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방문일지
“나 정말 이상한 짓을 해보고 싶어.”
“...?”
“공모전은 그만하고. 학생인 우리가 진짜로 해볼 수 있는 이상한 짓.”
3월 중순. 좋아하는 회사(디마이너스원)의 아카데미 면접을 봤다. 물론 메이저 기업의 다양한 대외활동은 많다. 그러나 그 회사는 여태 그런 대학생 겨냥 프로젝트가 없었다. 그런데 돌연, 1기를 모집해 아카데미의 개막을 알린단 공지가 올라온 거다. 평소 그 회사에서 어떤 식으로 인사이트를 도출하는지. 어떻게 그런 기막힌 아이디어를 도출해 현실에 꺼내놓는지 궁금했는데.
아카데미라니!
그것도 처음으로 모집하는!
욕심이 났다. 그만치 열심히 준비했다. 경쟁률이 치열할 것 같아 그만큼 더 갈아 넣었다. 내가 가진 가장 재밌는 알갱이로 포트폴리오를 디자인하고 말을 적어 내렸다. 그래서 그런지 재밌었다. 역시 재미란 감정은 그 무엇보다 강력하다. 그 감정이 포트폴리오에도 녹아들었나 보다. 면접을 보러 오란 회신이 왔다.
가기 전 그 회사 대표 두 분의 모든 인터뷰를 읽었다. 그러다 알게 된 사실 하나. 이곳에서 가장 먼저 한 프로젝트는 기업에서 외주를 받아 한 것도 아니고, 어느 공모전에 나가 상을 탄 것도 아닌. 그저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실행한 어떤 것이었단 사실이었다. 기차에 있는 장애인 표시에 스티커 하나만을 덧붙이면서 패럴림픽에 대해 알리자는 어떠한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무작정 시행하며 붙이고 다닌 것이 주목을 받고 유의미한 영향력을 끼친 것이었다.
기차를 운영하는 측에 허가를 받은 것도, 올림픽 측에서 외주를 받은 것도 아닌 그저 ‘행동력’ 하나에 의거한 프로젝트. 보자마자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그간 많았던 고민이 한 방에 내려가는 듯했다. 내 마음을 움켜잡고 있던 먹구름 하나가 쑥 하고.
“
나는 무엇 때문에 움직이지 않았는가?
어째서 방구석에 틀어박혀 기획이란 목적 하에 손가락만 움직이기 바빴는가?
내 하드에 처박힌 수많은 아이디어는 이대로 세상에 나오지 못하는가?
상을 타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것에 흘린 모든 땀방울은 고작 몇 KB로 간주되어 램에 처박힌 채 평생을 썩어가야 하는가?
안타깝게도 아카데미에 붙진 못했으나, 면접 준비 과정과 면접장에서의 기억은 내 안 무엇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그간 묵혀두기만 했던 아이디어들. 대학생이라서..., 란 이유로 실행하지 않았던 것들. 그저 무서워서. 겁이 나서. 행동력이 없어 노션에서만 살아 숨 쉬던 것들을 세상 밖으로 꺼내보고 싶단 다짐이 들었다. 그리고 이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같이 면접을 본 A(공모전을 같이 나갔으며 같이 나갈 예정이었던, 이런 이야기를 자주 나누는 친구)에게 “나 진짜 이상한 짓을 해보고 싶어.”란 말과 함께 이 감상을 공유하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둘이서 그간 나눴던 ‘사소하지만 유의미한 프로젝트’가 다시금 회수되기 시작했다.
“전에 이야기했던 ~ 해볼 만하지 않을까?”
“완전. 그리고 내가 전에 이야기했던 ~도. 괜찮지 않아?”
“그것도 괜찮지. 그리고 오늘 집 가면서 든 생각인데, ~ 말이야.”
(중략)
“진짜 심장 뛴다.”
“진짜로. 그동안 왜 해볼 생각은 안 했지?”
A의 눈이 그렇게 반짝이는 것은 오래간만이었다. 나 또한 그랬으리라.
그렇게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다시 회수된 아이디어들은 정말이지 해볼 만한 것들이었다. 이유도 없이 가득했던 먹구름들이 사라지니 도파민만이 날뛰었다. 다른 공모전으로 인해 오늘은 이 이야기를 그만 나눠야 한다는 점이 아쉬울 정도였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까. 잠깐 아쉽고 말 뿐이었다.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겠다. 겁먹지 말고, 하고 싶은 것을 해볼 것. 세상에 유의미한 영향력을 아주 조금이라도 행세할 수 있을 것이라면, 주저 않고 시도해 볼 것. 이제 둘 다 공모전이 끝났다. 아무래도 조만간 그것들을 세상 밖으로 꺼낼 수 있지 않을까, 란 기대만이 남았다. 주저 없이. 명확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