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궁금한 내 머릿속 : 자기 검열
나는 모르겠다는 말을 종종 사용합니다.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나도 모르지! 내가 왜 그랬는지.'
'나도 내가 이해가 안 가.'
정작 그렇게 한 것은 나입니다. 그런데 내가 모르면 대체 누가 알 수 있을까요? 물론 정말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꺼내어 보면 껄끄럽거나 부끄럽기 때문에 모르겠다고 둘러대는 것이죠. 사실 속내에는 이유가 다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들은 하나같이 그럴듯한 것들입니다.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모르겠다고 치부해 버리는 순간 자신의 잘 못된 점을 괜찮은 것으로 슬쩍 넘겨버리는 겁니다. 그러면 얼마 가지 않아 유사한 잘못을 저지르고 슬쩍 넘어가는 패턴이 반복됩니다. 습관이 되는 것이죠.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그 습관 말입니다.
'두려움을 넘어서는 지혜'라는 책에서는 자기 검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스스로 검열을 통해 성찰을 해야 한다는 의미인데요. 단순 의미로만 보면 당연하기도 하고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에 반드시 해야 할 과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인간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인데요. 성찰을 통해 잘못을 수정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을 하는 것이죠. 이것은 성공적인 삶을 만들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가 확실합니다. 그러나 성찰을 해도 변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나였습니다.
사실 성찰이라는 것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된 점을 바로잡기 위하여 하는 것이 성찰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잘못된 점을 모를 수도 있겠죠? 만약 잠자리에 들기 전 자기 성찰을 하는 사람이 매번 '난 오늘 반성할 것이 하나도 없어. 아주 훌륭한 하루를 보낸 것 같아.'라고 생각한다면 어떨까요? 약간은 극단적인 예를 한번 들어 보겠습니다.
한 달째 집안에서 온종일 티브이를 보고, 게임을 하고, 먹고 싸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성인 남성이 있다고 해보죠. 가족이 볼 때, 이 사람은 그냥 백수입니다. 의지박약에 게으르고, 생각이라고는 전혀 하지 못하는 쓸모없는 인간으로 보일 것입니다. 가족 중 누군가는 어디론가 끌고 가서 정신개조라도 받아보게 하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이죠.
반면, 당사자가 보는 자신은 어떨까요? 집안에 틀어박힌 채 지내는 본인에게는 아마도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겁니다. '재충전이 필요해서'라든지, '어떤 일로 인하여 충격을 받아서'라든지. 또는 '나도 왜 이런지 모르겠어. 그런데 다른 어떤 것도 할 수가 없어.'라고 말할지도 모르죠. 무엇이 되었건 그 자체로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이유가 됩니다. 이유가 있다는 것은 정당하다는 의미가 되고 결국 옳은 행동으로 인식합니다. '이런이런 이유 때문에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거야.'라는 논리인 거죠. 얼핏 보면 앞뒤가 딱 들어맞는 논리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기 성찰을 한다면 어떨까요? 자신의 잘못된 점을 찾아낼 수 있을까요? 그렇지 못할 겁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적당한 명분이 이미 내면에 자리 잡았기 때문에 잘못된 점을 찾아낼 수 없는 겁니다. 설령 찾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부정할 것입니다. 그래야 지금까지의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할 수 있으니까요.
이와 같은 사례는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얼마 전 흡연을 하는 지인과 대화를 나누었는데요. 그때 나눈 몇 마디 대화에서도 위 예시와 비슷한 패턴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A : "이제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끊어야 하지 않아?"
B : "응, 끊어야지. 근데 세상이 안 도와준다." (속뜻 : '응? 난 담배 끊을 생각이 없는데.')
A : "누가 도와줘. 네가 그냥 끊으면 되는 거지."
B : "나는 이걸 한대 펴야 스트레스가 풀리거든." (속뜻 : '난 끊을 생각이 없다고...')
A : "건강은 한번 망가지면 되찾기 힘들어."
B : "그거 알아? 보건소에서 내 폐활량이 비흡연자보다 더 좋데. 담배 피우는 사람 맞냐고 그러더라."
(속뜻 : '난 죽을 때까지 계속 필 거라고!')
이 사람의 명분은 완전히 자리 잡혀 있습니다. 심지어 비흡연자보다 더 좋은 폐활량을 가지고 있으므로 흡연을 더 많이 해야 할 이유로 만들어 버렸죠.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오류에 빠져 있습니다. 매우 논리적이어서 자신의 행동이 잘 못된 행동이라는 사실 자체를 망각하고 있는 것이죠.
당연한 말이지만, 나 또한 이러한 함정에 빠져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지금 이 순간에도 방심하는 순간 그 함정에 빠져버립니다. '내가 옳다.'는 함정 말이죠. 이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물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우리는 무의식 중에 잘못을 인정하기 꺼려합니다. 공격받는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위축되는 자존감이 두렵기도 할 겁니다. 그래서 최우선적으로 자신이 옳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방어하게 됩니다. 자기 합리화를 하는 것이죠. 스스로 옳은 일이라고 생각해야 자존감에 상처가 나지 않으니까요. 그것이 자신을 위하는 방법이라고 느끼는 겁니다.
하지만 올바른 성찰을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두려움을 이겨내야 합니다. 새로운 관점을 장착해야 합니다. 제삼자의 눈으로 자신을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죠. 그래서 객관적으로 자신의 부족한 면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제야 비로소 진정한 성찰을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언행 하나하나를 세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쯤 되면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라는 말은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이렇게 생각을 할 것입니다. '이건 내 잘못이 맞네. 앞으로는 안 그래야겠다.'라고 말이죠.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나는 완벽하지 않으니까요. 나만 그런가요? 내 친구도 그렇고, 직장 동료도 그렇습니다. 부모님도 그렇고, 선생님도 그렇죠. 밤늦게 쿵쿵 거리는 윗집 가족들도 그렇고, 어젯밤 내차를 살짝 긁고 도망간 그 사람도 그렇습니다. 사람은 원래 끊임없이 배워야 하고, 성장해 나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나의 무의식이 느끼는 바와 달리 그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잘못을 지적하고, 고치라는 말에 역정을 낼 필요도 없습니다. 내가 틀렸다면 그것을 인정하고 바로잡으면 됩니다. 사실 세상은 자신의 잘못된 점을 바로잡으려 노력하는 사람에게 손가락질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 생각만 우겨대는 사람을 손가락질하죠. 근거 없는 두려움에 나 자신을 내맡기지 않을 겁니다. 실수를 인정하고, 배우려 노력하고, 잘못에 관해 사과하는 사람이 되기로 다짐합니다. 나는 틀릴 수도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성찰을 통해 성장해 나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