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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슬 Aug 19. 2023

극한의 상황에서도 의지는 빛을 발할 수 있는가?

「사형수 탈출하다」, 1956


로베르 브레송, 나의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영향력만으로도 충분히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는 이 영화를 예매하면서부터 알게 되었던 감독이지만, 영화를 보고 영화관을 나오는 시점부터 나의 거장은 '로베르 브레송'이었다. 영화 자체를 볼 수 있게 해주는, 담백하게 영화 자체를 즐길 수 있었다. 그의 영상에는 부속이 없다. 오로지 주제만 존재할 뿐이다.


<사형수 탈출하다>. 제목부터 너무 강렬하다! 제목부터 뜯어보는 재미가 있다. 왜 사형 선고를 받았을까, 그리고 왜 탈출을 하려고 하는 걸까! 영화 시작 전부터 궁금증에 사로잡혔다. 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 모든 궁금증을 해결해야겠다 마음먹었다. 그리고 영화를 다 본 후 느낀 건, 로베르 브레송의 영화에서는 주제를 감싸는 장면보다는 관통하는 장면들이 주가 된다. 그래서 나의 모든 궁금증을 생각보다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영화 구성을 본 게 거의 처음이라 계속해서 영화 구성에 대해 얘기하게 된다. 그러나 내용도 좋았다. 슬쩍 생각해 보면 제목 그대로 사형수가 탈출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하지만 조금만 더 집중해서 보면, 단순히 탈출뿐만이 아니다. 탈출에는 삶을 위한 마지막 의지가 담겨있다. 모두가 죽어있는 곳에서 나 혼자 살아있는 것이다. 죽어있는 사람들 속에서 나 혼자 살아있는 건 얼마나 힘든 일일까. 단 몇 명만으로도 생각이 바뀌기 쉬운데, 심지어 감옥이라는 통제된 상황에서도 어떻게 의지를 끝까지 가지고 있었을까. 쉽게 잡아볼 수 없는 마음이다.


독일군의 무자비한 점령 속에서 주인공은 저항을 했다. 저항의 결과는 사형 선고였다. 잡혀가는 와중에도 탈출을 시도했고, 그는 끝까지 저항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의 결과는 독일의 패전이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실화에 기반되어 만들어졌다. 탈출의 성공이, 승리의 의미 또한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심지어 이 탈출에는 뒤늦게 같이 방을 쓰게 된 독일군 소년과 함께였기 때문에, 더더욱 의미는 짙을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영화 진행 중간 즈음 주인공의 방에 독일군 소년이 함께 수감됐다. 수감소에서 주인공에 대한 의심이 깊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끝까지 그 소년을 의심했다. (누구나 그랬을 거라고 생각한다. 모든 상황이 그를 의심하게끔 흘러갔다!) 그러나 소년은 어머니와 동생을 만나기 위해 애쓰는 소년이었고... 미안하게 생각한다. 어쩌면 이러한 의심들로, 이 시대에 상처받는 사람들도 꽤 수두룩 했을 것 같다.


주변에서는 처음에는 그를 도와주고 믿어줬지만, 점차 반대 의견도 생기기도 했다. 먼저 탈출을 시도한 다른 죄수가 처형당했으며, 그의 사형 집행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더 속도를 냈고, 끝내 같은 방의 소년을 동료로 삼았으며, 상황에 굴하지 않은 의지는 결국 빛을 보았다.


사실 영화의 마무리가 나는 생소했다. 탈출을 하고, 어두운 길을 조금 달려 나가니 영화는 끝이 난다. 그들이 탈출을 해 가족에게 돌아갔는지, 아니면 붙잡혔는지 조차 알 수 없다. 나가기는 했을까, 과연 그 길이 정말 바깥으로 나가는 길이 맞을까. 하지만 기뻐했던 그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그 길이 맞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물론, 영화가 끝난 직후에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모든 게 종료되었기 때문에... 그래도 좋다. 오히려 여지를 남기지 않는 것만 같아서, 그들이 기뻐하는 모습만 간직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로베르 브레송 감독이 더 궁금해졌다. 그래서 다음 날 다른 영화도 보고 왔다. <아마도 악마가>. 그리고 이 영화를 본 다음, 로베르 브레송 감독의 영화를 이해하는 걸 도울 수 있는 책을 빌렸다. 그래서 다음 이야기는, 조금은 더 영화를 깊게 파헤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2023.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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