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이 생각납니다. 참 노는 게 즐거울 때였죠. 놀아도 놀아도 더 놀고 싶었으니까요. 어떻게 하면 평생 놀기만 할 수 있을지를 하루종일 고민한 적도 있었습니다. 당연히 공부는 좋아하지 않았어요. 공부가 싫었다기보다는 노는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에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때 공부 좀 더 할걸.' 하는 후회를 하긴 했습니다. 학창 시절의 성적이나 출신 학교의 수준 같은 것들이 제 삶의 어떤 장애물로 작용할 때 후회가 되더군요. 당시에는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지만 말이죠.
이제와 생각해 보면 공부를 하지 않았던 이유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라기보다는 간절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공부의 필요성은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저의 경우 어머니의 무지막지한 잔소리를 견뎌냈기 때문에 그 필요성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죠. 그럼에도 하지 않았던 것은 결국 제 스스로 공부에 관한 간절함이 없어서였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요즘도 종종 간절히 무언가를 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과연 간절히 원하는 게 맞는 건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말로는 간절히 원한다고 하면서 행동으로 실행하는 것에는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간절함은 겨우 이 정도인가? 싶은 생각에 부끄럽기도 하고 스스로 한심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문득 간절함이라는 게 내 삶에 한 번이라도 있어보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리고는 20대 어느 여름날이 떠올랐습니다.
무척이나 더운 날이었습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한없이 걷고 있었죠. 두꺼운 군복을 입고 행군을 하는 것은 그 자체로 고문이었습니다. 통풍은 전혀 되지 않는 질기고 두꺼운 군화까지 신고 있었으니 온몸에 비닐을 칭칭 돌려 감고 걷는 기분이었습니다. 땀을 비 오듯 흘렸기에 물은 마셔야 하는데 마음껏 마시지도 못했습니다. 뜨거운 물을 호호 불어가며 마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여름철이라 식중독을 예방한다는 이유였죠. 얼음물은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벌컥벌컥 마실 수 있는 물이 간절했을 뿐이죠.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뙤약볕 아래 앉아서 받아온 식판의 음식을 먹기 시작했었죠. 김치를 한입 입에 물었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식판에 담겨있는 음식 중 유일하게 시원한 음식이 김치였던 겁니다. 그 순간 취사병이 음식통을 정리하고 있는 모습을 포착했습니다. 먹던 식판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그 취사병에게 달려갔죠. 그리고 취사병을 붙들고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김치 국물을 좀 마셔도 되겠습니까?!!”
취사병의 대답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곧바로 옆에 있던 커다란 국자를 들고 김치국물을 퍼서 정신없이 마셔댔습니다. 제가 김치국물을 마시기 시작하자 몇 명의 부대원들이 더 달려들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단지 간절했을 뿐.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 나며 간절함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진정한 간절함이란 절박한 감정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말이죠. 정말 간절하다면 즉시 원하는 것을 실행합니다. 정말 간절하다면 이것저것 따지거나 재 보지 않습니다. 아니 사실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절박한 상황에서 뭘 따지고 재 볼 수 있겠습니까. 만약 따지거나 재보며 뭉그적거리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가짜 간절함으로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거짓 간절함으로 스스로를 속이는 사람들은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능력은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쓸모없는 것들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죠. 그것은 바로 ‘자기 합리화’입니다. 자기 합리화는 스스로의 부정적인 모습을 보호하기 위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 이유들은 상당히 논리적이기도 하죠. 그래서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자기 합리화를 즐겨 사용합니다.
사실 자기 합리화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만 꺼내 써야 하는 비상약입니다. 절망적이고 시급한 상황에서는 자기 합리화가 스스로를 보호하고 위안해 주는 적절한 치료약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내면에서 관성화 되어버리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자기 합리화를 앞세워 편안함에 익숙해진 사람은 그것을 내면에서 자동화하게 되죠. 마치 아프기 싫다는 이유로 감기약을 매일 먹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두려움을 거부하고 편안함 만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뚜렷해집니다. 내성이 강해지는 것이죠. 그리고 곧 새로운 시도는커녕 조금의 불편함도 감수해 내려는 의지가 사라집니다. 현실에 안주하는 듯 보이지만 스스로 행복한 삶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진짜로 간절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말로만 간절하다고 자신을 속이고 있지 않으신가요? 자신이 믿고 있는 간절함을 의심해 보세요. 진실한 간절함을 발견할 수 있다면 정말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얻게 될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