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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환빈 Aug 11. 2024

가자 전쟁에 대한 서안지구와 팔레스타인 정부의 입장

어제(8월 10일 자) 한겨레가 독립 다큐멘터리 피디님의 기고문을 올렸습니다. 전반적으로는 잘 쓰신 글이긴 한데, 이번 전쟁에 대해 서안지구가 리더십의 부재로 침묵하고, 팔레스타인 정부는 입장조차 내놓지 않는다는 잘못된 정보를 적으셨네요. 이게 팔레스타인 상황에 대한 전문적인 이해가 없으면 오해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설명을 좀 드리고자 합니다.



1. 서안지구는 왜 침묵하는가?


"세상은 팔레스타인 문제로 야단인데 (서안지구의) 라말라는 왜 이렇게 조용한지, 왜 돌 던지는 아이들이 없는지 묻는 내 말에 팔레스타인 뉴스 에이전시 매체 ‘팔모멘타’를 운영하는 아흐마드 기자는 팔레스타인 정치 지형의 변화를 언급했다. 팔레스타인 정치 그 자체를 상징했던 야세르 아라파트는 2004년 사망했다. 하마스와 경쟁 관계인 파타흐의 핵심이자 2차 인티파다를 주도했던 마르완 바르구티는 2002년 이스라엘군에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다.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무카타는 더 이상 존경의 대상이 아닌 듯 보였다."


한겨레 기고문은 현지인의 목소리를 빌려서 현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지인이라고 해서, 심지어 기자라고 해서 현실을 잘 짚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외국인에게 말할 때는 더욱 그러합니다. 인용문의 아흐마드 기자가 한 말은 1000% 사실이지만, 현 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내보이기 위해 전체가 아닌 부분만 강조했습니다.


우선, 가자지구와 서안지구가 처한 현실이 다르다는 점부터 이해해야 합니다. 가자지구는 역사적으로 개방적이고 온건한 지역이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서안지구가 보수적이고 시온주의자(=유대 민족주의자)에 대한 무장투쟁이 활발했고요. 그런데 1948년에 이스라엘의 인종청소로 가자지구 지역에 원주민의 2배나 되는 난민이 대거 유입되면서 상황이 달라집니다. 지역 경제가 무너지면서 주민들이 절규하고, 난민들이 정치를 주도하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보이게 된 겁니다. 이 때문에 1948년 이래로, 특히 1967년 이래로 가자지구는 언제나 서안지구보다 투쟁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2005년 1월에 대통령 선거에서 온건파인 마흐무드 압바스가 서안지구 주민들의 지지로 당선되고, 2차 인티파다가 사실상 종료되면서 서안지구는 대체로 안정기에 접어들었습니다. 대대적인 시위가 있었던 2015년에만 피해가 컸고, 그 외 기간에는 분쟁으로 인한 사망자가 거의 없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무장투쟁에 반대하는 압바스 대통령의 리더십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경제사회가 어느 정도 안정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서구 국가들은 이스라엘을 정치적으로 지원하면서 생긴 피해의 보상 명목으로, 2006년부터 개발원조에 공을 들이고 있고 성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서안지구에서도 여전히 이스라엘에 대한 불만은 크고, 시위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시위에 참여하는 집단은 난민과 청년들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느 나라나 그렇듯 잘 사는 사람일수록 현실에 안주하고, 못 살거나 젊을수록 부정의에 소리를 높입니다.


반면, 가자지구는 이러한 개발원조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2007년부터 봉쇄를 당하고 주기적인 이스라엘의 침공으로 기반시설 등이 파괴되면서 사회경제가 위기 상황을 1967년부터 반세기 넘게 이어가고 있습니다. 유엔에 따르면, 전쟁 직전인 2022년에도 실업률이 45%에 이르고 65%의 주민이 먹을 게 부족했습니다. 게다가 70%의 주민이 난민이니, 어찌 침묵하고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현지인 기자 아흐마드는 왜 서안지구의 침묵으로 리더십 부재 탓을 했을까요? 이는 현 정부가 무장투쟁을 중단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 이유를 살펴봅시다.


2. 팔레스타인 정부의 입장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상으로 1994년에 창설되었고, 그간 무장투쟁을 이끌어온 팔레스타인해방운동기구(PLO)와 파타(Fatah)가 주도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이스라엘과 미국 등 서구 국가들은 평화협상의 전제조건으로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고 무장투쟁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 때문에 PLO와 파타는 점차적으로 무장투쟁을 멀리하기 시작했고, 2005년에 마흐무드 압바스가 대통령직에 오른 이후로 완전히 중단하게 됩니다.


압바스가 이끄는 현 팔레스타인 정부는 지난 20년간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했으면서도 오로지 평화협상에만 매달리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팔레스타인 내부에서는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대단히 크고, 현지인 기자 아흐마드도 그중 한 부류로 보입니다. 그러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면 정부 정책을 마냥 비판할 수는 없습니다.


팔레스타인 정부가 무장투쟁을 재개할 경우 국제사회의 비판에 직면하고 2012년에 유엔에서 간신히 얻어낸 국가 지위마저 날려버릴 가능성이 큽니다. 더군다나, 이스라엘은 심심하면 팔레스타인 정부를 와해시켜버리겠다는 협박을 늘어놓고 있기 때문에 이번 전쟁에서 가자지구에서 저지른 짓을 서안지구에서도 똑같이 저지를 우려가 큽니다. 즉, 팔레스타인 정부의 완전 궤멸을 명분으로 서안지구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는 겁니다.


압바스 대통령이 무장투쟁을 포기할 수 있었던 배경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1982년에 PLO와 파타가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괴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은 데다가, 1987년에 하마스가 탄생하면서 무장투쟁의 주역은 바뀌었습니다. 1993년부터 시작된 평화협상에서 이스라엘은 하마스 등의 무장투쟁=테러를 빌미로 협상에 소극적으로 임하기도 했으나, 동시에 무장투쟁=테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협상을 계속했습니다. 야세르 아라파트는 이 점을 이해하고 자신이 속한 PLO와 파타의 무장투쟁은 약화시킨 한편, 하마스를 지렛대로 삼아 협상을 이끌었습니다. 2004년에 아라파트가 죽고 이듬해 대통령으로 선출된 압바스는 이런 양면전술의 가치를 이해하고 무장투쟁에서 손을 뗄 수 있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위해서 무장투쟁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아무리 평화적으로 독립을 요구해도 이스라엘은 지난 반 세기 넘게 들어주지 않았고, 국제사회는 1세기 넘게 무시했습니다. 이번 전쟁은 무장투쟁의 가치를 다시금 증명했습니다. 전쟁이 나고 사람이 죽어야지만 국제사회가 팔레스타인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법칙을 반복했기 때문입니다. 무장투쟁을 멈추면, 평화협상 역시 멈추게 됩니다. 따라서 팔레스타인 정부와 하마스의 관계는 순망치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말. 즉,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운명공동체를 이름.


이러한 배경을 이해하면 현 전쟁에 대한 팔레스타인 정부의 입장이 무엇인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한겨레 보도와는 달리 팔레스타인 정부는 전쟁에 대해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시종일관 이런 전쟁을 피하고 멈추기 위해서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거듭 알렸습니다. 이는 한국을 겸임하는 주일본 팔레스타인 대사 왈리드 시암이 한국에 와서 직접 전했던 말이기도 합니다. 즉, 무장투쟁이 만들어낸 기회를 살려 평화협상에 다시 불을 붙이고 있는 중입니다. 따라서 현지인 기자가 말'침묵'이란, 무장투쟁을 옹호하목소리를 내지 않았다는 비판일 뿐, 진실은 아닙니다.


글을 짧게 쓰려고 하다 보니 뭔가 조금 두서없이 늘어놓은 감이 없지 않아 있긴 합니다만, 상황이 이해는 되시죠? 현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어설프게 늘어놓는 보도 탓에 팔레스타인은 우리 인식에서 여전히 알쏭달쏭한 존재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공부하면, 진짜 조금만 공부하면 진실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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