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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내리는 첫눈 맞으면서도

by The Happy Letter


초겨울 찬바람 속 뒤늦게 붉게 물든 담쟁이는 갑자기 꽉 막힌 나무판자벽 앞에 가야 할 길을 잃고 있는 걸까 물으니 그는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무심히 한마디 덧붙였다. 그 담쟁이는 때로는 이리저리 헤매다가도 때로는 그 벽에 잠시 기대어 쉬다가도 첫눈 오기 전에 어쩌면 내리는 그 첫눈 맞으면서도 마침내 그 가로막힌 벽을 감싸돌아 갈 것이라고 했다. 계속 가면 길이 보인다고 했다. 설령 그 끝에 아무것도 없다 해도 그곳까지 걸어온 여정旅程이 길이 된다고도 했다. 언젠가는 다가올 그 순간, 그러니까 비록 몸은 그리 아프지 않아도 두려움에 치를 떨게 되고 마는 그 마지막을 겁내고 있지만 그는 염세주의자厭世主義者는 절대 아니다고 했다. 한순간 스치듯 지나가는 계절을 보내고 잿빛 하늘 속 겨울을 맞이하지만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지난봄을 기억해 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고 했다. 그 봄 새 생명만 기억하면 그 꽃들 그 새소리 떠올릴 수만 있으면 그는 차가운 땅 속도 결코 두렵지 않다고 했다.
























염세주의자(厭世主義者) : 세상과 인생을 악하고 괴로운 것으로 보고 아무런 가치가 없고 나아질 수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Daum 어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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