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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하영 Aug 24. 2023

서울 02

직장인의 사춘기

지난주 금요일은 약속이 없었다. 집에 바로 가기는 싫고 누구에게 연락할까 하다가 첫 회사 동료들과 연락이 닿았다. 카톡으로 안부를 묻거나 업무 관련 이야기만 했었지 이렇게 만나는 건 5년도 더 된 것 같다. 술을 잘 마시지도 않고 늦게까지 밖에 있는 것은 피곤해서 싫어하는데 그날은 언제 또 모이겠나 싶어 새벽 3시까지 달렸다.

2011년 한 홍보회사에 신입사원이었던 우리는 대학생들처럼 하하 호호 회사를 얼마나 재미있게 다녔는지 모른다. 지금 누가 들으면 미쳤다고 생각할 테지만 그때는 회사를 안 가는 주말이 싫었을 정도다. 물론 다들 젊음의 열정을 불태우고 나가떨어질 때 즈음 하나둘씩 번호표를 달고 퇴사를 했다. 그래도 그때 동기들과 지금까지 서로 챙겨주며 잘 지낸다. 일하기 힘든 홍보회사를 버틴 전사들이기에 나름 ‘전우애’가 있다.


막내시절, 그때 나는 우리 팀에서 ‘0 부장’이라는 별명이 있었다. 신입사원 답지 않게 의젓하다는 뜻도 있었지만 그만큼 신입사원다운 싹싹함이나 살가움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회사에서 조용히 지내는 편은 아니었고 동기들 사이에서도 나름 리더 역할도 했으니 팀장님은 나에게 ‘왜 우리 팀에서만 이렇게 조용하냐 ‘고 핀잔을 준 적이 있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변함없이 나는 업무 외에는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일부러 무리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일을 못한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 없으니 그냥 적당히 나의 쓰임 정도를 서비스로 제공하며 지냈다. 그때 내가 조금이라도 ‘싹싹해지려고’ 노력했다면 팀장님은 내게 업무 ‘외’ 더 많은 요청을 했겠지만 마음이 열릴 때까지는 나도 더 다가가지 않은 탓에 더 이상의 무리한 요청들은 없었다. (오해는 없길, 팀장은 여자였다.) 물론 회사에서 하는 워크샵에서 장기자랑은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했다. 이건 내가 원했으니까.


그때의 신입의 나는 연차 5년만 넘은 선배들도 엄청 거대해 보였다. 지금 내가 이런 상태로 12년 차의 직장인이 되어 있으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지금도 나는 관리자는 아니다. 그래서 아직 이런 마음을 유지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 팀은 세대교체가 이루어지지 않은 탓에 지금 내 나이대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관심사도 비슷하고 꼰대와 MZ 중간쯤에 끼어 산다. ‘트렌드에 민감하고..’가 내 이력서에 단골 문구였는데 이제 이런 말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다. 플레이 리스트가 계속 2000년 대 초반에서 멈춰있다.


40대가 되기 전에는 앞으로 뭐를 해 먹고살아야 하나 노후에 대한 길을 정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박경림이 방송에서 30대를 맞이하며 20대에 모든 것을 다 이뤄놓아서 자신의 30대가 기대가 된다는 말이 엄청 부럽기도 하고 충격이었는데, 나는 좀 늦어도 40대를 맞이할 때는 그만큼 준비되어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여전히 나는 혼란스럽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 항상 마음속에 그려왔던 해외 취업을 할 수도 있지 싶다가도, 그래도 그동안 티 안 나게 모아놓은 돈으로 여기에서 안정적으로 더 꾸려볼까 싶다가도, 결혼을 해서 제2의 인생을 상상해볼까 싶다가도, 엄청 돈 많이 벌어서 부모님 더 늙기 전에 호강시켜 드리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를 고민한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 회사에서 65세 정년을 맞아 퇴직하는 분들도 그 이후에 삶을 걱정하고 고민하는 건 똑같다. 물론 나보다 모아놓은 돈도 많고, 퇴직금은 얼마나 더 두둑 하겠냐만은 한 회사에서 길게는 40년 이상을 몸 담았는데 65세에도 그 고민에는 답이 없는 것 같았다.


60대도 모르는데 지금 나에게 정확한 답이 있을리가…그래도 후회는 하고 싶지 않다. 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만큼은 살아봐야겠다. 오늘의 주저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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