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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 Oct 12. 2024

일기록:日記錄

지난 주 화요일에 해방촌 독립서점에서 사온 책이 무척 마음에 든다.


나는 부끄럽게도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 덕분에 글을 잘 쓰지도 못한다. 다만 내 취향의 책은 온 마음을 다해 즐기고 남이 쓴 글은 최대한 성심성의껏 읽는다. 어렵게 쓰여지는 글이라는 걸 알고 모든 글이 술술 읽히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아서 눈앞의 텍스트는 기꺼이 다 읽는 편이다.


내 취향이 아닌 책은 아무리 유명하다 해도 잘 읽히지 않는다. 책을 읽는 동안 자꾸 다른 생각을 하게 되고 심지어 결말만 궁금해 한다. 국문학 전공생이라 학기 중에는 책을 꽤 읽었지만 분명하게 기억하는 책은 드물다. 기꺼이 읽기는 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은 책을 읽었다고 하기엔 쑥스럽다.


원체 하기 싫은 건 하지 않는 성격이라 중간에 덮은 책도 여럿이다. 지금보다 더 어릴 때 책을 많이 읽지 않은 게 아쉽긴 하지만 돌아가도 똑같이 할거라 후회하진 않는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은 어렸을 때부터 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3학년 땐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가족 이야기를 담임 선생님께 보낼 편지에 구구절절 적었다. 어쩐 일인지 모르겠지만 다행히 편지는 붙이지 않았다. 그 덕에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상황을 묘사하고 거기에 내 생각을 더해 기록하는 일을 좋아했다는 걸 스스로 낯부끄럽게 깨달았다.


그렇지만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글을 잘 못 쓴다. 독서와 작문이 정확하게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 모르지만 나는 내가 책을 많이 읽지 않아 글을 못 쓴다고 생각한다.


쑥스러움과 부끄러움을 꽤 예민하게 구분지어 받아들이는데 책을 많이 읽지 않아 느끼는 마음은 부끄러움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부끄러움의 근원은 분명 내가 쓴 못난 글이다.


그렇지만 나는 늘, 오랫동안 내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고

책으로 가득찬 방에서 읽고 생각하고 쓰는 걸 인생의 로망으로 여기며 살고 있다.


-


 책을 많이 읽지 않고, 글을 잘 못 쓰는 내가 요며칠 책을 보고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해방촌에서 사온 책이 내 마음에 꼭 들어서 일을 하는 동안에는 책을 읽고 싶어 울렁거리기까지 했다. 그리고 책을 읽는 동안 나도 이렇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책을 다 읽고 추천사까지 눈에 담은 후에 생각했다.


:내가 못할 건 또 뭐야?


이미 블로그에 사진과 일상을 기록하고 있으면서 유독 글을 쓰는 게 꺼려지는 이유를 생각해봤다.


 먼저 나는 글을 읽을 때 남이 쓴 문장을 내 호흡과 취향에 맞게 고치려 하는 안 좋은 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게 곧 지적으로 이어지고 혼자 남이 쓴 문장을 평가하며 읽는 습관이 되었다. 그리고 그 습관이 내 글도 그렇게 받아들여질거라는 두려움을 낳은 것 같다.

이미 글을 못 쓴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지만 그걸 대놓고 드러내고 대놓고 평가받을 용기가 부족하다. 쉽게 말해 나는 지적 받을 게 분명한 내 글을 지적 받지 않게 하기 위해 글을 쓰기 꺼려하는 중이다.


다음으로 글을 쓸 경우 아직 픽션과 논픽션의 어느 지점을 정확하게 잡지 못한 것..? 나는 지나치게 솔직한 글에 위로를 받는다. 누군가의 솔직한 이야기가, 그들의 감정이 내겐 아주아주 큰 위로와 응원과 힘이 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솔직할 수 있을까? 분명 솔직한 척 하는 솔직하지 않은 글이 될텐데 그럼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는 성격이 문제가 된다. 야심차게 시작한 글이 일상의 피로에 밀려 불규칙적으로 쓰여질 것 같다.


:그럼 그냥 쓰지 말까?


 어차피 완벽한 글은 없으니 이왕 글을 쓰는 거 남들에게 시원하게 평가받는 게 좋을 것 같다. 독자의 피드백이 나에게 닿는다는 전제만 확실해도 나는 비싼 글쓰기 과외비를 내지 않고 글을 쓰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거야말로 횡재아닌가.


그리고 애초에 글에 픽션과 논픽션을 따지는 게 불가능하다. 흘러가는 시간을 무슨 수로 붙잡아 놓고 생생하게 기록하고 보내줄 것인가. 기억에 의존하는 글은 과장에 허위에, 논픽션이 될 수밖에 없고 나는 글의 재미를 위해서라면 완벽한 픽션을 논픽션인 것마냥 적을거다. 픽션인 것마냥 적는 논픽션, 녹핀션이지만 픽션인 글.


그리고 쓰고 싶지 않을 땐 안 쓰면 된다.


-


뭐 이런 이유들로 일기록을 쓰게 되었다.


일기를 바탕으로 기록을 할거라 제목으로 내가 자주 쓰는 "일기록日記錄"이라는 단어를 가져왔다. 어느날 갑자기 지어낸 단어라 이미 있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내 글에 제일 잘 어울리는 단어라 픽션과 논픽션의 사이라는 뜻도 어거지로 넣어봤다.


아직 내 방은 책으로 가득차지도 않았고 나는 닥치는 대로 책을 읽는 습관도 없으며 주로 결론 지어지지 않는 생각들을 하고 이 글도 겨우 쓰고 있다.


내 로망의 어떤 모습도 닮지 않은 내 모습이 오히려 더 낭만으로 느껴진다.


-


 내가 끝까지 읽은 책은 손에 꼽고 그 몇 안되는 책들은 모두 내 취향의 책이 되었다. 책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흔히 나오는 제목들을 생소해 하고 내 옆사람들이 아는 이야기를 몰라 고개만 끄덕여야 할 때가 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에게 열렬히 추천해 줄만한 책을 알고 있고 몇 안 되더라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책이 있으니 이제 그만 지난 날의 부끄러움은 덮어둬야겠다. 그리고 읽는 생활을 시작해야겠다.


나는 이제라도 읽어보려 한다. 나는 쓰기 위해 읽는다.

내 로망을 이루는 그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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