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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들이 Nov 25. 2024

그래... 자연스러웠어

    아침 시간은 참 빨리 지나갑니다. 운동을 다녀와 이것저것 하다 보니 8시가 다 되었더군요. 벌써 일어나 학교 갈 준비를 해야 할 아이들이 아직 자고 있었습니다. 애들을 깨워 놓고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죠. 아들 녀석이 어젯밤에 빨래해서 널어놓은 옷을 입겠다고 들고 옵니다. 다 말랐냐고 물으며 만져보니 말랐을 리가 없죠. 와이프가 다른 옷을 챙겨주는 것을 보고는 다시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이 밥도 안 먹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겁니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았고, 녀석은 마르지 않은 그 옷을 입고 가고 싶답니다. 아이고 참 답답할 노릇입니다. 보송보송한 옷을 옆에 두고도 축축한 옷을 그냥 입고 간다니 말이죠.


    그때 문득 저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이제 와서 돌이켜 보면 저도 뭐 별다르지 않은 사춘기를 겪었던 것 같아요. 마르지 않은 옷을 입겠다고 어머니와 싸우던 모습은 물론, 목이 늘어난다고 옷걸이에 걸 때 밑에서부터 넣으라고 성질을 부리기도 했지요. 심지어 밥이 많다고 짜증을 부리기도 했네요. 그때는 그런 행동에 이유가 있었을 텐데 역할이 바뀐 지금은 그 이유가 생각나지도 않고 이해되지도 않더군요. 누굴 닮았겠습니까?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지. 그런데 참 이상하죠? 저도 모르게 커다란 비닐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얼마 전에 세탁소에서 찾아온 와이셔츠가 있는데 그것을 덮고 있는 비닐이 눈에 띄더군요. 그 비닐에 아들 녀석의 옷을 넣고 드라이기로 쏘이며 옷을 말리기 시작했습니다. 젖은 옷을 입겠다고 고집부리던 제게 어머니가 해주셨던 행동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오늘 아침은 여느 월요일 아침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렇게 지나간 겁니다. 자연스럽게 말이죠. 만약 와이프가 꺼내준 옷을 그냥 입고 가라고 아들 녀석과 대치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 자연스럽게 월요일 아침이 흘러가지는 않았을 것 같네요. 서로의 감정도 상했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이 추운 날씨에 젖은 옷을 입고 간 아들 녀석이 종일 신경 쓰였을 겁니다. 아마도 끝까지 그 젖은 옷을 입고 갔었을 테니까요. 그렇게 보면 아침의 제 행동은 오늘 하루를 자연스럽게 만든 열쇠였네요. 그 열쇠는 옛날 그 시절의 어머니가 알려준 지혜이기도 하고요.


    언젠가는 아들 녀석도 제가 오늘 보여준 행동이 떠오를 때가 있을 겁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따라 하겠죠. 마치 당연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러고 보니 언행 하나하나 조심해야 하는 게 맞나 봅니다. 가족 앞에서든 주변 사람들 앞에서든 말이죠. 어머니는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남 가슴 아프게 하지 말고, 당최 남 속이지 말고, 남의 것도 내 것처럼 여겨야 한다고 말이죠. 새삼 그 가르침이 세상 모든 일을 자연스럽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은 아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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