리보 같아진 감성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사실 하리보 선전을 하며 다 큰 어른이 아기 목소리를 내는 성우의 도움으로 몸 따로 정신 따로, 목소리 따로 양복 따로 표리부동한 모습을 보이며 웃음과 천진함, 영원한 아기 마음과 더 포에버할 하리보의 무병장수(별 구설과 건강상의 이유 없이-공장의 위생 문제 같은) 같은 걸 빌지만, 우린 알지. 하리보가 광고에서마저 남자 어른 손이 억지로 눌러 짜야 겨우 찌그러지며 말랑하다는 강조를 붙일 수 있다는 걸. 하리보는 생각보다 말랑하지 않다. 이를 넣자마자 으스러지듯 뭉개지는 연약함은 아니다. 국산 여느 젤리보다 말랑하지 않고 말랑카우보다 연약하지 않고 요즘 유행하는 천연 과일 젤리보다, 그냥 딱딱하다.


그러니 내가 하리보만큼 말랑하다고 한들 내 마음이 솜사탕처럼 습기에 취약하지도 따뜻한 손길에 허무하게 제 모양을 잃지도 않을 테다. 그럼에도 완벽만이 통용되는 전쟁터 혹은 회사든,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여전사처럼 완수하고 보니 성취감과 허무함이 공존해 말랑한 감정이 큰 숨과 함께 뱉어져 있다.


말랑한 기분. 글 쓰기에 좋은 밤이다. 비록 하리보처럼 완벽한 말랑함이 아닌 관계로 완전하게 감성적이지도, 어느 한 부분을 건드리며 심장을 마시지 해 줄 글을 쓰는 데는 실패했지만.


글을 쓰겠다고 다짐까지는 할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말랑함이다.


잠들기 싫은 밤에 말랑한 감성으로 쓰는 며느리의 일기 끝(추석 전날, 9월 16일 일기 끝)

두 손(?)을 다소곳이 모은채 겸손히 잠드신 새우(영면하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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