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전 모 TV 프로그램에서 인기를 끌었던 '당연하지' 게임을 기억하시나요? 상대방이 당연하게 여기면 우스워질 만한 질문으로 서로를 공격하는 게임이었죠. 상대를 이기기 위해서는 당연하지를 외쳐야만 하는데요. 도저히 당연하게 여길 수 없는 공격이라도 자존심이고 체면이고 다 던져버려야만 이길 수 있는 것이죠. 이런 특성으로 인해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에게 큰 웃음을 주는 게임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즐겨하는 게임이기도 하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과 정 반대의 대답을 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데요. 그러한 인간의 심리를 이용한 잘 만들어진 게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면 더욱 그렇겠죠. 아무래도 다른 이들의 눈을 의식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만약 아무도 보지 않는 상황이라면 어떨까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게 마음속으로 무언가를 당연하다 느낀다면 말이죠. 모르긴 몰라도 겉으로 드러내 보이는 것보다는 마음 편하게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생각하게 될 것임에는 틀림없겠네요.
잘 생각해 보면 실제로 이러한 일들이 우리 마음 안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아주 많이, 그리고 자주 벌어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않거나 별 티를 내지 않더라도 마음속으로는 수시로 '당연하지!'를 외치고 있는 것이죠. 그게 왜 당연한지, 혹시 당연하지 않은 것은 아닌지 전혀 의심하지 않습니다. 누구의 눈치를 보지도 않죠. 아무도 마음속의 '당연하지!'를 들을 수도 없으니 그럴 필요가 없지요. 말 그대로 '내 마음'인 것입니다. 하지만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닙니다. 낮이나 밤이나 그 말을 듣고 있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누군가는 누구일까요? 맞습니다.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느끼는 거의 대부분의 것들은 우리 멋대로 정해버린 결과물입니다. 따라서 한 번쯤은 의심을 해보아야 합니다. 혹자는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뭐 그렇게 대수라고 그러는가'라고 말이죠. 그런 사람에게는 이게 꽤나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이제 곧 알 수 있을 거라고 말하고 싶네요.
우리 멋대로 정해버린 '당연함'은 얼핏 별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만 사실은 아주 중대한 사안입니다. 우리가 삶을 대하는 자세나 그것으로부터 느끼는 사소한 감정까지도 좌우하기 때문이죠. 당연함은 우리에게 불만을 야기하고 화를 내게 만들며, 지루한 하루하루를 만들어 냅니다. 무슨 억지냐고요? 한번 생각해 보시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생활이 지긋지긋한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의 당연함은 아마도 아침마다 반복하는 출근 준비일 것입니다. 잠이 깼으니 당연히 눈을 떠야 하는 것이고, 출근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당연히 서둘러 준비해야 하는 것이죠. 또는 올해 연봉이 동결되었으니 딱 그만큼만 일하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겠죠. 회사가 자신을 대우해 주지 않으니 당연히 회사 일에도 관심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 회사에 내일 또 나가려면 지긋지긋 하기는 하겠네요.
누군가와 다투는 사람도 '당연하지!'를 멋대로 외쳤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이 자신에게 하면 안 되는 말이나 행동을 당연한 어떤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 기준을 벗어나는 사람을 마주하게 되면 화가 치밀어 올라 다투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상대방의 상황 같은 것들은 전혀 고려대상이 아닙니다. 당연한 게 먼저니까요.
스스로 당연하게 여기는 무언가가 있다면 먼저 그것을 의심해 보세요. 아침에 건강한 몸으로 눈을 뜰 수 있다는 것, 늦지 않게 일어나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할 수 있다는 것, 연봉은 동결되었지만 올해 성과를 더 잘 내서 내년에는 성공적인 연봉 협상을 하기로 결심하는 것, 오늘 하루 고생한 자신을 위해 맛있는 저녁 메뉴를 고민하는 것 등으로 재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이 당연함을 벗어던지는 일입니다.
멋대로 정해 놓은 '당연함의 덫'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심지어 당연함이 교과서 적인 진실이라도 말입니다. 당연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감사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당연하지 않기 때문에 개선할 방법을 찾으려 노력합니다. 당연하지 않기 때문에 상황을 이해해 보려 노력할 수 있습니다. 당연하지 않음에 익숙해 지려 노력하다 보면 더 큰 선물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숨 쉴 수 있음에 감사를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