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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슬 Feb 20. 2024

함께 나아갈 수 있는 마음가짐

「나의 올드 오크」, 2024


포스터만 봤을 때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래된 가게에서 손님들과의 일상을 다룬 영화인 걸까?'. 영화를 너무나도 평면적으로 속단했다. 단순한 일상 얘기가 아니었다. 어쩌면 지금도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을, 타인과의 유대를 쌓아가는 과정을 담은 영화였다.


이들에게는 타인이 갑자기 찾아왔다는 것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공통점 하나 보이지 않는 이들이라는 게 문제였을까. 첫 단추가 위태위태하게 끼워졌다. 사실 단추를 끼웠다고 하기에도 뭐 하지만, 그래도 일단 자리를 잡았으니 끼웠다고 표현하기로 스스로 타협했다. 영화의 시작부터 가장 마음이 쓰인 사람은 '야라'다. 불안한 마음을 안고 도달한 곳에서 왠지 뚫을 수 없을 것 같은 벽을 마주하는 기분이란 무엇일까. 감히 상상하는 것조차 미안한 마음이다.


'야라'와 함께 온 모든 사람들은 시리아 난민이다. 갈 곳을 잃은 이들이 도착한 곳은 영국의 폐광촌이다. 생기를 잃어가는 무채색의 폐광촌이 사람들로 다시금 북적인다. 도시의 존폐를 얘기하고 있었는데, 난민들의 유입은 그들에게 오히려 반감만 일으킬 뿐이었다. 큰 모순이다. 사람이 없어져가고, 도시는 멈췄는데, 난민들은 왜 환영받을 수 없는 것인가.


우리나라에서도 난민을 받으려는 시도가 있었다. 2018년, 제주도에서 예맨의 난민을 수용하는 것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내전으로 인한 난민 발생 또한 똑같고, 결국 우리나라도 일부 수용했다는 것까지 영화와 똑같이 흘러간다. 반대 여론의 이유는 성범죄 등이 있었다. 난민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많은 이민자들은 선입견과 편견으로 인해 배척받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들을 매도하는 건 납득할 수 없다.


<나의 올드 오크>는 이런 점에서 비현실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 난민들을 받아들인 TJ와 그의 전 아내는 적극적으로 난민들과 화합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 나선다. 운동회를 열고, 영화 상영회도, 그리고 함께 식사할 수 있는 무료 급식소를 열기도 했다. 순탄치만은 않았다. 운동회에서 아픈 친구를 도와줬을 뿐인데 난민이라는 이유로 질타를 받고, 급식소는 하루 만에 망가지고 만다.


TJ의 친구들은 본인들에게 장소를 대여해주지 않고, 그 장소를 난민과 화합의 장소로 썼다는 이유로 배관을 망가트렸다. 어떤 일이든 다른 의견이 존재할 것이고, 훼방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장난이라는 말로도, 훼방이라는 말로도 가려질 수 없다. 상처받은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이 생겼다.


급식소가 망가져 이대로 끝나는가 싶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야라'의 아버지의 시체를 시리아 감옥에서 발견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잔혹한 전쟁 속에서 시체라도 찾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작게나마 장례식을 치르고 있었는데, 점점 조문객이 많아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만 같았던 노력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한 번의 그 식사가, 그 영상회가 마음을 움직였다. 


'힘, 연대, 저항'. '야라'와 친구들이 함께 만든 선물에 담겨있는 말들이다. 함께하면 어떤 것이든 해낼 수 있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한마디다. 연대했기에 마을은 강해질 것이고, 색채를 다시금 찾아갈 것이다. 영화의 얘기라는 것이 슬프기도 하지만, 영화가 주는 힘이 현실에도 미칠 것이라고 기대하는 마음을 가져본다.


+)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사마에게(2019)>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시리아 내전의 잔혹함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영화이기에, 이 영화 속 '야라'와 난민들에게 더 이입할 수 있었다.

++) KBS 시사기획 창의 422회 또한 영화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역할을 해준다.


202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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