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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일 블루 Feb 17. 2024

순간의 영원(1)

: 내가 사랑하는 건 나로 기인한다.



작년의 일들을 마무리 지으며 이 글을 적는다.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든 글을 적고 일상을 이어나가며 인연이 닿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볕이 드는 동네 카페의 2층에서 만난 사람들은 이제 1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나온 주제는 사랑. 사랑은 어떤 형태를 띠고 있을까? 글을 적기로 한 것과는 별개로 항상 생각하던 지점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눈에 보이지도, 향을 맡을 수도, 손으로 쥘 수도 없는 감정이 느껴지는 순간은 지나고 나면 변할 수 없는 영원에 가까웠다. 사랑에 대한 수도 없는 미디어 속의 로맨스들을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게 사랑은 만들어진다기보다는 존재하는 것이었다. 커피를 사러 나가는 아침, 단골이 된 카페에서 나누던 대화, 모르는 사람과 인사를 하면서 생각하는 순간, 좋아하는 것들을 나누는 취향 메이트들과 공유하던 것들, 길을 지나가며 귓가에 떨어지는 음악. 이런 것들을 소재로 사랑이라는 주제의 글을 쓸 수 있을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나는 하루 단위의 글들을 모으기로 했다. 오늘 하루를 보내며 사랑하는 것들을 기록하는 것이 내 사랑의 표현법이다.


잘하려고 하기에 무너졌던 일상 속에서도 언제나 날 지탱하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었고, 그것들은 당연하게도 나로부터 기인한다. 새해가 시작되고 두 달이 지나가는 시점에서 길을 잃었고 루틴을 잃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방을 치우고 몸을 씻는 일조차 버겁게 느껴졌을 때 돌아올 수 있는 것들은 사랑하는 것들이다. 이틀째 일찍 자는 것을 목표로 여덟 시에는 일어나자며 나를 깨웠다. 


새벽을 오래 걷는 일을 좋아하지만 아침도 나를 사랑하니까, 창가에 떨어지는 아침 햇살들과 초저녁에 친구에게 보낸 노래가 고스란히 아침까지 이어졌다.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 일어나 좋아하는 카페로 향하는 길에 잃어버렸던 사랑이 묻어났다. 카페에 도착해선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시킬 때 자주 가는 카페사장님의 항상 물어보는 원두는 무엇으로 하길 원하냐는 질문에는 존중이 묻어난다. 내가 A라는 원두를 고를 수도 있겠지만 오늘은 B라는 원두를 원할 수도 있을 거라는 배려가 사랑스러웠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나누던 근황 속에 오랜만에 나누는 안부가 오래 이어졌다. 그리고 그 사이 머릿속을 정리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나를 일으키는 경험을 다시 경험했다. 카페를 나오며 들은 노래는 너드커넥션의 조용히, 완전히, 영원히의 가사가 귓가에 들린다. ' 삶이란 건 알다가도 모르겠죠 내가 많이 사랑했던 게 나의 목을 조르는 밧줄이 되더니 나를 매달고 싶대요 알아요 나도 수없이 해봤어요 노력이라는 걸 말이에요 근데 가난한 나의 마음과 영혼이  이제 그만해도 된대요' 라는 가사가 사랑스러웠다. 


지금 이 순간이 지나 저녁이 내려앉으면 혹시 또 나를 탓할 수도 있다. 고작 이것밖에 되지 않느냐고, 고작 이것밖에 하지 못했냐고, 고작 이 정도가 전부라고?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경험한 것들은 다시 나를 다독일 것을 아는 하루가 사랑스러웠다. 오늘은 하루를 사랑하는 법을 배운 첫날이다. 다음엔 또 어떤 것을 사랑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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